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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언트 Aug 21. 2019

아침학개론 7장 45절

말지어다. 된장찌개에 밥을 말지어다.


아빠가 부릅니다.

아귀라도 될 걸 그랬어.






아빠는 일주일에 네 번은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을 먹지 못하면 병이 나신다.
그걸 아는 엄마와 나는 아빠의 그 소울푸드를 함께 좋아하고, 즐기려는 편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아빠의 ‘아귀찜 사랑’을 두고 나온 말일 수도.)


여기서 더 처참한 사실은 그 소울푸드가 ‘특정 음식’으로 한정돼 있다는 거다.
[동태탕, 아귀찜, 족발, 닭발, 감자탕, 회]*

(*빈도순 정렬)
보통 이러한 패턴 안에서 그날그날 아빠의 기분에 따라 저녁 메뉴가 결정되고, 어쩌다 한 번 옛날 통닭(보통 ‘치킨’과는 엄연히 다르다. 제 발로 튀김 통에 걸어 들어간 듯한 비주얼의 ‘통닭’이어야 한다.)이 당첨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종종 엄마와 ‘오늘 아빠가 뭘 드시고 싶다고 할까’ 내기를 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걸 맞추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린 이제 아빠의 소울푸드에 대처하는 자세가 경지에 이르렀고, 한 가장의 애환이 담긴 그 저녁 식탁을 한마음으로 존중해주기로 했다.



매일 아침 crtl c + ctrl v


그렇게 일주일에 몇 번이고 저녁은 배달을 시켜 먹을 때가 많지만, 아침만큼은 꼭 엄마가 손수 끓인 국이나 찌개에 김치 한 접시와 밥 한술을 뜨고서야 출근을 하신다. 그렇게 아빠의 ‘아침학개론’은 20년이 훌쩍 넘도록 한결같으시다.
시간도 제법 일정하다. 7시 45분쯤,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 발목을 덮는 양말에 정갈하게 맨 넥타이까지. 매일 아침 ‘ctrl c + ctrl v’를 한 모습으로 아침을 드신다.


보통 건강상의 이유로 ‘아침의 중요성’이 강조되는데, 아빠의 아침학개론도 비슷한 맥락에서 하루 중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진다.

다만, 한 지붕 아래 살아도 아침 식사보다 5분을 더 자는 게 중요한 나와 동생에게는 예외다. 아빠에게 아침을 먹는 것이 몸에 밴 습관인 것처럼 우리에겐 아침을 건너뛰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된장찌개 4악장 감자 변주곡


그럼에도 평소보다 눈이 좀 더 일찍 떠진 날에는 아빠의 아침 먹방 ASMR과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보다는 ‘향기’에 가까운 ‘그것’에 홀려 식탁 앞에 앉는다. 자로 잰 듯 일정하게 썰린 두부와 쪄도, 튀겨도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만능 감자가 들어간, 거기에 청양고추 송송 썰어 깔끔하고 개운한 맛의 방금 끓인 된장찌개는 안 먹고는 못 배긴다. 입천장이 다 데어도 포기할 수 없는 중독적인 맛.


어쩌면 아빠가 아침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도 엄마의 한결같은 손맛에 ‘중독’됐기 때문일 거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딱히 자극적이지도 너무 심심하지도 않은 그런 맛.
빈속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또 부담스럽지 않게 채워줄 수 있는 국물 요리.

아빠는 그런 엄마의 음식을 가장 좋아하고, 누구보다 맛있게 드시며, 음식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신다. 그게 아침이든, 저녁이든.(엄마는 음식을 잘한 죄 밖에 없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는 시간이 될 때마다 우리가족(특히 아빠의 취향에 맞는)이 좋아하는 걸 해주시려 한다. 각기 다른 퇴근 시간과 서로 바쁜 일정 속에서 함께 모여 밥을 먹기가 쉽지 않은 가족들은 그렇게 한 번씩 엄마가 차려준 밥상 덕에 둘러앉아 먹고 마시는 그 시간과 음식을 사랑한다.





엄청나게 특별할 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식탁 위 풍경이지만, 가족들을 모이게 하고 그렇게 모여 서로의 ‘오늘’을 이야기하게 하는, 그런 힘을 가진 밥상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오늘과 내일 살아갈 힘이 된다.

오늘 저녁은 다른 반찬 필요 없이 갓 끓인 된장찌개와 김치 한 접시에 밥 한 공기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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