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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담아 Jan 06. 2024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자들의 세계

서울 종로구 안국동 헌법재판소에서

천연기념물 제8호 헌법재판소 백송이 웃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 사신 백송님이시다. 

"허허허" 

그것은 200년도 넘는 저편의 시간에서 연암 박지원이 웃는 소리와 같다. 

그 웃음에는 활짝 핀 밝고 명랑한 웃음보다 허탈하고 답답함을 달래는 웃음기가 더 많아 보인다. 

2024년 새해부터 전해오는 불안한 소식들 탓이겠다.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자들의 세계



연암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 나온 한 대목이다. 


(연암이) 장복에게 물었다
“네가 만약 중국에서 태어난다면  어떠하겠느냐?”
 “중국은 오랑캐 인뎁쇼. 소인은 싫습니다.”


장복이라 하면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로 여행하는 약 6개월 동안 수발을 들었던 하인이다.


청나라를 다녀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급 선비는 청나라에선 본받을 것 이 없다고 하고 중급 선비는 나라에 도움이 되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고 하고 하급 선비는 기와조각과 똥부스러기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한다


조선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청나라는 오랑캐로 배울 게 없다. 사절단의 상급 양반 나으리들은 물론 하인 장복에 이르기까지 한치도 다르지 않게 하나처럼 말하고 한결같이 생각했다.  


연암이 보기에는 달랐다. 청나라는 보잘것없는 오랑캐가 아니었다. 당시 황제 건륭제는 강희제, 옹정제에 이어 3대 청나라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건륭제 당시 중국의 GDP는 세계 GDP 1/3이었다고 한다. 중국 측 주장이긴 하지만. 서양의 통상요구를 청나라는 거절했다. 당시 중국으로선 수입해 올 것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술로나 경제적으로나 청나라가 앞섰던 것은 사실이다. 


청나라의 수도 연경은 세계 문명의 저수지였다. 서양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물건들과 문명들이 만나 다시 각지로 흘러가는 지성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였다. 새로운 문명의 활기가 넘치는 그 중심에 청나라가 있었다. 박지원은 오랑캐 국가가 아닌 신생국 청나라의 활기와 힘을 거대시장 유리창에서 만난다. 


눈알이 아플 정도 관찰하며 열정적으로 여행을 하던 박지원은 서민들의 생활도 눈여겨본다. 비가 오면 진득진득해질 것 같은 길에는 깨진 기와 조각과 냇돌을 이용해 무늬를 낸다. 진창이 될 염려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똥지게를 짊어지고 다니며 온갖 똥을 모아 거름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것은 거름으로 이용될 것이다. 버려질 똥과 깨진 기와조각까지도 알뜰하게 활용하는 검박한 실용성이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하게 된 내공이었던 것이다. 그러하므로 스스로 하급선비라 자칭하며 기와조각과 똥 부스러기에서 배울 것이 있다고 한 박지원의 글은 꼭 이렇게 읽힌다.  


똥만도 못한 생각을 하는 구려
 

그렇다면 웃을 수밖에. <열하일기>는 유머와 해학으로 가득하다. 바보들에게 진지하게 화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 그래서 박지원은 스스로 '소소(笑笑) 선생'이라 불러 달라했는지 모른다. 



경계에 선 자유인 연암 박지원의 시선


박지원이 버젓이 청나라 여행기라고 <열하일기>를 펴냈지만 실은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사절단장 8촌 형을 무척 성가시게 졸라  '빽'으로 슬리 슬쩍 껴 들어간 그림자 같은 존재여야 했다. 있으면 귀찮고 없으면 더 좋은 존재랄까? 하지만 그 덕에 박지원은 패키지 여행같이 따박따박 해야할 일이 정해진 사절단과 달리 자유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그의 자유여행과 경계선에 선 자유인의 시선은 여행기에서 빛을 발한다. 


