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5년, 중국 9년 살이.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마주치게 된 두 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두개의 거대 국가이며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문명의 발생지 출발지이다. 이 인연은 글로벌 미술계에 회자되는 두 나라의 현대미술을 들여다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과 인도는 서로 다른 이유와 서로 다른 과정을 거쳐 근대 국가 체계로 들어갔다.
중국은 20세기 초 걷잡을 수 없이 침범해 오던 제국주의 열강의 공격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혁명적 코스를 통해 근대 국가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정치적 갈등을 벗어나려는 몸부림과 급속하게 진행되는 사회 개방화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인도는 예로부터 오랫동안 존재해 왔던 독립적인 각 공동체들의 차별적 주장이 실로 많은 희생을 거쳐 근대 국가를 세우며 문화적 다양함과 종교적 차이에서 초래된 갈등과 아픔이 작품 속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 그 이후 :
문화 대혁명이 가져온 ‘문화 열병’이라는 저항의 언어는 현대를 살아가는 중국 예술가들에게서 보이지 않는다.
중국 사회가 겪은 경험의 무거움과 심각함에 호소하지 않고도, 일반적인 삶의 양식에 대한 가벼운 접근만으로도 그들이 겪는 현상에 충분한 통찰력을 가져다 준다.
가령, 인슈전의 휴대용 도시 시리즈는, 해외여행이 낯설지 않고 일상에 어느 정도 스며든 새로운 세대를 반영하며, 각 수트케이스 안에 담긴 필수품을 문화의 상징화하고 시각화하여, 세계적 사회 현상을 표현하였다.
미아오 샤오춘은 과거의 미술사를 현대의 예술적 창조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여 서구의 클래식 구조에, 중국의 다초점 시각을 입혀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기법으로 소통한다. 이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공통 언어로 상징화되어 거부할 수 없이 존재하는 서구와 중국의 틈을 잇는 다리가 되었다.
그러나 중국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었던 정치적 문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작가들은 중국이 겪은 삶의 경험이 작품 안에 스며들게 하고, 대중과 보다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자신의 언어를 끊임없이 변환시키는 과정 중에 있다. 가벼운 컨셉츄얼 미술 혹 풍자나 논평에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현실의 벅찬 변화를 다시 언어화하면서, 이전의 상처를 뒤로 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낸다.
<인슈전, 휴대용 도시 시리즈 중 뒤셀도르프, 2012>
<MiaoXiaoChun, Zero Degree Doubt, 2013 >
인도, 다양함을 넘어선 하나;
‘다양성’의 개념 아래, 인도라는 거대한 공동체는 하나가 되었다.
다양한 삶들의 마찰은 인도 현대 미술을 이어가는 거대하고 힘있는 소리가 되었으며, 수많은 융합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아픔은 -중국 현대 미술의 정치적 상황만큼이나- 튼튼한 밑거름이 되어 작가들의 예술적 영감의 에너지 원천이 되었다.
바티커 (Bharti Kher)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인도인으로, 자신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통의 신념과 자신이 경험하고 배웠던 ‘보이는’ 문화를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 자아를 투영시켰다.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오브제 빈디는 인도 여성을 특징짓는 이마의 작은 점으로, 예로부터 생명의 에너지를 모으는 지점을 직관의 눈으로 형상화 시킨 의미를 담는다. 그녀는 빈디를 통하여 가정적 구성요소들의 의미를 변형시키고 집과 여성에 관한 어휘들을 뒤섞고 더 나아가 기억, 문화적 신화 그리고 사회적 계급 체제에 대하여도 의문을 던진다.
반면, 전통적인 소품을 통하여 사회의 현상을 풀어내는 바티커와 다르게 그녀의 남편 수보드 굽타는 현대 인도인들이 흔하게 접하는 일상 용품 스테인레스 부엌 용기를 집적하여 중산층의 계층 상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힌두 문화를 반영하는 소의 배설물이나 우유를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하여 힌두교와 카스트제도에 맞물린 인도의 자본주의를 꼬집어내고 있다. 그의 ‘이것은 분수가 아니다’ 는 식기들 위로 샘솟는 분수로 생명의 근원인 물조차 함부로 마실 수 없게 만든 계급사회에 대한 서글픈 은유이자, 힌두의 정(淨)한 것과 부정(不淨)한 것과 더불어, 희망의 상징물이 된다.
구습이 개혁되고, 봉건적 가풍이 없어졌다고 해도, 남존여비의 관념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과 유사하다.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피폐하다.
<Bharti Kher, The nemesis of nations’, 2008/2009, bindis on fiberglass>
<Subodh Gupta, this is not a fountain, 2011 –2013>
닮은 듯 다른 표현
현대 중국, 인도의 작가들은 각 나라가 가진 고유한 향취의 이미지를 활용하지만 매체나 기법 면에서는 오히려 서구의 영향을 받았다. 이는 본격화된 글로벌화의 물결을 타고, 양 나라의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성장을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시골에서 도시로의 인구 이동, 고속도로와 신도로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무리와 교통수단, 새로운 물적 풍요와 그 뒤에 서려있는 수선스러움과 허탈감을 과거 선배 화가들이 갇혀있던 전통적 회화나 조각에서 벗어나서 초대형 설치, 비디오, 등 여러 오브제를 결합한 혼합 매체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표현 방식을 구사하며 복잡해진 글로벌 사회를 보다 절실히 표현하고 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분명 상처가 되었던 그들의 역사는 예술가들의 현실에 활기찬 맥박이 되었다. 오래된 전통이 규정한 ‘카스트’와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인한 불공평한 분배의 격차 속에 인도 작가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대응하고 쫓아간다. 그 과정은 상처를 딛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 나가는 중국과 다르게, 보다 완강하게 인도 과거의 경험과 느낌을 계속 다시 들여다 보고 재해석하려 한다.
중국, 인도. What’s next?
물론 이 두 나라의 다른 역사적 경험과, 두 문명의 복잡하고 거대한 전개를 단지 하나의 ‘예술’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란 작가의 일상의 경험을, 경험에 대한 반응을 평면 위에 혹은 어떠한 공간 위에 선과 색채와 구도로 형상화 시키며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보이는 것으로 창조하는 작업이다. 각 나라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삶과 터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단순한 삽화로만 존재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그리고 그들이 매일 체험하는 국가는 이러한 내면 세계의 주요한 부분으로서, 이런 사회적 문화적 장면의 일부를 그들의 작품으로서 해석하는 것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작품으로 공유한 삶의 기반은 분명 급변하는 세대에 하나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Chindia, 단어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각 나라가 지닌 고유한 역사적 배경, 그로 인한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두 나라가 가진 거대한 –경제적- 잠재성을 이유로 Chindia라는 단어를 붙였다.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공동체를 단순히 미술이라는 하나의 틀을 도구로 삼아 고찰해 보려는 시도는 억지스러울 수 있지만, 자본주의적 발달이 침범하고 있는 현 사회에서 오히려 중국과 인도는 닮아가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작가들이 간직한 고유의 이야기를 보존해 나가면서도 ‘세계화’라는 번쩍이는 진보가 가져다 주는 표면에 가리워지지 않을 때, 혹은 휩쓸리지 않을 때, 이들이 남긴 풍경은 역사에 지워지지 않는 또 하나의 거대한 문화로, 유산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