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충돌의 기억
우리는 놀이동산의 범퍼카를 즐거워한다.
운전을 잘하지 못해도,
방향 감각이 없어도,
서로 부딪히고 박아도 사람들은 웃는다.
왜일까?
안전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내가 평화주의자인 줄 알았다.
의견 충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달라도 굳이 꺼내지 않았고,
그냥 속으로 넘기는 편이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는 충돌 자체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
위험한 충돌을 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나는 1학년 때 F학점을 받았던 수업을
졸업을 앞두고 다시 듣게 되었다.
내 학과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고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그 강의에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지적 충돌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 수업의 이름은 ‘토론과 발표’였다.
우리는 토론을 하기 위해
찬성과 반대를 나누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가위바위보에서 졌다.
그래서 내가 동의하지 않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대충 시간을 때우고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자가 진행을 시작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조금 설렜다.’
나는 상대의 주장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 사람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다가
작은 균열 하나를 짚어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강의실의 분위기가 아주 미묘하게 변했다.
약 80명쯤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오-“ 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짜릿’했다.
그리고 조금은 의기양양하게 생각했다.
‘아, 소크라테스 화법이라는 게 이런 건가.’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충돌은 항상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조건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놀랍도록 재미있다는 것을.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왜 어떤 충돌은 위험하고
어떤 충돌은 즐거운 걸까.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다.
왜 어떤 충돌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어떤 충돌은 짜릿하게 만드는지.
왜 어떤 논쟁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어떤 논쟁은 사람을 살아 있게 만드는지.
나는 오랫동안 그 질문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한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묵혀둔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다.
질문은 더 깊어졌고 궁금증은 남았다.
이러한 충돌은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나는 이 질문을
하나의 사고 실험처럼 관찰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