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사실 나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본 편이 아니다. “좋은 친구들”, “셔터 아일랜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그리고 이번 “아이리시맨” 정도. 더구나 미국 역사에도 관심이 없고, 마피아를 다룬 영화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한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든다. 그리고 의구심보다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그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아쉬움이다.
이 영화는 3시간 29분의 매우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처럼 마음을 단단히 먹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아이리시맨”은 보다 자극적이고 시원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능케 한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일단 영화의 ‘서사 구조’가 한 몫을 한다. 이 영화는 프랭크 시런이라는 한 노인의 독백에서 출발한다. 그가 과거 버팔리노 조직과 함께 일하면서 겪은 일을 병원에서 하나씩 고백하는데, 그 사이에 지미 호파를 죽였던 날을 다시 한 번 기준으로 삼는다. 즉, 지미 호파를 죽였던 날과 프랭크가 노인이 되어 병원에 머무는 날, 두 액자 속에서 서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로 풀면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서사를 마틴 스콜세이지는 유려하게 정리해서 관객들이 먹기 좋게 차려준다. 장면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짚어가면서도 복잡한 정보가 나오면 한 번 더 반복 및 정리해주고, 이쯤이면 이해를 했겠구나 싶을 때는 다시 속도를 내서 타이트하게 질주한다. 즉, 관객이 머리 아프지 않도록 감독이 대신 머리 아파가며 영화를 구성한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연출력’도 돋보였다. 프랭크가 페인트칠을 하고 총을 버리는 장면을 반복함으로서 그가 일정기간 맡았던 일을 압축적으로 표현했고, 지미 호파의 아내가 차에 타서 시동을 걸기 전 타 세력에 의해 차가 폭파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는 장면은 약 1분 남짓한 장면임에도 극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틴 스콜세이지가 최근 작품들에서 자주 쓰는 장면이 있는데, 등장인물이 카메라를 정확하게 응시하고 관객들에게 일갈을 가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방법은 나쁘게 쓰면 이야기에 몰입한 관객들을 다시 현실로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몰입을 죽일 수 있지만, 현실과 맞닿은 부분을 비판할 때나 관객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으로서는 효과가 좋다. 왜냐하면 어차피 관객들이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을뿐더러 대사나 주인공의 연기를 통해 이러한 직접적인 전달까지도 하나의 유머러스한 장면처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틴 스콜세이지처럼 작가주의적인 시각을 토대로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감독이라면 이러한 방법의 효과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외에도 미용실 주변이라는 하나의 장소에서 선의 구분 없이 오가는 앵글, 중간 중간 CG를 사용해서 표현한 장면 등은 그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80세에 가까운 감독이 연출할 수 있는 장면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트렌디하고, 다채로웠다. 이러한 장면들이 긴 러닝타임 속에서 지루할만하면 등장했기 때문에 ‘긴 영화는 지루해서 못보겠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이 영화만큼은 예외적으로 즐겁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뭐, 사실 애초에 마틴 스콜세이지의 영화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관객도 없겠지만.
