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악범을 대하는 적절한 자세

<마인드헌터 시즌1>

by 배석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게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다. 가장 먼저 접한 그의 영화는 “나를 찾아줘”였는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생애 가장 충격적인 영화였을 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너무 어릴 때 봐서 그런가). 그리고 두 번째로 본 영화가 “파이트 클럽”이었는데, 이때부터 조금씩 데이비드 핀처의 작품을 찾아보기 시작한 것 같다.



마인드헌터 1.jpg 데이비드 핀처 감독



일반적으로 데이비드 핀처라고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것이 '스타일리스트'라는 수식어다. 화려한 영상미와 특유의 스타일은 데뷔작이 혹평을 받았음에도 지속적으로 헐리웃이 이 감독을 주시했던 이유였다. 그러나 내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나는 데이비드 핀처가 '관찰자의 시각에 충실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감독 중에는 자기만의 상징과 독특한 표현법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본인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미적으로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겟 아웃", "어스"의 조던 필 감독이 있겠는데, 이들은 정제되지 않은 사실보다 감독의 시각을 입힌 은유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데이비드 핀처는 마치 프랑스의 18세기 사실주의 문학 작가들처럼 기존의 낭만주의 기조를 버리고 최대한 본인이 보고 있는 장면을 사실에 가깝게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작가가 개입해서 전개를 흔들거나 인물의 심리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방향은 지양하고, 대신 그 공백에 객관적인 시선과 묘사의 표현을 가득 담는 것이다. 그가 특정 시점부터 소설, 실화 기반의 영화에 주력하는 것도 이런 성향과 연관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평론가 중에는 "조디악" 이후의 그의 스타일이 화려한 스타일에서 정적인 연출로 변화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스타일리쉬한 연출이나 화면과 별개로 “파이트 클럽”, “세븐” 같은 영화들에서부터 이미 그의 그러한 사실주의적 경향은 많이 등장했다고 생각한다.



마인드헌터 2.jpg 홀든 포드와 에드먼드 캠퍼의 만남



약간 딴 길로 샜는데, 같은 맥락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인드 헌터”도 실화 기반의 소설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데이비드 핀처는 이 드라마의 제작을 맡았으며, 연출까지 맡은 회차는 1, 2, 9, 10화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맡은 회차가 아닐 때도 계속해서 촬영장에 들려 연출을 지도했다고 하니, 데이비드 핀처 필름 중에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일단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주인공 홀든 포드였다. 홀든 포드는 전 회차를 관통하는 드라마의 핵심이고 프로파일링 연구의 시작도 사실상 이 젊은 요원의 호기심에서 출발했기에, 그의 감정과 생각을 10개의 영상 동안 섬세하게 따라가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 극 초반, 포드는 인질 협상을 담당하는 FBI 요원으로서 새로운 범죄자들에 대해 당혹감과 호기심을 느끼고 당대의 미약했던 범죄 심리학의 시초를 설립하고자 노력한다. FBI 요원이라는 신분에도 시간을 쪼개 히피 대학교에 등록해서 당시에는 천시 받던 심리학을 배웠고, 상사를 설득해서 거의 금기시되던 ‘흉악범들의 인터뷰’까지 시도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난한 과정은 쌓여가는 지식과 그의 선천적인 감각 및 저돌적인 성격을 통해 일련의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면서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성과가 쌓일수록 그는 점차 본인의 생각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갖는다. 8화의 발을 간지럽히는 교장 로저의 사례와 10화에서 틀어진 여자친구 데비와의 관계가 바로 그 예시다. 그는 본인이 구축한 프로파일링 기법과 경험, 직감을 토대로 범죄자, 나아가 일반 사람들의 행동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자만한다. 물론 그의 능력이 워낙 탁월해서 실제로 범인을 잡기도 했지만, 로저처럼 무고한 인물을 교육계에서 퇴출시켜 남은 인생을 망쳐버리기도 하고, 데비의 서운한 마음을 헤어지자는 것으로 단정해 혼자 관계를 단절시켜버리는 등 그러한 성과가 그에게 좋은 영향만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일반적인 범죄 수사물에서 등장하는 정의로운 형사만 생각하던 나에게 홀든 포드라는 인물의 사고방식은 충격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홀든 포드와 브루도스



