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흔한 유학생의 인터뷰

15년의 해외생활, 떠돌이 삶에 관하여

by 스더언니

상해에 사는 팅키언니가 연재하는 '해그대, 해외에서 일하는 그대' 시리즈 인터뷰에 응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1.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현재는 중국 상하이, 상해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 경영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15년 가까이 되는 해외 생활 중, 사춘기를 보낸 곳이 상해라서 그런지, 한국보다도 이 곳이 제 고향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프랑스, 인도를 거쳐 다시 상하이로 컴백하였습니다.


2. 살고 있는 곳의 장단점을 말씀해주세요. (사람들은 어떤지. 환경은 어떤지 어떤 부분에서 놀라고, 기쁘고, 때로는 기분이 상하는지.)
어렸을 때부터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저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고정 관념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어요. 딱히 ‘제일 잘한다’ 라는 내세울만한 언어도 없구요. 어른들은 제가 뿌리가 깊지 않다고 많이 걱정하시지만.. 이런 저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은 상해인 것 같아요. 매일매일 제 일상을 나누며 소통하는 사람들이 다 다르거든요. 메신저 창은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번갈아 가며 채워져 있고, 교회, 학교, 생활을 나누는 사람들이 다 다른데.. 저는 이런 사소한 것들로부터 저의 소속감을 느껴요. “아,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은 여기구나…” 하구요.

이렇게 고향 같고, 제일 좋아하는 도시이지만 마냥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인도보다는 낫지만, 중국에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매너가 없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누군가에게 발을 밟히고도 ‘미안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없거나, 한국어가 적혀진 책을 지하철에서 읽으면 한국사람 이라며 마구 손가락질을 하며 크게 떠드는 아저씨. 그럼 옆에 앉아있던 다른 아저씨는 책에 고정되어있는 제 얼굴을 보려고 책과 제 얼굴 사이에 아저씨의 얼굴을 갑자기 들이밀며 쳐다보아요. 말로만 듣던 장기밀매가 정말 있는건가, 하고 위험한 일도 여러 번 당했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이런 단점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연애할 때처럼 콩깍지가 씌었다 할까요^ ^



3. 해외취업을 하기까지 결정적인 사건도 있었을거고 우연한 계기도 있었을텐데, 이야기하고 싶은걸로 이야기해주세요.

‘연대 작곡과’에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던 여느 평범한 중학생이 갑자기 부모님을 따라 중국에서 살게 되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일찍 검정고시를 보게 되었고, 학비가 있으면 학교를 다니고, 없으면 학교를 못 다니고.. 그렇게 입학했던 대학교만 해도 네 군데인데. 9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결국엔 프랑스에서 학사 학위를 따내었죠. 졸업하자마자 인도 뭄바이에 있는 여느 한국 대기업에 들어가, 아.. 이제는 살만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기계적인 하루가 매일매일 반복이 되어도, 하는 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이대로도 썩 안정적이고 괜찮다. 라는 생각을 했었죠. 마음 어딘가, 무언가가 조금은 찜찜하였어도, 벌이나 대우가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사람들이 ‘커리어우먼’이라는 저를 보는 시선도 꽤 즐겼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몸이 많이 아프게 되었어요. 파혼도 하게 되구요. 좋은 직장, 알콩달콩의 결혼생활. 저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의 정석을 밟고 있던 저 역시도 별거 없는 여자이더라구요 (웃음) 갑자기 다 잃게 되니까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과연 70살까지, 대기업에서 배운 이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계속 종이를 만지며 살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게 뭐지? 나는 음악을 다시 해야 할까? 그러기엔 내 나이는 너무 많은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엔 너무 먼 것 같은데… 그럼 내가 제일 잘하는게 뭐지?’ 라는 질문이요.

그러다가 나름 내린 결론은, 저는 예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비록 이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예전 같이 안정적이지 않지만 이 길에 대한 공허함도 없고 ‘이 길이 맞다’ 라는 라는 확신이 매일 마음 속에 조금씩 번져가요.

4. 지금 있는 이 곳이 행복한가요.

