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영이의 책 파먹기
그의 소설 <권태>를 보면 활자 하나마다 뜨거운 여름태양에 늘어질 대로 늘어진 권태감이 밀려온다. 하루의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어 사는 바지런한 누군가의 눈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나태한 쓰레기 정도로 보일지도 모를 그의 권태. 자기 고백적 성격이 강한 그의 소설 속 ‘나’는 주체적이지 못하고 병약하기까지 하다.
좀체 알 수 없는 괴이한 문장들로 가득한 이야기를 써내고 한창 젊은 27세에 사망한 그를 사람들은 천재라 칭하기도 한다. 희한하고 난해한 문장 좀 찌그려 놓으면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 의해 천재로 추앙받는 그들만의 리그가 싫어 작가 이상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커져갔다.
갑작스레 장시간 대중교통 안에 갇히게 된 날, 하필 그날은 이동시간 중 읽을거리를 따로 챙겨두지 못했다. 가방을 뒤적이니 며칠 전에 넣어둔 이상 단편소설집이 손에 잡혔다. 읽어 보았던 소설을 제외시키니 <권태>가 눈에 들어왔다. 발버둥 쳐도 늘 똑같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듯한 일상에 권태를 한가득 느끼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남아 있는 이 치사스러운 인간 이욕(利慾)이 다시없이 밉다. 나는 이 마지막 것을 면해야 한다. 권태를 인식하는 신경마저 버리고, 완전히 허탈해 버려야 한다.” - 이상, <권태> 中 -
‘아!’하는 무언가가 가슴을 치고 지나간다.
그렇다.
마지막 것을 놓지 못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바보의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삶의 권태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희미하게 잡고 있는 이성의 끈 하나가 이토록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권태에 빠진 듯 보이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수치심.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꼭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 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 이상, <권태> 中 -
어쩌면 병약하고 수동적인 신체 속에 갇힌 그의 영혼은 생동하는 날 것 그 자체였는지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영혼이 함께 병들었다면 극한의 무기력한 자신을 문학 속에서 이토록 현실과 분리되어 떠오를 만큼 사실적으로 드러냈을 리 만무하다.
생생한 날 것 그 자체의 영혼으로 생각해보아도, 노력해보아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답답해하면서 병들어갔을 그의 모습이 아련히 그려진다. 아등바등 늘 같은 쳇바퀴를 굴리는 나의 모습 속에서 100여 년 전의 작가 이상을 보았다.
그는 독특함이란 것이 뭇매를 맞던 시절을 살았다. ‘정신병자’소리 딱 듣기 좋을 난해한 문장들과 괴이한 감성들. 그는 꼭 천재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글쟁이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특이함을 용인하지도 않던 시대에, 그것으로 부를 거머쥘 수도 없던 시대에 토해낸 그의 고백은 그래서 더욱 그의 진심어린 생각과 사상들을 담고 있다.
100여 년이나 지난 이후에 그나마 조금 공감 받을 수 있는 그의 너무나도 앞선 생각과 감성들.
그는 혹시 타임머신을 타고 21세기를 건너와 권태가 무르익고 있는 이 시대를
살다가 간 건 아닐까?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랫방에서 남자손님을 맞아들이던 아내와 동거하는 무기력한 남편의 모습, 자살의 단서조차 찾을 길 없는 권태의 극에 외롭게 서있는 개인의 모습. 그런 모습이 병으로 조차 희귀하던 그 시대를 홀로 살아가면서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의 끝에 빈센트 반고흐, 윤동주 등의 많은 예술가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모두 외로웠고, 시대가 용인하는 생각의 판 밖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키워갔다.
어쩌면 이 길이, 보통사람들이 ‘정상’이라고 규정지은 궤도에서 벗어나 꿈을 쫒으며 사는 이 길이 생각보다 더욱 험난하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우회할 수 있는 다른 길의 달콤함에 익숙해지려 노력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길을 벗어나는 순간, 다른 곳에서 기능하는 존재는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번 인식해야 했다. 생각하고 느끼는 내가 아닌, 사회를 굴리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아주 작은 톱니바퀴로서의 나. 생각도 감정도 없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존재. 아무래도 그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작가 이상도 끊임없이 이것들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원하지 않는 사회에 톱니바퀴로 기능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서 육체는 병들어 갔지만 저항하는 정신은 맑게 깨어있었던 것. 맘에 들지 않았던 그의 독특한 사상구조와 문체가 어렴풋 이해가 가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 때문이겠지.
그러나 시대는 변했고, 앞으로 더욱 변해갈 것이다.
독특한 목소리로 말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 그래서 난 끈질기게 살아내는 그 마음자세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내 의지로 계획하고 내 머리로 생각하는 나의 삶. 그것이 모여 거대한 사회 시스템이 먼저가 아닌, 인간이 먼저 눈에 보이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 이상, <날개>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