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며 제발 계곡으로 놀러 가자고 부르짖었다. 겨우 받아낸 ‘이번 주 토요일에 아버지 오전 근무 끝나면 다 같이 배내골로 놀러가자.’ 한마디에 뛸 듯이 기뻤던 금요일 밤의 흥분은 해가 떨어져도, 그 해가 다시 떠올라도 식을 줄 몰랐다.
드디어 다가온 토요일, 점심을 드시고 난 어머니는 우리 형제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복숭아와 삼겹살을 찾아 집 앞 슈퍼로 길을 떠났다. 집에 둘만 남은 흥분한 초등학생 형제. 위험한 냄새가 평화로이 동네에 퍼져나간다.
“동생아, 계곡에 가면 형이 고기 많이 잡아줄게. 너는 나를 잘 따라 다니면서 내가 잡은 고기들을 놓치지 말고 잘 간수하고 있으렴.” 물고기를 놓쳐 형에게 얻어터진 기억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동생은 그럼에도 형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물고기를 담은 바가지를 들고 있는게 좋았다. 운 좋으면 조금 다친 물고기라도 한 마리 얻을 수 있었다. 설사 물고기를 얻을 수 없더라도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복숭아를 먹으며 형이 잡은 물고기를 구경하는 일은 9세 아동에게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었다.
뜨거운 도시를 떠나 계곡에서 실컷 놀고먹을 생각에 들뜬 형제는 만세를 부르고 손을 꼭 쥐고 춤을 추며 돌다가 양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신이 나는 만큼 빨라지는 속도와 속도가 붙을수록 더욱 신나는 마음. 빨리 돌아서 어지러운 것인지, 어지러울만큼 신이 난 것인지 경계가 희미해질 때쯤 동생의 발은 중력을 거슬러 땅에서 떨어지고, 두 손만 내게 의지한 채 몸은 허공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무슨 생각에서였을까, 나는 만화에서 자주 보던 그림을 떠올리며 손을 놓았다. 동생은 포물선을 그리며 우아하게 날아가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아버지가 아끼는 커다란 도자기 화분으로 날아가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쿵.
동생은 바닥에 떨어졌고 이내 동네가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만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낸 나는 뿌듯함에 킬킬거렸다. 동생은 조그마한 일에도 곧잘 우는 어린아이였다. 웅크려 머리를 감싸고 있던 제 손을 본 동생이 소리를 질렀다. “형, 내 머리에서 피 난다!” 머리에서 피가 나는 일은 사람이 죽을만큼 다쳤을 때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형에게 동생은 벌건 선지피로 흥건해진 제 손을 암행어사 마패마냥 내밀었다.
일순간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이렇게 동생을 잃을 순 없었다. 전화기부터 찾았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TV 프로그램은 ‘긴급구조 119’ 였다. “거기 119죠? 제 동생이 머리에서 피가 많이 나요...” 119에 전화해서 119가 맞는지 물어본 후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곧 의사가 우리 집에 와서 동생을 살려줄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전화를 끊고나니 집은 고요했고 동생이 앓는 소리만이 집을 메웠다. 용기내어 긴급출동을 요청했으나 동생 머리의 피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동생은 죽어가고 있었다.
이 때, 옆집 대학생 누나가 대문 밖에서 팬티바람의 피범벅 형제를 불렀다. “에구, 놀다가 다쳤구나? 집에 구급상자 좀 가져와봐.” 평소 우리의 놀림감이었던 천사는 지상에 내려오자마자 구급상자에 있는 소독약과 솜으로 동생을 다시 살려내셨다. 지혈이 끝나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멀리서 구급차의 다급한 사이렌이 들렸다.
엄마는 집 앞 슈퍼에서 동네 아줌마들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 복숭아가 더 맛있을 것 같다.” “아니다, 오늘 당장 먹기에는 약간 물러진 이 복숭아가 더 맛있을 것이다.” “계곡 가서 먹으면 다 맛있을테니 아무거나 사가라. 너거 아들들 돌도 씹어묵잖아.”
갑론을박을 잠재운 것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였다. 미친듯이 달려와 하필 엄마 앞에 선 구급차. 창문을 열고 소방대원은 엄마에게 물었다. “여기 국민주택 13호가 어디입니까?”
“어? 13호는 우리ㅈ....”
구급차는 엄마가 집에 도착하고 한참 뒤에서야 집에 왔다.
“지혈은 다 되었네.” 약간 김빠진 소방관 아저씨는 동생과 엄마를 병원까지 태워주셨다.
나는 무너진 세상에 혼자 앉아 있다가 퇴근한 아버지를 만났다. 구급차가 출동했다는 소식에 중앙동에서 동래까지 30분만에 주파한 아버지는 ‘놀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다. 병원에 도착한 동생은 머리에 세 바늘을 꼬메고 돌아왔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 머리를 감지 못한 동생은 여름 내내 머리에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올 여름은 마치 작년처럼 더울 예정이라고 한다. 동생의 머리에는 아직 흉터가 조금 남아있다. 내 딸보다 한 살 많은 동생의 딸이 내 딸을 가끔 괴롭히면 내 아버지는 ‘놀다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