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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산은 Jan 11. 2019

바른 인식은 자체로 힘이 있다

미래 세대에 대한 예의를 생각한다

뭐지? 분명 이상하다는 느낌인데 선뜻 실체가 잡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스크린 자막을 보고 있었다. 팔걸이 같은 눈길 걸이다. 좁은 공간에서 어색하지 않게 눈길을 기댈 수 있도록 설치한 것이겠지만, 한시도 놔두지 않고 끊임없이 정보를 주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친다. 광고 화면 아래로 뉴스 헤드라인 자막이 천천히 흐르고, 위쪽에는 사자성어들이 하나씩 소개되고 있었다. 저녁식사 중 마신 맥주, 투명한 유리잔에 오르던 하얀 거품의 여운이 적절히 긴장을 풀어낸다. 타산지석, 관포지교… 상식적인 내용에 이어 한 사자성어가 순간 눈길을 끌고 의식을 깨운다. 삼포세대!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찬 바람이 들이친다.


신문이나 뉴스매체에서 시사성 용어를 만들고 활용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어에 따라 기사의 생명력이 결정되기도 하니, 자극적인 이름을 붙이고 강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세대를 저렇게 규정하는 것은 깊은 성찰이 필요한 일이며 더구나 사자성어 대열에 삼포세대를 포함시킨 것은 아무래도 생경하고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제한된 일자리와 육아 등 경제적 문제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고 자막은 친절히 설명하고 있었다.

 

개인의 성장에 주변의 기대나 인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애로 태어난 아이도 부모의 기대나 역할에 따라 다르게 성장한다. 장애로 인식하고 동정하고 도와주면 끝까지 장애자로 남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격체로 보고 격려하고 투자하면 그 삶이 전혀 달라진다.  극심한 장애를 극복해 낸 닉 부이치치나 오토다케, 말아 영화의 배형진 등 여러 사례가 입증한다. 한편, 식물이나 동물도 긍정적인 이름을 붙이고 불러주면 건강히 잘 자란다. 포기 정의하고 그런 인식의 틀로 저렇게 미래세대를 규정해도 좋은가?


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 멘토링이나 대화 프로그램이다. 기실 나는 멘토링이란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조금 더 경험했다는 것으로 혹은 상황이 바뀌면 가치가 사라질 경험으로 멘토링이 가능할 수 있을까?  과거와 달리 급속도로 변화하는 현대는 멘토-멘티의 시대는 아니란 생각이다. 하지만 토론하고 다양한 시각을 공유한다는 의미로 기회가 되면 참여한다.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분명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도 많지만, 삼포세대로 규정하듯이 젊은이들이 중요한 것들을 포기한다고 느낀 적은 없다.  지나치게 복잡한 입시제도하에서 지친 면이 있어 안타깝지만 어느 세대 못지않게 치열하게 노력하며, 가정에 대한 인식과 접근 방식도 건강하고 구체적이다.  물론 8-90년대 고도성장 시기만큼 일자리가 풍족하지 않으며 제반 여건이 결혼이나 자녀를 갖는데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해결의 실마리를 원인에서 찾는다면 일자리 정책, 육아나 교육제도 개선 등 이 세대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에 초점을 두는 것이 맞다.  X-세대,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르는 미국이나 다른 많은 나라들을 생각한다. 부정적이기보다  분명 긍정적인 면이 더 드러나는 표현들이다.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는 의미심장한 조어는 없는가?  젊은 세대를 삼포세대라고 규정하고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한 세대를 향한 조어의 폭력일 수도 있다. 사실 누구에게나 20~30대는 가장 불확실한 때다. 돌아보면 내게도 20대는 불확실한 미래나 불투명한 자신감 그리고 막연한 두려움이 교차하던 ‘회색 빛’ 시기였다.  미래를 준비하고 배우며 이 일 저 일하다가 소위 직장다운 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삼십 대 후반이었다. 때로 불안했겠지만 전혀 포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과정에도 웃은 날 많았고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렸다.  인생을 돌아보면 20-30대의 고민은 조건에 관계없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본다. 정체성을 찾는 과정, 지적 탐구 욕망, 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 반드시 스스로 경험하고 넘어야 하는 사랑과 이별, 취업과 미래, 결혼과 가정 그 모든 불확실한 요소들을 한꺼번에 안고 있는 시기 아닌가?   한편, 그것들을 이겨낼 힘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밀레니얼이나 모바일을 의미하는 M-세대라는 이름은 어떤가?


한 젊은이를 안다. 지방의 한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럴듯한 일자리는 없었다. 많은 지원 끝에 직원이 서너 명 되는 작은 회사에 취업을 했다. 친구들 직장이나 월급 수준에 견주며 곧 그만두겠다는 마음도 컸다고 한다. 그 시기를 잘 견디고 이제 5 년 넘게 다니고 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는다. 베트남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출장을 몇 차례 다녀온 후에는 스스로 깨닫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한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 다른 중견기업 과장이나 차장이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엔 회색 빛 시기를 스스로 건너가는 자부심이 실려 있었다. 그렇다. 사과나 복숭아에 조생종과 만생종이 있어 익는 시기가 다르듯 사람도 일찍 피는 사람 늦게 피는 사람 각각 다를 것이다. 중. 고등학교 때에는 조금 늦게 피기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소위 일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취업도 그리 화려하거나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관리하며 뒷심을 발휘하는 모습은 듬직한데, 조만간 결혼 계획을 갖고 있다 하니 더욱 보기 좋다.   

   

발달한 교통이나 열린 정보의 세계는 다른 시각을 요구한다. 1970~80년대 일자리 찾아 고향을 떠나던 때, 서울은 족히 하루가 걸리는 물리적 시간적 거리였고 제한된 정보 속에 적지 않은 심리적 모험을 감내해야 했다. 새벽에 고향을 떠나 꼬깃꼬깃 적어준 주소와 전화번호 하나 들고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물어 물어 찾아가던 친척집이었다. 한 밤중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내일 할 일을 준비하던 모습들이 스친다.  

2015-20년 이 시대에 하루로 활동무대를 재설정하면 어디까지일까?  쉽게 중국 일본을 넘어 동남아까지는 확장될 것이다. 당시와 비슷한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모험한다면 어떤 시도들이 가능한가? 생각해 보고 물어도 보고 구체적으로 적어 볼 일이다. 새로운 영역이나 모험에 맞는 개인적인 준비는 무엇인가?  사회나 정부 그리고 교육제도는 무엇에 투자하고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그럼에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세대를 넘나드는 대화를 나누고 깊이 이해하며 방법을 찾는 노력이 성급한 규정이나 자극적인 조어에 앞서야 할 것이다.

바른 인식은 자체로 힘이 있다.  


/산은 이보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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