황제는 서번(티베트)의 승왕(판첸라마)을 맞이하여 스승으로 삼고 황금전각을 지어 거기에 거처하게 하고 있다. 천자는 무엇이 '괴로워'서 이런 격에 넘치고 사치한 예우를 하는가? 명목은 스승으로 모시면서도 기실은 황금전각에 그를 감금해 두고 세상이 하루하루 무사하기를 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본즉 서번이 몽고보다 더 강성함을 알 수 있겠다. - <열하일기> 황교문답에서


건륭제 70세 생일 만수절을 축하하러 간 사절단에게는 연달아 "오 마이 갓"인 상황이 펼쳐진다. 연경에 도착했다. 말이 토할 정도로 벅찬 일정이었다. 그런데 건륭제는 열하로 피서를 떠났단다. 


"오 마이 갓!"


다시 무박 4일로 '한 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 열하에 도착한다. 도착하자 더 큰 "오 마아 갓"인 상황이 기다린다. 판첸라마(티베트 라마교 지도자)에게 인사를 하란다. 풀 먹인 여름 모시보다 빳빳한 성리학자들에게 건륭 황제의 스승이니 그에 맞는 예를 갖추라 한다. 주자 성리학 외에는 불교, 천주교. 심지어 유교에 같은 뿌리를 둔 양명학마저도 모두 이단으로 배척하는 조선선비들에게 말이다. 


"오 마이 갓!"


사절단은 그러니 소동 때마다 우왕좌왕, 중구난방의 격론으로 난리굿을 겪는다. 청나라 황제 명령이니 따라야 한다 말아야 한다, 판첸라마가 선물로 준 불상을 갖고 갈 것이냐 버릴 것이냐, 조선에 가서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등. 


이때 박지원은 다른 시선으로 이 상황을 봤다. 청나라 황제는 왜 한여름철마다 괴롭게 열하로 오는가? 단지 피서 때문이라면 왜 하필 열하인가?  


지금 열하의 지세를 살펴보니 열하는 천하의 두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황제가 북으로 열하에 연이어 가는 것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없다. 두뇌를 깔고 앉아서 몽고의 숨통을 조이려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몽고가 이미 매일같이 출몰하여 요동을 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요동 지방이 한번 흔들리면 중국 천하의 왼쪽 팔뚝이 잘려 나가는 것이다. – <열하일기> 황교문답에서


열하는 전략적으로 연경으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는 요충지이다. 황제의 행차는 군사적 과시이자 위협이다. 반면 판첸라마를 황제의 스승으로 융숭하게 받들고 화려한 전각에 모시는 것은 회유책이다. 


열하의 피서는 황제의 양면전략이로구나! 


청나라의 현재 안정과 번영은 황제의 유연한 외교전략에서 나온 것임을 박지원은 간파한다. 1637년 100년 전 병자호란의 설욕에 갇혀 '복수설치'를 외치며 오직 '북벌'이란 일방향으로 달려가는 조선에 일침을 날리는 것이다. 무엇이 괴로워서 황제가 판첸라마를 스승으로 융숭하게 받들겠는가? 생각해 봐라 이놈들아. 



헌법재판소 천연기념물 제8호 백송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자들은 볼 수 없는 세계를 연암 박지원은 보았다.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어 프레임에 갇힌 세계는 저절로 무능해진다. 무능한 폐쇄집단은 자연스럽게 부패한다. 그런 세상은 10%만 행복하다. 그러다가 5%만 행복해진다. 끝내는 1%에게만 한없이 좋은 세상이 된다. 5천 년의 역사는 내내 그것을 말해준다. 


21세기가 되어 세상은 더 혼탁해진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세계에 갇혀 가는 것 같다. 그러더니 2024년 새해부터 싱숭생숭한 사건들이 터졌다. 그래서 찾았다. 


"좋은 울음터로구나. 가히 한바탕 울어볼 만하구나.”(好哭場 可以哭矣)


박지원이 압록강을 넘으며 말했다. '호곡장'. 답답한 세계에서 벗어나 본 드넓은 하늘과 끝도 없는 평야를 보며 폐부 깊숙이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했던 '호곡장'. 내겐 그런 호곡장이 없어서 여기를 찾았다. 여기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집터다. 박지원은 계동 언덕에 벽돌로 만든 '계산초당'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계산초당이 정확히 어디인지 나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늠름하고 고고한 백송을 보며 생각한다. 


누가 이데올로기로 우리를 포획하려 하는가?


부디 포획되지 말고 자유롭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친다. 




※ 내용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 안 시공간>을 쓴 고미숙선생님의 강의와 글에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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