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맨 뒷자리에서

by 순수


나의 기분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내 마음껏 세상을 뾰족하게 조각내 재단하며 걷던 하루였다.


그렇게 한참을 땅만 보고 걷다 집에 가는 버스에 탔고

사람들과 부대끼기 싫었던 그날의 나는

혼자 앉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맨 뒷자리에 탔다.


왠지 표정도 신경질적으로 보이던 버스 기사님.

화가 많으신 분일까, 화가 난 상황에 놓이신 것일까 혼자 생각할 때쯤

버스는 다음 버스 정류장을 향해 천천히 정차했다.

맨 뒷자리에 있던 나에게는 당연히 들리지 않았지만

기사님께서는 꽤 큰 목소리로 중얼중얼 무언가 얘기하시는 것 같았고,

이어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아주 느리게 걸어오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 순간 나는 버스 기사님의 짜증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생각했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가 탄 버스의 기사님을 화가 많은 사람이자 짜증이 많아 버스 기사 일을 하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저런 사람이 버스 일을 하면 너도 나도 힘들겠다는 생각까지 할 때쯤,

할아버지께서는 버스에 탑승하신 뒤 기사님께 무언가를 여쭤보셨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때 천천히 이어지던 질문을 흐릿하게 들으며

기사님께서 답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내가 생각한 그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하지만 맨 뒷자리인 나도 그 내용을 정확히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보통 그 이상의 상세함으로,

기사님께서는 아주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다.

심지어 그 이후에도 "어디를 가려하는데..." 혹은 "어디에 내려야..." 하는 등의 질문을 물어보시는 분들마다 어디서 길을 건너야 하는지, 어떻게 가면 되는지까지도 함께 가르쳐주셨다.


그 버스는 버스 기사님의 화에 차갑게 식어가던 버스가 아니라,

감사함이 끊임없이 오고 가던 버스였던 것이다.

그 기사님은 내가 살면서 만난 기사님 중에 가장 친절하신 분이셨고,

그 버스는 내가 탄 버스 중에 가장 따뜻한 버스였다.

내가 틀린 순간이었다. 맨 뒷자리니까 모든 걸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오히려 맨 뒷자리라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것인데,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세상이 차가워서 나도 얼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날,

사실은 내가 그 버스에서 가장 차가웠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