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범 <까마귀의 죽음>
제주 4·3을 언급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1957년) 일본에 펴낸 '까마귀의 죽음'은 김석희 번역에 의해 1988년 국내에 발간되었다.
48년 4월에는 남조선만의 '단독선거' 즉 '대한민국'수립에 반대하고 조선의 통일을 요구하며 제주도에서 일제히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제주도민이 손으로 만든 무기 따위를 손에 들고, 섬 한가운데서 우뚝 솟아 있는 한라산에 모여, 남조선에서 최초인 빨치산 투쟁의 봉화룰 올렸던 것이다. 깜짝 놀란 미국과 이승만도 역시 이 투쟁의 철저한 탄압과 말살을 위해 일어섰다. 제주도민은 모두 '빨갱이'가 되어버리고 감옥은 확장되었다.
마을 주민의 거의 절반인 2백 명 남짓한 사람들에 대한 처형이 점심때가 되어서야 끝났다. 늦여름의 햇살이 쨍쨍 내리쬐는, 티끌 하나 없는 국민학교 운동장이 시체의 산이 되고 피바다가 되었다. 그 중에는 '양민'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경찰에 의해 살해되었다.
p.70
경찰서 앞 광장을 전에는 관덕정 광장이라고 사람들이 불렀었다. 경찰서와 관덕정은 광장을 비스듬히 껴안은 형태로 서 있는데, 그 역사로 보나 건물의 관록으로 보나 관덕정 광장이라고 부르는 편이 듣는 사람의 귀에 자연스럽게 들린다.
p. 169
노인의 관심을 끈 것은, 아직도 성내에, 그러니까 제주도 전역에 관덕정만큼 큰 건물이 없으며 또한 관덕정은 '옛날'을 전해주는 유일한 건물이라는 바로 그 점이었다.
p.178
지난 해 도립병원 주변으로 함께한 이웃들의 이야기, 관덕정 광장을 중심으로 들었던 어르신들의 옛 기억이 스며들어 큰 자양분이 되었나보다. 귀에 익숙하지도 않고 머릿속으로도 상상되지 않았던 제주의 옛 이야기들이 두 줄의 문장만 읽었을뿐인데 알고 있었던 장소마냥 그려진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기록되고, 정리되고, 공유되어야 하는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