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공기가 바뀌는 순간
여기서 내가 말하는 세계관 충돌은
거창한 이념의 충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은 훨씬 사소하다.
어떤 사람은 눈앞의 일을 보고,
어떤 사람은 그 뒤의 구조를 본다.
결국 우리가 부딪히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사고방식일지도 모른다.
대화가 잘 흘러가다가
누군가의 한마디로 공기가 살짝 바뀌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 말이다.
금요일 오후 6시.
퇴근 중, 웃으며 인사를 건네던 순간이었다.
나는 가볍게 말했다.
“차주 출장 가실 때 비행기에서 읽을 책 하나 추천 드릴까요?”
그분이 책 제목을 잠깐 보더니 말했다.
“사양하겠습니다. 이 책 읽으면 제가 겪은 사태를 다시 안 겪는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또 하나,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장면.
“이 부분은 조금 단순하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말한 사람에게는 설명이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제가 단순하다는 뜻인가요?”
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방금까지는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화의 결이 어딘가 어긋난 느낌.
이유는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타이밍이 문제다.
왜 ‘지금’ 그 말을 꺼내는지.
어떤 사람에게는 단어 하나가 걸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장소가 문제다.
왜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어떤 사람에게는 말하는 방식이 불편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누가’ 말했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 말의 ‘의도’를 의심한다.
그럴 때 사람들은 보통 이런 생각을 한다.
“아, 괜히 말 꺼냈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의견 충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달라도 굳이 꺼내지 않았고
그냥 속으로 넘기는 편이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
‘굳이 설득할 필요는 없다. 내 기준만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나는 그런 생각으로 내 표현을 미뤄두곤 했다.
하지만 표현도 사용하지 않으면 쇠퇴한다.
어느 순간 나는 내 생각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잃어가고 있었다.
세계관 충돌은 생각의 문제가 아니다.
관계의 문제일 때가 많다.
현실의 세계관 충돌은 단순한 의견 교환이 아니다.
그 뒤에는 항상 관계가 걸려 있다.
먼저 나 자신과의 관계.
‘자존감’이 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도구로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내 말이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묘한 만족감을 느낀다.
반대로 내 말이 부정되면
단순히 생각이 반박된 것이 아니라
내가 거절당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는 종종
[내 말 = 내 생각 = 나]
로 동일시하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소속감이 있다.
사람은 공동체에 속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그래서 관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내 의견을 살짝 접어두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인정 욕구도 있다.
내 생각이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충돌은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를 바꿀 수 있는 사건이 된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고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관계의 온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충돌을 피한다.
굳이 말하지 않고
굳이 설명하지 않고
굳이 논쟁하지 않는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생각을 드러내는 것보다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보니 모든 충돌이
그렇게 불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충돌은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우리는 세계관이 달라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걸려 있어서 불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남는다.
왜 어떤 충돌은 위험하고
어떤 충돌은 즐거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