네, 전 편에 MK (선교사 자녀) 모아가 썼던 것처럼 저도 MK 에요. 보통 MK들은 고생을 많이 하게 되어요. 그래도 고생을 하고 나니까 행복이라는 기준이 나날이 더 단순 해져가는 것 같아요. ‘~하면 행복할거야, ~를 가지면 행복할거야, ~랑 비교해서 행복해’가 아닌 인생의 정점이 지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환경은 힘들어도 가슴 속에 부정할 수 없는 또 다른 행복이 존재한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5. 지금의 자리에 오는 데에 혹은 인생의 어느 때라도, 혹시 이것을 했던 것은 ‘정녕 신의 한 수였다’ 라는 잘 한 일이 있었으면 공유해주세요.

앞서 말했듯이, 그 때 그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인생 최대 잘한 일인 것 같아요. 결혼 직전 파혼에 대한 주변의 시선도 무서웠고, 덕분에 친구들도, 모아두었던 돈도 다 잃게 되었지만, 진짜를 알게 되었던 계기였어요. 아프고 돈이 없고,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을 때 떠나버린 사람, 그래도 내 옆에 남아주는 사람. 사람은 믿거나 기대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저 사랑해야 할 존재인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죠.

6. 내 동생이 한다면 극구 말리고 싶은 실수, 자다가 이불 하이킥 하는 후회되는 일이 있나요


중독이요. 사람은 참 그릇 같은 존재라서.. 눈으로 책을 읽고 머리에 지식을 저장하고, 입으로 먹어 위에 음식을 저장하며 코로 숨을 쉬어 폐에 공기를 집어넣으며, 끊임없이 마음을 채워놓을 수 있는 그 대상을 찾는대요. 그래서 누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중독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죠. 어떤 사람은 돈으로, 어떤 사람은 우정으로. 어떤 사람은 일로요. 저는, 외로움에 그 마음을 채울 대상을 ‘남자친구’로 정했던 것 같아요. 부끄럽지만 연애중독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결국엔 알았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 세상 어느 것도, 제 마음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대상은 없어요. 저는 정말 이걸 마음을 수 없이 찢겨가며 알았기 때문에.. 주제넘지만, 이걸 읽는 여자분들은 꼭 ‘사랑 받으면 행복할거야’ 라는 생각을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사랑은 따뜻한 온기인데, 외부에서 자꾸 열을 받아들이게 되면, 나는 열을 생산할 필요가 없어지고, 열을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점점 차가워지는 것 같아요. 사랑을 많이 받고, 칭찬을 많이 들으면 얼굴은 밝아지고, 의식도 긍정적이 되지만.. 내가 사랑의 발전소가 되지 않고, 사랑의 종점이 되었기 때문에, 온기를 많이 받기만 하고 생산은 하지 않기 때문에 속은 결국 차가워지죠. 물론 어릴 때는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시작해야 하지만..언제까지나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7. 언어의 장벽을 극복한 본인만의 유용한 툴이 있었다면, 책이던 웹사이트던 애인이었던,공유해주세요.


저도 머리가 왠만큼 큰 뒤부터 이민 생활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언어가 원어민처럼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요.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이를 부득부득 갈며, 그래 내가 하고 만다’ 라는 생각으로 언어를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국어를 그렇게 배우고 나니, 확 늘기는 하지만, 결국 한계가 있고, 퇴보가 엄청 심하더라구요. 그에 비해서 영어는 자연스럽게 금방 익히게 된 것 같아요. 넬슨 만델라가 하신 말씀 중에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상대방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 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의 머리에 이야기 하는거지만, 상대방의 모국어로 이야기 한다면, 그 말은 그 사람 가슴에 바로 다가갈 것이라구요. 그런 마음으로 언어를 배우면, 언어는 나를 표현해주는 하나의 수단이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가는 도구로써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스펙으로써 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닌 언어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고도 생각해요. 제 개인적인 바램은, 어느 나라에 가던지, 식당에서 주문하는 것, 길 물어보는 것, 물건 깎는 것 등 쯤의 언어들은 익히고 싶어요.

8. 해외 생활 혹은 업무에서 스트레스 받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알려주세요.


저는 피아노요. 단순히 악보를 보고 곡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을 실어서 몇 시간이고 피아노 앞에 앉아 이야기하고 하소연하게 되어요. 집이 어려워서 피아노가 없었을 때가 더 많이 있어서, 빈 교회나 어느 외진 아무 악기 점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엉엉 울며 치기를 10년 정도는 한 것 같아요. 첫 월급은 단연 키보드부터 샀죠. 지금도 늘 옆에 있답니다.

