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유학을 가시는 분들께, 유학 중이신 분들께.

힘내요, 우리.

by 스더언니

필자 소개 :

평범한 중학생이었던 스더.

그래도 나름 '연대 작곡과'라는 꿈이 있었고,

'예고'에 들어가려던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더 정확히 스더의 강인하신 어머니 본인의 꿈으로 인하여 '예고' 에 없던 중국행, 아시아의 가장 찬란한 도시 상해라는 곳에서부터 인도, 프랑스를 거쳐 계속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무슨 대단한 집안이냐.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 전혀.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인생에서 참 많은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학부 전공은 경영,

석사 전공은 미술 경영.




뭐라 끄적거릴만한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유학을 생각하시는 분 중, 혹여나 100분 중에 한분이라도 나의 글을 보시고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해볼까 다.


2011년,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커뮤니티에 끄적였던 글.





저는 스물 여섯 여자 사람입니다ㅎㅎ


나이가 제법 들긴 하였지만 졸업은 작년에야 했어요.


고생 좀 하느라 남들 다 있는 '학사'라는 학위를 따는데에 이렇게나 (총 8년이에요. 맙소사.)오래걸렸네요.



부모님을 따라서 중학생 한창 사춘기 나이에 중국을 갔습니다.


전 늘 예고를 가길 바랬는데.. 어렸기에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갔지요.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이렇게 계속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의 이국생활 첫번째 시점은 중국 상해였습니다.


제가 보았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저의 친구들 거의 대부분은 내놓으라 하는 기업의 자녀들이었기에 그만큼 대우도 특별했지요.


아직 중학교 1학년인데.. 스타벅스에 앉아서 명품 잡지를 보며..


파티에 갈 의상에 대해서 의논하는 아이들이 정말 외계인 같았습니다.


한참 김치 국물이 묻은 교복을 입고 다니며 평범한 삶을 살다가 만난 그들,


중국어 보다도 영어를 대화의 반을 써가며 이야기 하던 그 친구들.


네, 비싼 국제학교를 다니는 주재원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중국에 거주하였지만 중국어는 오히려 설렁설렁 배웠고..


영어가 거의 그들의 모국어였어요.


집에서나 교회에서는 한국어, 밖에 외출 할 때에는 중국어, 학교 수업은 영어.


이렇게 세가지의 언어를 스스럼 없이 구사하고 럭셔리 하게 사는 아이들이 제 친구가 되었습니다.



충격이 컸습니다. 저는 한국말밖에 못하는데...


저는 그들이 솔직히 부러웠지만.. 비싼 국제학교에 다니질 못하는 저희집 형편을 생각해서


'중국에 왔으면 중국어를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제 자신을 위로했어요.


어느 분들의 말대로 역시 후진국은 커리큘럼이 체계적이지 않아요. 동의합니다.


중국에 있는다고 중국어가 늘었을까요? 아니요. 전혀 늘지 않아요.


어렸을 때에 가면 몰라도..


이미 머리가 커버린 상태에서 갔기 때문에 중국어로 수업을 들어도 가만 앉아 있기만 하면 똑같이 외계어일 뿐입니다.


그렇게 1년을 놀다가보니 저랑 비슷한 시기에 중국에 와서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들과 제 자신을 비교해보니 그들이 영어 중국어 다 진도 빼는 동안에 전 중국어 마저도 그들처럼 구사하지 못했답니다.


하하 챙피하네요.




그맘 때 쯔음, 갑자기 중국 붐이 일어나면서 부모님이 보내서 억지로 중국에 조기유학 오게된 아이들도 많이 생겼는데요..


그들의 부모님께서는 딱히 국제학교에 보내실 형편은 아니되고..


애는 잘 키웠으면 좋겠고... 하시는 마음에 로컬 학교에 그 아이들을 보내셨어요.


저와 같이 그 로컬에 다녔던 친구들..


수업 매일 가지 않고.. 노래방에 가고.. 술 마시고.. 임신하고.. 낙태하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안 그래도 국제학교 친구들과 같이 로컬 다니는 친구들 사이에 선 제 자신을 보고 착잡해하고 있던 와중에..


