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문에 저의 국어 실력은 중학교 1년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지금도 작가라는 타이틀이 매우 부끄럽고 어색할 정도로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틀리기 일쑤이지만,
사실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초등학생(라떼는 국민학생^^^) 어린이 스더의 일기는 선생님들끼리 돌려볼 만큼 재미가 있었으며,선생님은 자주 저의 일기를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하였고, 반 아이들 역시 짬나는 시간이 될 때 저의 일기를 듣고 싶다고 선생님께 졸라댔었던 기억이 납니다.(덕분에 반 아이들은 우리 오빠가 포경수술을 한 사실까지 알게 되는, 그야말로 TMI)
아마 저는 그때부터 관종이었나 봅니다.
'작가'를 한 번도 꿈꾸지 않았지만,
기쁨, 슬픔, 불안, 행복, 설렘.
지나 놓고 나면 분명 아쉬워지는 모든 순간의 모든 마음을
말보다는 글로 쌓아왔습니다.
새 책을 살 돈은커녕, 다음 학기 학비가 없어 학교를 못 가게 되었던 당황스러운 상황,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공기를 뚫고 알바를 하러 갔던 그날들.
프랑스에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서도, 길바닥에서 자야 하는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편도 티켓을 쥐고 담담하게 비행기에 올랐던 그 순간.
그렇게 9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게 된 날.
옷장이 아닌 박스에 옷을 담아 질질 끌고 다녔던 시절.
따뜻한 물로 샤워하기 위해서 새벽에 알람 맞춰 일어나 물을 길어 나르던 나의 청춘.
곰팡이가 가득 핀 방에서.. 내일이 올까, 하며 울며 잠들던 그 모든 시간.
전부를 주고 싶었던 사람에게 버림받았던 날.
절망을 뒤로하고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 찬 도시 상해로 다시 갔던 날,
밤에 몰래 교회에 들어가 숨죽여 치던 피아노를, 마침내 사람들 앞에서 박수를 받으며 치게 되었을 때.
카메라 앞에서 처음 눈물을 흘리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담았던 날,
이대로만 지냈으면 좋겠다는 나날들 속에서 갑작스럽게 저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사지가 떨려 두려움이 몰려왔던 그날.
그 모든 좋은 날, 나쁜 날들을 그럭저럭 견디며 저의 인생을 차곡차곡 '지난 글'로 남겨두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그 모든 나날 속에서, 저는 힘들다는 생각, 상처라고 표현할 수 있는 정신은 더더욱 없었거든요.
제가 힘들다고 정의한다면,
제 인생이 지금 너무 벅차다고 주저앉는다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요.
당장 저에게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기 바빴고,
대신 정말로 최선을 다해 그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항상 있었기에 그 최악의 순간에서도 웃을 수는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바람은 따뜻하게 저를 안아주었고, 햇볕도 늘 공평하게 저를 비춰주었으니까요.
미치지 않고 싶어서.
숨을 쉬고 싶어서.
아픈 나를 안고 토닥이고 싶어서.
더 나아가 같은 아픔을 가진 그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어서.
이 모든 감사함을 잊지 않고 싶어서.
'글'이라는 도구로 마음을 풀어내고,
또 타임캡슐처럼 묻어두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저의 본명보다 '스더'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해질 정도로,
많은 분들이 저를 '스더언니'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감히 '상처'라고 정의 내리지 못하고 브런치에 대충 묻어두었던 그 버거운 마음, 당장 살아내기 위해 신음조차 아끼며 글로 내뱉었던 그 숨구멍을 통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