9.결혼에 대한 생각은?


아직도 마음 한 켠에는,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결혼이라는 인생이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되었죠. 결혼에 목매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대로 충분히 행복하니까요.

10. 너무 아프고 좌절되었을 때 어떻게 이겨냈나요?


묵묵히 버티는 것이 답인 것 같아요. 10년도 더 전, 학교도 못 다니고..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 온갖 알바라는 알바는 다 했던 시절이 있었죠. ‘카드 판매원’ 이라는, 잡상인 비슷한 것도 했었는데.. 여의도, 강남 등 높은 빌딩이란 빌딩에 무조건 꼭대기부터 올라가서 한 층씩 내려오며 다짜고짜 카드 가입을 권하고, 가입한 회원들에게 30키로 가까이되던 무거운 사은품들을 하나씩 나눠주는 것이 저의 미션이었어요. 하루 종일 해도, 30키로 그대로일 때가 있어요. 들고 있는 것이 무거운 것보다, 밖에 눈이 섞인 비가 내려 추운 것보다.. 하루 종일 거절당했다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졌었죠.

어느 건물 계단에 앉아 조용히 엉엉 울던 그 때 시절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따뜻함을 꿈꾸게 만들었으니까요. 경비 아저씨에게도 최대한 밝게 인사하게 되고,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계신 손이 거친 아주머니를 보게 되면 마음이 찡해져요.

아픈 것을 벗어나려 발버둥치지 않고, 죽을 만큼 힘들어도 끝까지 견디다가 보면, 어느 순간 고통이 지나가요. 그리고 나와 같은 다른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공감하며 위로하는 동안, 그 고통들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질 만큼 함께 치료되고 성장하는 내 모습을 보아요. 앞으로의 삶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11.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요?


사랑, 따뜻한 사람이요.
어렸을 때 뭐가 될래? 라는 질문에 많은 직업들을 이야기 하잖아요. 왜 뭐가 될래 To be 라는 질문에 To do를 대입시키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꿈은 To be,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가 되어야지 정답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매일 꿈을 이뤄가는거죠. 저는 그래도 어제보다는 조금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느낄 때마다 지금 죽어도 괜찮을 것 같은 행복감을 느껴요. 그리고 이 꿈이 날이 갈수록,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간절해지거든요. 그렇게 각자마다 마음 속 깊이 간직한 꿈을 찾으며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12. 외국 친구들은 보통 어떻게 사귀나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이 상해라, 억지로 만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 같아요. 영어가 부족해서 부끄럽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인터네셔널 교회에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국제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도 많이 모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 같아요.

13. 한국분들과는 어떻게 만나나요?


오랜 해외 생활을 하시는 한국 분들 대다수가 한국사람에게, 한인사회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받았을 거에요. 저도 그 중 한 사람 이구요. 결론은 너무 한국 사람끼리 있는걸 추천하지 않아요.
하지만 블로그를 한 뒤로 저와 같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팅키언니도 만났고, 사랑하는 MK친구 모아도 블로그를 통해 만나게 되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을 주려고 시작한 블로그를 통하여, 생각지도 못한 많은 감사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어서 기뻐요.

14. 해외취업을 원하는 분들에게 도움말을 주자면?


해외취업보다, 현재 유학생의 신분이니, 유학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저는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굉장히 똑똑해서 장학금을 받는 사람도 아니에요. 하지만 ‘완벽한 준비를 하고 유학을 가야지’ 라는 생각보다, ‘이 땅에서 끝장을 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발을 내딛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프랑스에 가는 출국 당일, 그렇게 열심히 찾아냈던 집을 사기로 홀랑 날려버리고 당장 오갈 곳 없는 처지에 있었더라도, 편도 티켓 달랑 하나 가지고 죽더라도 거기서 죽어야지 하며 갔던 기억이 있어요. 일반 ‘유학’하면, 명품이나 브런치 같은 럭셔리를 먼저 떠올리시는 분보다, ‘비록 내가 여기서 조금 쪼들리고 살아도 이 땅이 좋다.’ 라고 마음 먹으신 분들에게 유학을 추천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