저에게 갑자기 발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HSK 급수(영어로 치면 토플이나 아엘츠)를 따야한다..


플러스, 중학교 졸업 시험을 똑같이 봐서 평균 60점이 넘어야한다.


그래야지만 중학교 졸업을 시켜준답니다.


허허.. 초졸은 안돼안돼..


스스로 되뇌이면서 한달동안 정말 자지도 먹지도 않고 하루에 4시간 이상자면 큰일나는줄 알고 공부했습니다. 길가면서도 책을 보고.. 화장실에 갈 때에도.. 밥 먹을 때에도 책을 옆에 펴놓고..


반찬 집어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엄마가 반찬 많이 하면 짜증도 냈습니다..


과외 선생이 필요하겠다 해서 구했더니. 제가 12시간 이상 붙잡고 안놔줄 뿐더러


오히려 제가 학생인데


'전 내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끝내야 하니.. 제가 배워야할 문법과 말하기 듣기 쓰기 문제를 만들어서 오세요.'


하고 숙제를 냈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기겁을 하고 하루만하고 도망가더라구요.


그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허리디스크까지 덤으로 얻어가면서요.


다른 아이들 두번 세번 재시험 보았지만..


한 번에 깔끔하게 졸업시험을 한번에 패스하고 HSK 급수도 기대 이상으로 땄습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단어를 외워야지만 들리더라구요. 무작정 앉아있는다고 느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탄력받은 김에 고졸 검정고시도 봤습니다.


중국어 공부 하는거에 반의 반의 반도 안했는데 최연소 충남 수석이었어요.


(본의 아니게.. 자랑을 했네요.. 여러분도 하실 수 있어요!)


내놓을만한 성적이 있게 되니까 중국 명문대 최연소 법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 곳에서 많은 유학생을 또 보게되었습니다.


중국 붐에 맞추어 '나도'하며 오게된 사람들.. 특별한 의지 없이는 역시나 힘들어 했습니다.



그렇게 잘 다니다가.. 집안 사정이 극히 좋지 않았어요.


다니던 학교를 관둬야만 헀고 한국에 와서 혼자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떄 제 나이 만 18세. 정말 막막하더라구요.


어쩌다가 독립을 하게 되어서.. 그렇게 이것 저것 안해본 일이 없는데..


다행히 중국어를 하나 해놓은게 있어서 어린 나이지만 먹고 살만큼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가는 동안에 국제학교를 다니던 제 친구들은 하버드도.. 서울대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잘 들어가더라구요.


그 아이들을 보니, 중국어만 하면 조선족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영어를 배워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의 부모님은 참 현명했습니다.


중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영어의 중요성을 더 많이 강조했으니까요.


저도 유럽이란 곳에 참 가고 싶은데.. 제 자신이 참 초라해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계시는 인도로는 절대로 가기 싫었습니다.


아... 그냥 왠지 싫었어요...


중국에서도 후진국의 못볼 모습을 다 보았는데.. 더더군다나..


인도에 떠날 때에 자물쇠를 100개 가지고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제가 가고싶지 않은 이유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렀습니다..


더 나이를 먹어갈수록 외롭고.. 이래서는 뭐가될지 몰라서 그냥 아무생각 없이


그래.. 가자.. 하고 인도로 왔습니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지도 않고 그냥 막 뱅갈로르 크라이스트에 입학했어요.


인도 특유의 권위적인 분위기도 싫고.. 뭔지도 모르고 그렇게 막 시작한 '경영' 공부가 만만하진 않았지만...


일하고 고생하는 동안에 공부가 정말 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나름 즐겁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한가지 더 창피하지만.. 하나 더 알려드릴께요.


처음 지원할 때에 경영과 중에서도 BBA(bachelor business administration) 가 있고..


뭐.. BBM(bachelor business management) 등등 경영도 과가 많고 이런식으로 쭉 나눠져 있잖아요.


경영은 배우고 싶은데 각 학과별로 상세한 설명을 읽기가 버거워서 선택했던 과가 BBA였어요.


알파벳 순서가 BBA가 우선이니까요.