마틴 스콜세이지는 긴 커리어 동안 워낙 많은 영화들을 연출했기 때문에 그의 영화를 하나의 테마로 요약하기란 굉장히 어렵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은 ‘미국 역사의 어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나 이번 ‘아이리시맨’은 소재가 완전히 상반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진행 방식이나 주된 연출 방법, 주제의식, 그리고 원작이 있다는 점까지 매우 비슷하다. 특히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미국 금융권 엘리트들의 더럽고 추한 행보들을 낱낱이 까발리며 사람들에게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재미를 주었고, ‘아이리쉬맨’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미국을 지배한 마피아 세력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풀어내어 감춰놨던 진실이 풀려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주었다. 서로 전달하는 재미는 다르지만 결론적으로 두 이야기 모두 미국이 가장 부흥하고 있다고 느끼던 시대의 이면에 감춰진 어둠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에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1950년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역사를 알아보는 편이 좋다. 미국 국민들이라면, 특히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해본 베이비붐 세대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아, 그때 그랬지’라는 감각에 더욱 즐거운 관람을 할 수 있겠지만, 나처럼 미국 역사에 별로 관심이 없는 한국 20대 청년이 볼 때는 그들과 동일한 수준의 감각적인 관람을 즐기기에 무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거 안 찾아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더’ 재미있게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조승연 작가의 유튜브를 추천한다. 복잡한 역사를 체계적이고 유려하게 잘 풀어서 설명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영상을 보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더불어서 마피아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반가운 얼굴들이 많고 그래서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대부 3부작”을 구매해놓긴 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아직 보지는 못했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조 페시 같은 명배우들은 젊은 시절 마피아 영화에서 주된 활약 펼쳤다. 그래서 그러한 영화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면 이 영화를 더욱 감명 깊게 볼 수 있을 것이고,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앞선 영화들을 먼저 본 후에 몇 달 정도 묵혀두었다가 이 영화를 꺼내 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이제 영화 내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해볼까 한다. 영화를 보다보면 신기하게 ‘돈’에 대한 언급은 많이 없다. 아니, 돈을 언급하는 대사나 상황은 많지만, 자신의 부를 위해서 움직이는 인물은 거의 없다. 특히 주인공인 프랭크 시런이 어떻게 버팔리노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평범한 트럭 운전사였던 그가 어떻게 페인트칠까지 하게 되며, 왜 관련된 모든 이들이 죽고 본인만이 남은 상황에서도 호파를 살해한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하는지 생각해보면, 그 중심에 돈은 한 푼도 없다. 심지어 그는 나레이션에서 갑자기 돈이 부족해진 적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어떤 일을 하게 된 이유가 돈에 있던 것은 아니었다고 직접 언급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조직의 일에 충성을 바쳤던 것일까.
나는 그가 미국 사회 속에서 ‘부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이민자 출신이다. 당시 미국 사회를 생각했을 때 이민자들은 거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더럽고 술이나 먹는 불결한 족속들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이자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이미지를 생각해봤을 때 상당히 아이러니한 점인데, 어쨌든 그랬다. 그리고 사회가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데 이민자들이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으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정부와 법에 대한 불신은 마피아의 일상적인 접근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소속감’을 그들은 범죄 조직에서 찾게 된다. 우리가 법치주의 사회에서 일원으로 함께하기 위해 법을 지키는 것처럼, 반대로 마피아 사회에서는 범죄와 살인이 일원으로 함께하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이기에 프랭크 시런은 자신을 받아준 마피아를 위해서 기꺼이 빨간 페인트를 총으로 칠했다. 심지어 그가 오랫동안 모시고 함께 일했던 지미 호파까지도. 그는 자신의 조직과 가족, 그리고 본인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이민자 1세대는 처음부터 미국 사회의 일원이었던 이민자 2세대의 눈에서 볼 때 대단히 삐뚤어진 사회적 이탈자일 뿐이다. 딸 페기의 눈을 통해서 마틴 스콜세이지는 그러한 아이러니를 대단히 강조했다. 페기는 프랭크 시런과 러셀 버팔리노의 폭력적인 행태에 거부감을 표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했던 지미 호파를 프랭크 시런이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버지와 연을 끊는다. 프랭크 시런이 왜 그런 일까지 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거칠기는 했지만 그가 딸 페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생각하면, 분명 범죄자이고 나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객들은 그에게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병실에서 혼자 누워있는 그를 보며 우리는 과연 이러한 현실이 누구의 책임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과연 사회 소속원으로서 제대로 취급해주고 있나, 아니면 그들을 배제해버려 우리의 손으로 폭력적인 세상을 만들고 있나. 마틴 스콜세이지가 프랭크 시런의 노년기를 대단히 길고 천천히 표현한 것이 마냥 그가 노인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출신으로서 본인이 이 사회에서 받았던 여러 가지 현실적인 한계와 방해들을 노인이 된 프랭크 시런에게 겹쳐보고 그 이야기를 정확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평점 : 4.5 / 5
*****기준******
1 : (망작) 이걸 본 시간이 아깝다.
1.5 : 봤던 거 한 번 더 볼껄.
2 : 장점보단 단점이 많네.
2.5 : 단점 하나가 너무 크다.
3 : (평작) 뭐, 장단점 크기는 비슷하다.
3.5 : 장점 하나가 압도적이다.
4 : (수작) 단점이 거의 없다.
4.5 : 내 이름을 걸고 추천할 수 있다.
5 : (명작) 죽기 전에 하나만 더 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