그리고 처음에 이 드라마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흉악범과의 인터뷰”였다. 앞서 언급한대로 내가 생각하는 데이비드 핀처는 은유나 상징에 몰입하기보다 상황과 이야기를 디테일하게 전달하는 사람이기에, 그런 그가 흉악범을 면담하는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그가 보여줄 “사실성”에 큰 기대를 가졌다. 흉악범들은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통해 그런 절대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악을 저지르는지 항상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드라마 전체는 흉악범들의 인터뷰를 표현하는데 거의 사활을 걸었다. 흔히 범죄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플래쉬백이나 박진감 넘치는 음악도 거의 없다. 오직 유치장 면회 장소에서 범죄자와 요원이 나누는 사실적인 대화, 그리고 그들의 적나라한 표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거의 롱테이크에 가깝게 연출되는 장면들은 감독 본인의 편견이나 미화 없이 정직한 사실만을 전달해주기 때문에, 흉악범을 다루는 영화로서도 매우 영리한 선택이었고 드라마의 주된 메시지와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최근 몇 편의 한국 범죄 영화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던 것 중 하나가 범죄 장면에 대한 묘사였다.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혈흔이 낭자한 장면을 봤을 때, 그러한 장르를 즐기는 사람도 있는 반면 밤에 잠을 설치는 사람들도 있다. 흉악한 범죄를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는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제기된 문제고 이는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거장들도 끊임없이 지적받은, 즉 그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이비드 핀처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많은 감독들이 참고할만하다. 그는 “세븐”이나 “마인드 헌터”같은 작품에서 범죄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서도 그들의 악을 적절하게 표현했다. 이를테면, 흉악범이 본인의 범행을 설명할 때 플래쉬백의 사용을 자제한다거나 그들의 범죄 현장을 낮은 화질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보여주는 등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하는 말이나 사진만으로도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안정적인 전달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우리는 드라마 속의 흉악범에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제된 논리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범죄자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서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막자'라는 드라마 속 행동과학부의 취지와도 연결되는데, 보통 범죄 영화에서 흉악범들의 악함을 강조하는 이유는 관객들이 그들에게 감정적인 불쾌함을 느끼고 끝내 주인공이 그들을 벌함에 따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불쾌한 장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영화들도 이 사후 작업을 잘해서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같은 전략을 쓸 수 없다. 왜냐하면 때로는 범죄자들과 함께 진흙탕을 뒹굴어야 하는 FBI 행동과학부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유도해야 하기 때문에, 드라마는 관객들에게 범죄자를 향한 분노나 적대심보다 차가운 복수 또는 이성적인 호기심과 같은 미묘한 감정을 부여해야 했던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그 목표를 흉악범과의 인터뷰 장면에서 특히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만한 건 ‘연출’이 있을 것 같다. 화면이 화려하진 않지만 허전하지도 않고, 음악이 거의 없음에도 긴장감이 곳곳에 흐른다. 특히 마지막 화에서 에드와 포드가 병원에서 만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다. 오만함이 극에 달한 포드가 흉악범과 단둘이 만나게 되고 점차 공포에 온몸이 떨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포드와 같은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포드가 황급히 병실을 빠져나가 복도에서 공황에 빠질 때, 나는 공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마음이겠구나 싶을 만큼 비슷한 정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데이비드 핀처의 연출력이 극에 대한 장면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마인드헌터 4.jpg FBI 행동과학부의 웬디 카 박사



지금까지 쓰고 보니 워낙 좋아하는 감독이고 또 좋아하는 장르라 좀 과찬한 것도 없진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초반의 지루한 전개가 너무 길었다. 특히 1화는 포드가 인질 협상을 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포드의 호기심, 사건의 시작, 주요 인물의 등장만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쉽게 넘기기 어려웠다. 그래서 1화만 해도 2번 정도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던 것 같다. 사실 데이비드 핀처는 서사의 강약 조절과 흐름을 타고 가는 스토리텔링에도 매우 뛰어난 감독인데, 이번 작품은 영화와 다른 흐름의 드라마이기도 하고 중심적인 내용 자체가 흉악범과의 인터뷰,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감정과 같이 정적인 것이어서 그런지, 한 편 내의 진행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전체 드라마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부분은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2, 3화에 걸쳐 진행되는 에드 캠퍼의 이야기는 너무 길었고, 함께 진행되는 사건의 묘사는 행동과학부의 발전과 맞물려 필연적으로 비중이 약해졌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포드 서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파일링을 통한 사건 해결이라는 부분에서 무언가를 해결했다라는 느낌이 관객에게까지 확 와닿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4화부터의 사건은 본격적으로 수사물의 분위기를 뿜었지만 이를 그대로 끌고 가야할 5화의 추진력이 약간 아쉬웠고, 행동과학부 요원들의 감정선을 정리하는 데 주력했던 6, 7화의 이야기는 인물들에 대한 이해는 높였지만 지금까지 쌓아올린 수사물의 긴장감은 다소 흐트린 감이 있다. 뭐,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선택들이 쌓여 8, 9, 10화의 포드 캐릭터 쇼가 환상적으로 펼쳐질 수 있었다는 지적도 맞고 그 마지막 폭죽이 워낙 화려했기에 이 정도는 충분히 넘어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주장에도 고객을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카 박사라는 캐릭터다. 사실상 카 박사는 FBI 소속이 아니라 고문의 역할로 처음에는 엑스트라처럼 나왔다가 뒤늦게 합류했기에 관객들이 해당 인물을 파악하고 감정 이입을 하거나 적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묘사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와 FBI 요원직 사이에서의 갈등, 레즈비언이라는 설정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장면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서사 전체의 분위기를 위한 도구로 쓰였을 뿐 사실 카 박사의 성향을 잘 묘사하는 장면은 아니었다. 그녀는 약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이를 보살펴주는 섬세한 인물이 아니라, 학구적인 열망과 차가운 두뇌로 행동과학부의 체계와 이성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오히려 감정과 섬세함의 영역은 빌에게서 더 많이 드러난다. 이러한 점에서 해당 장면으로 인해 카 박사의 캐릭터가 매우 애매해졌을 뿐만 아니라 행동과학부의 감찰과정에서 양심을 지키려는 행동, 설문지를 토대로 질문하지 않아 화를 내는 장면 등은 그녀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범죄물에 등장하는 여성은 피해자 또는 피해자의 유족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1970년대쯤으로 추측되는 당시에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지금보다도 훨씬 낮은 시기였기에, 개인적으로 카 박사라는 캐릭터가 좋은 서사 속에서 활약하길 바랐다. 그래서 그런가, 나에게는 드라마 속 묘사가 아쉽게 느껴졌다. 시즌 2에는 어떨지 지켜봐야겠다.




평점 : 3.5 / 5


*****기준******

1 : (망작) 이걸 본 시간이 아깝다.

1.5 : 봤던 거 한 번 더 볼껄.

2 : 장점보단 단점이 많네.

2.5 : 단점 하나가 너무 크다.

3 : (평작) 뭐, 장단점 크기는 비슷하다.

3.5 : 장점 하나가 압도적이다.

4 : (수작) 단점이 거의 없다.

4.5 : 내 이름을 걸고 추천할 수 있다.

5 : (명작) 죽기 전에 하나만 더 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