그런데.. 마침 그 학과가 유일하게 다른 외국 경영대학이랑 자매결연을 맺은터라..


오.. 이게 왠일.. 했지요.



싼게 비지떡이고.. give and take 맞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공부를 원했기 때문에 그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었어요.


제가 계속 인도 발음 왜이래.. 얘네 이상해..


하면서 불평만 했었다면 절대 헤어나오지 못했을겁니다.


그리고 저도 그렇게 바라던 G7 국가 한 곳으로, 프랑스로 교환 학생으로 가게 되었지요.


인도 2년 + 선진국 1년. 전 졸업장도 인도 대학에서 받은게 아니라..


그 곳 학생으로.. 그 곳에서 학위가 나와서.. 오히려 저한테는 참 좋았던거 같아요.


늘 저의 꿈이었으니까요.



선진국에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도에 있다가 가니 더더욱 좋았어요.



아참, 제 영어요?


예전에 중국어를 했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해야지. 라는 감이 있어서요..


제가 말씀드린대로 '아는것이 들린다' 라는 생각으로 공부하시면..


인도의 특유 발음도 다 들리실꺼에요.


제 발음은 어떻냐구요? 제 발음 나름 괜춘하다네요ㅎ


캐나다에서 온 전남친 가라사대 처음에 제가 네이티브인줄 알았다고 하고


유럽에 있을 때에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은 저 미국 어느 지역에서 왔냐고 물어봤어요ㅎ



어떻게 했냐고 물으신다면..


계속 프렌즈에 나오는 모니카나 레이첼의 억양이나 위기의 주부들에 나오는 분들 발음을 머릿 속에 기억하시면 되요.


그리고 유럽에서 Collequial English 강의 수강할 기회가 있었는데 참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대상도 거의 네이티브 였는데.. 미국이랑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등 특유의 사투리나 속어, 말투 등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참고로 제 인도 친구도 이 과목 패스 못했어요. 인도 영어가 참 다르긴 다른가봐요.


그렇지만 인도에 있다고 해서 절대로 나쁜 영향만 받는거 아니에요.


제 취미가 성대모사. 모창 이런건데.. 따라하다보면 누구의 발음이건 금방금방 따라하게 됩니다.


인도에 있을 때에는 그렇게 했지만. 막상 또 영어권 사람들이랑 얘기하다보면 또 그렇게 바뀌는 제 모습을 보게되요.


왜, 개그맨들이 영어를 빨리 배우는건 흉내를 잘 내기 때문 아닐까요? 김영철씨 보세요.



그리고 결정적인건.. 솔직히 중국어보다 영어가 저한테는 더 잘맞는거 같아요.


어느 누구나 그러실 꺼에요. 더 잘 맞는 언어가 있고, 덜 맞는 언어가 있을꺼에요.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중국어는 죽어라 한달동안 잠도 못자고 했는데.. (그리고 지금 그렇게 그때만큼 구사하던 중국어 실력이 안나와요.)


영어는 모의고사 듣기만 두회 풀어보고 IELTS 7.0 받았습니다.


나중에 잘 공부해서 8.0 이상 받고 싶어요.



선진국에서 공부할 때에 고려대, 이대, 서울대, 서강대... 등등 좋은 대학교에서 교환학생 온 친구들과 어울렸고..


전 고대랑 이대생들과 같이 살았어요.


그들이 그렇게 영어를 잘하는건 아니지만..


정말 많은 비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이나 인도에서 보았던 대부분의 유학생들이랑은 달라요.


하겠다는 의지가 일단 있거든요.


영어로 수업을 하지만 이왕 유럽에 온거 불어도 같이 배워서 델프 자격증도 같이 따는 의지 말입니다.


기회를 잘 활용하는 의지요.


그 곳은 물만큼 와인이 싸기 때문에..


와인을 마시지만 일삼아 흥청거리며 마시지 않습니다.


정말 교양있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마셔요.


마시면서 이렇다니 저렇다니 불평 안합니다.


선진국에 있으니까 그런거야. 나도 선진국에 있으면 불평 안할 자신있어.


