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사실 이 영화는 한 번 포기했던 영화다. 예전에 조제와 츠네오의 첫 만남까지 보고 영화를 껐었다. 재미가 없었다기보다는 그냥 그날 영화를 보기가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고 한참동안 이런 영화가 있다라는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최근에 한국에서 리메이크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불현듯 찾아보게 되었다.
우선 확실하게 좋았던 건 조제라는 캐릭터였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제에게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한 것이 2003년인데,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과연 이만한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너무 탄탄하다.
조제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고 할머니와 둘이서 딱 봐도 가난한 집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다른 모든 면에서 일반인과 동일하다. 아니, 일반인을 능가하는 면도 있다. 탁월한 요리 솜씨는 츠네오와의 첫 만남이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고,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몇 번이고 읽어 쌓은 잡다한 지식도 비장애인 못지않다. 심지어 츠네오와 연인 관계에서는 본인이 먼저 옷을 벗으며 적극적인 성욕의 주체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정신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츠네오와 오해 속에 멀어진 시간 동안 함께 살아온 할머니마저 돌아가셨음에도 꿋꿋이 혼자서 잘 살아가려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이라는 설정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장애인이면 장애인답게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과 그럼에도 뼛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장애인인 자신을 남들이 보고 가볍게 여길까봐 산책하는 유모차 안에서 담요를 뒤집어썼고, 그 안에서도 혹시 모를 괴한에 대비해 칼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시 자신을 찾아온 츠네오를 보고서 본인의 약한 마음을 감추려 애쓰다가 결국 마지막에 되어서야 오열하며 붙잡기도 했다. 이렇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적절히 제거하고 영화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은 더욱 가미한 캐릭터 작업은 마지막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여느 때처럼 요리를 하다가 떠오른 그녀의 표정과 앵글 밑으로 다이빙하며 쿵 소리와 함께 사라진 그녀의 모습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은유도 나쁘지 않았다. 단편 소설에 기반을 둔만큼, 소설 특유의 은유와 이를 표현한 영화의 화면이 잘 조화를 이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목이 기억에 남는데,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모두 주인공과 연관된 상징들로 영화 안에서 등장한다. 호랑이와 물고기들의 상징은 꽤나 직설적이다. 동물원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가장 무서워하는 호랑이를 함께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슬프게 여겨진 것도 아마 그러한 상징이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두려움”을 가장 안전하게 맞이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특히 그녀와 같은 장애인들에게는 보호자와 함께 있을 때일 거니까. 물고기들은 보다 좀 더 그녀 자신에게 가까운 메타포인 것 같다. 물 밖으로 나올 수 없는 물고기들. 그녀가 바다를 테마로 한 호텔에서 츠네오에게 말한 것이 그녀의 가장 솔직한 심경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심해에서 츠네오와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기 위해 위로 올라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녀에게 물은 끊임없는 외로움이고 따라서 그 속의 물고기는 언제나 외로운 존재다. 그러나 그 속에서야 그녀와 물고기들은 비로소 숨쉴 수 있고, 애초부터 그녀와 외로움은 같은 존재와 다름 없었다. 결국 다가올 츠네오와의 끝에서 그녀는 다시 물로 돌아갈 뿐이라고 스스로 다독여야 했기에, 그리고 그러한 결말이 이미 다 정해져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츠네오에게 그런 말을 속삭이지 않았을까. '조제'라는 상징은 솔직히 말해서 잘 모르겠다. 프랑수아 사강의 책에 나온 주인공 이름이라는데 이건 책을 읽어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를 조제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면 아마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조제의 이상”을 상징할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면 결국 영화의 제목은 조제의 이상과 그녀의 외부적, 내부적 현실이라는 테마로 결론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특히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초반에 츠네오와 섹스를 하고 있던 이름 모를 여성과 츠네오는 정확하게 어떤 사이인지, 이웃의 어린 여자아이들과 변태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들이며 어떤 사람들이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지, 조제와 보육원에 함께 있었던 남자는 조제와 구체적으로 어떤 사이인 것인지, 하다못해 주인공의 강아지들은 그들이 떠난 이후로 어땠는지 이런 세밀한 부분들이 그저 '이런저런 인물들도 있었습니다'라는 식으로 소비되는 게 조금 아쉬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역할이 너무 한정적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이름 모를 여성은 '츠네오가 사실은 그렇게 착한 놈은 아닙니다'라는 것을 알리기에 적절했고 이는 결국 그의 조제를 향한 마음이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사랑이었다는 것으로 연결될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의 시선은 츠네오의 시선을 중심으로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그렇게만 소비되면, 결국 츠네오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작은 구멍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다른 인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조제를 엄마라고 부르는 남자는 조제의 보육원 시절과 현 시점 사이의 이야기에 작은 공백을 만들고 그것이 스토리 내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를 떠나 관객들은 그 깔끔하지 못한 구멍을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궁금해할 수 밖에 없다. 뭐, 어쩌면 그 부분은 관객들이 스스로 채울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그런 스타일을 감독의 부족한 스토리텔링 또는 편집기술 부족 또는 무책임함과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마이너스를 주고 싶다.
평점 : 3.5 / 5
*****기준******
1 : (망작) 이걸 본 시간이 아깝다.
1.5 : 봤던 거 한 번 더 볼껄.
2 : 장점보단 단점이 많네.
2.5 : 단점 하나가 너무 크다.
3 : (평작) 뭐, 장단점 크기는 비슷하다.
3.5 : 장점 하나가 압도적이다.
4 : (수작) 단점이 거의 없다.
4.5 : 내 이름을 걸고 추천할 수 있다.
5 : (명작) 죽기 전에 하나만 더 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