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서비스로 배우는 UX
2014년 9월 19일, 월스트리트의 역사적인 날!
오전 9시 30분 장이 열리자마자 한 회사의 주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이날 마감시간,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무려 2,31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회사의 대표를 보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증권거래소 앞에 줄을 서고 거래소 안에도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날 그 회사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여기서 치솟은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뢰입니다"라고...
레이첼 보츠먼의 『신뢰 이동』中
현재 이 회사의 시가 총액은 650억 달러 대 수준이다. 제조업인 삼성전자가 500억 달러에 미치지 못함을 감안하면 보이지 않는 물건을 파는 이 기업은 엄청난 디지털 공룡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회사는 세계 기업의 시가 총액 순위 10권 안에 들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유지 중이기도 하다. 이 디지털 공룡은 바로 마윈이 창업한 알리바바(Alibaba)이다.
알리바바는 중국이 전형적으로 앓고 있던 문제, 즉 꽌시(關系)라는 것이 주는 불안감을 해소하며 시장에 첫발을 내딛었다. 2000년 대 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꽌시(關系)라는 문화적 바탕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 신뢰를 구축하지 못하는 ‘저신뢰 문화’가 저변에 깔려있었다.
이러한 저신뢰 문화로 인터넷 등장 후 한동안은 택배기사가 물건은 배달하고 난 후 물건 값을 지불하는 '훠따오푸콴(貨到付款)'이라는 방식이 많았다. 즉 주문자가 물건을 확인하지 않으면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건을 구매한 사이트와 파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 인터넷 상거래를 통한 주문을 믿지 못한 데서 오는 거래 방식이다. 2000년 중반까지도 주문 한 물건 값을 배달원에게 지불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따지고 보면 얼마 전까지 이 방식이 익숙한 방법이기도 했다.
'훠따오푸콴(貨到付款) : 수신자가 얼마의 대금을 지불해야 되는지 명시되어 있는 송장
2000년대 중국의 전자 상거래는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두 가지 문제에 발목 잡혀 있었다.
당신이 결제할지 말지 어떻게 알겠는가?
내가 결제하면 당신이 물건을 보내줄지 어떻게 알겠는가?
중국의 엄격한 금융법 상 허가 없이 결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은 범법 행위에 가까웠다. 하지만 마윈은 시도해보기로 하고 2004년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알리페이를 출시했다. 페이팔 같은 직접 결제 방식이 아니라 알리페이에서 구매자에게 돈을 받아 에스크로 계정에 돈을 예치했다. 판매자가 돈을 보내면 구매자가 물건을 확인하고 만족한다고 확인해야 에스크로(escrow) 계정이 묶인 돈이 풀리는 방식으로 결제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줄였다.
출처 : pixabay 무료 이미지
이는 중국인이 가지고 있었던 믿을 수 없는 곳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점, 모르는 사람한테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해소시켜준 것이다.
2002년 중국 은련이 출범하기 전까지 같은 은행이라도 다른 지점의 ATM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금융서비스가 낙후되어 있었다. 마윈은 겨우 은련 출범 2년 후인 2004년에 마윈은 알리페이를 설립해 냈다. 그 후로 타오바오를 중심으로 한 알리바바의 다양한 커머스 채널에서 수 많은 거래가 알리페이로 이뤄지게 됐고 2011년 오프라인 생활밀착형 소액결제 부분까지 사업분야를 넓히게 된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알리페이 QR이다.
그리고 이러한 알리페이는 엄격한 중국의 금융법을 이겨냈다. 실제로 중국 금융법은 묵시적으로 이러한 서비스들을 인정하는 추세이기도 하고 2010년 비금융 지불업체 관리방법 제정이나 2017년 QR결제 관리 방법 제정 등이 이루어졌다. 공룡기업의 시장 혁신이 법마저 변화시킨 사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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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내가 중국에서 지낼 때만 하더라도 가게에서 현금을 내면 100위안 지폐에 있는 마오쩌둥 머리를 손톱으로 긁어보았다. 위폐가 하도 많아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손님은 지폐 여러 장을 내고 주인은 지폐를 확인하고 당연히 계산대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현재보다 길었다. 신용카드가 현금보다 결제 시간이 더 걸렸고, 돈을 던지고 거스름돈을 계산대에 두는 문화도 있었다. 게다가 노점 음식 문화가 발달됐고 위생 문제로 현금보다 페이를 더 선호하게 되면서 발전의 가속도가 붙었다. 또한 일반 PC 보급률보다 높았던 모바일 디바이스 보급도 한몫했다.
중국인이 평소에 느끼던 느린 계산 문화와 위생문제 등을 해소하며 편리함과 쾌적함을 가져다주는 경험을 만들었다. 즉 사용자를 향한 서비스가 성공을 만들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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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라는 이미지를 검색하면 의외로 위험한 그림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언덕 위에서 한 명이 손을 내밀고 있고 올라가려는 사람이 손을 뻗는 그림, 아슬아슬하게 서로 손이 닿지 않는 이미지 같은 것 말이다. 아마도 신뢰는 이런 손이 닿지 않는 틈새의 위험을 줄이는 것과 같다.
알리페이의 성공은 낯선 사람이 우리를 배신하면 어쩌지?라는 근원적인 위험을 없애고 신뢰 도약을 통해 믿음이라는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 준 대표 케이스이다. 이러한 서비스는 중국인에게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형성돼야 거래가 성사되는 것은 아님을 증명해 냈다.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와 텐센트의 위쳇페이 점유율은 중국 지불 결제의 93%를 차지한다. 모바일 결제 총액은 연간 4 경원에 이른다고 한다. 포털사이트에서 알리페이의 성공 전략을 검색하면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모든 근원에는 중국문화 저변에 있던 꽌시와 저신뢰 문화를 뒤집는 사용자를 향한 서비스가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때로는 좋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기 위해 화려함과 트렌드를 쫓으려 한다. 하지만 좋은 사용자 경험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로부터 그리고 사용자가 불안해하던 위험을 신뢰로 바꾸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해당 글은 요즘IT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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