과연 그럴까요?


아니요. 그건 정말 변명일 뿐입니다.


남들 다 있는 명품, 그 곳은 더 싸니까 사야겠다. 라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그 돈 아껴서 여행을 가지요. 더 많은 세상을 보기 위함입니다.


한달 생활비 80만원정도로 다 할수 있었어요.


그 돈으로 유럽 여행도 다 다닐 수 있어요. 물론 명품은 포기였지요.


그 곳에서 그 흔한 H&M, MANGO, ZARA. 70퍼센트 세일해도, 90퍼센트까지 세일해도..


아예 들어가질 않습니다. 제가 정말 옷 좋아하고 꾸미는 것 좋아하지만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 돈 아끼고 아끼고 또 아껴서 차라리 부모님께 시계 사드리고 신발 사드렸습니다.


오죽하면 제 블로그 이름이 '돈이 없어도 꿈을 가질 자격' 이겠어요.


여러분은 지금도 계속 '가치비용'에 대해 우선 순위를 바로 정하시면 됩니다.



정리를 하자면.. 이렇습니다.


분명 인도는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전 인도에서 영어를 배웠고 2년만에 그래도 영어권에서 어느 정도 살던 사람만큼 하게 되었어요. 꿈이 있었기에 불어도 계속 배울 수 있었고..


석사도.. 박사도.. 계속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돈이 있어야지 박사를 한다구요?


저희 사촌 언니는 저랑 한살 차이인데 이미 고려대 박사과정까지 모두 수료했어요.


물론 언니 혼자서 학비 생활비 벌어가면서요.


스물 여섯부터 강단에 서서 대학생들 가르칩니다.



눈물이 없었을까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 중에 정말 꿈이 있으시다면..


눈물도 견딜만 해요. 후진국으로 가시는거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영미권으로 명문 대학을 간 친구들.. 졸업하고 다 잘나가는거 사실입니다.


그들한테 삼성은 그냥이고.. 제 친구 중 4명이 벌써 UN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저와 같이 로컬을 다닌 대부분의 친구들..


이런말 하기 미안하지만.. 아직도 주유소 알바하고 편의점 알바하며 살아갑니다.


제일 큰 차이를 환경으로 돌리겠지만..


환경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더 강하게 자랄 수 있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힘들어도 그럭저럭 견딜만해요.


그리고 제 주변을 보면 부모님이 풍족하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고 충분히 잘 살아가는 친구들 많습니다.



온실에서 잘 자라나는거 물론 축복이지만요..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날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 귀한 사람이 될거에요.


전 블로그를 하면서.. 제가 경험했던 유학 에피소드 하나하나 그려가고 있어요.


지금도 많이 부족하고 이제 다시 새롭게 시작하지만요.


중국에 있었을 때에, 인도에 있었을 때에 부족했던 제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게 되었어요.


마음이 좁아지고 제 주변 사람들을 돌보지 못했던 것들이..많이 후회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인도를 떠난 뒤부터.. 계속 먼저 나눠주는 삶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제 돈을 쓰더라도 룸메이트들에게 요리해주는게 큰 행복이 되었고..


힘들게 장사하시는 분들께 잔돈을 다 드리는 연습도 하고 있고..


매일매일 하루에 적지만 구걸하시는 분들을 위해 예산을 따로 떼어놓고요.


건물에서 문을 열고 다음 사람이 올때까지 잡고 기다리는 연습도 하고 있습니다.



누리는 삶이나 명품은 아마 오랫동안 포기해야 될 것 같네요.


아마 평생 없을지로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더 나아갈 수 있는 내일이 저에게 주어졌으니 그 기회에 감사하며 살겁니다.


제가 실수했던 것들 많이 반성하며 더 나아지며 더 나눠주며 그렇게 살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용기내어 썼구요..


근데 흠.. 계속 쓰다보니 이렇게 길어졌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금한거 있으시면 쪽지 보내셔도 됩니다.


끝으로, 여러분. 읽으시면서 힘을 얻으셨다면..


먼저 그 길을 와본 선배로서 꼭 포기하지 않으시길 바래요^ ^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