- 앱 제시단어 : 계란
[제단글 : '제시단어로 글쓰기'의 준말. 제시 단어를 앱(RWG)을 통해서 받으면 그 단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것.]
- 앱 제시단어 : 계란
- 그림 : chatGPT 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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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거의 매일 계란으로 음식을 요리한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아들 녀석의 최애 음식이기 때문이다. 후라이를 하던 계란말이를 하던, 계란이 들어간 음식이면 녀석은 군말 없이 식사를 맛있게 한다.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의 입장에서, 아이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반복되는 일상에 음식까지 반복되면 짜증이 날 수도 있는데도, 녀석은 계란이면 된다고 하니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보는 아빠의 입장에서, 나는 이 녀석의 이런 성향에 대해 불만을 가져보게 된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익숙한 것들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거꾸로 신기해하며 계속 호기심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지만, 아들은 익숙한 것들 안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디 작은 계란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서도, 안에 있던 부화 직전의 병아리는 결국 이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마치, 데미안의 소설 내용처럼 말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 from 소설 "데미안"
소시적 봤던 데미안의 내용 중에 있던 구절이다. 그당시 이 아프락사스의 알이라는 구절에서 읽기를 멈추고 심호흡을 깊게 했었던 기억이 있다. 왜였을까?
나를 숨막히게 하는 입시교육에 짓눌려 있을때 그걸 깨라고 하는 반제도권적 계시라고 여겼던 것일까? 아니면, 나를 공부하라고 옥죄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었을까? 아니면, 지금의 내 아들 녀석처럼 나역시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익숙한 것들만 하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아주 약간 그 알에 금을 내기 시작하며 뱉은 긍정의 심호흡은 아니었을까?
그 무엇이 되었든 나는 이 소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데미안에는 이 부분 이외에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에 대한 전통적 방식의 해석을 뒤집기도 하면서, 뭐든지 관점에 따라 상당히 달라보일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 내용을 떠올려봐도 참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나는 문피아 공모전으로 시작한 웹소설 한 개를 계속해서 쓰고 있다. 이 행위 자체도 나에게는 '알을 깨는 행위'이다. 첫 번째 연재이기 때문이다. 안하던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에서 깨는 것임과 동시에, 웹소설을 연재할때 알아야 할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나 자신의 무지가 깨지고 있기도 하다. 물론, 성적은 좋지 못하다. 아직 깨야할 부분도 많고 깨져야 할 부분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데미안을 봤기 때문인지, 내 성향이 그래도 새로운 것들에 도전하는데 두려움을 덜 가지는 것인지, 이제까지 살면서 나는 꽤나 이 '알을 깨는 행위'를 하게 된다. 그런 알깨기가, 최악의 순간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최악의 선택이 아니었길 빈다.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한 선제적 알깨기를 하며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길 진정으로 바란다. 그리고, 아들도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
"야 임마! 계란 좀 고만 먹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