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를 중점으로
우리가 흔히 화가, 특히 서양 화가를 떠올리면 대부분 떠오르는 화가들은 남자일것이다. 그럼 과연 여성 화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아니다. 남성 작가 못지 않게 여성 작가들도 많이 존재하였는데 단지 사회에서 나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 뿐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가 사라지고, 여자로서 화가라는 직업을 갖고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 시대에 두각을 드러낸 한 여성 화가가 있다. 바로 19세기 초에 등장한 최초의 인상파 여성 화가인 베르트 모리조 이다. 이 영화는 그녀의 삶을 마치 한 편의 명화처럼 아름다운 색감으로 담아냈다. 그녀는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최초의 여성 인상파 화가로써 당당히 한 획을 그었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의 넷째 딸로 태어나서 할아버지인 프라고나르의 영향과 더불어 예술적인 집안 분위기 덕에 어릴적부터 미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 미술을 하려면 집안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같이 그림을 그리던 언니 에드마와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화가로서 삶을 정진해나가기로 할 정도였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자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더구나 모리조같은 상류층 집안이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대 여성에게 결혼은 거의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결혼은 곧 속박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모리조는 이러한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않고, 화가로서 꿈을 이어나가고 싶었기에 ‘비혼’을 외쳤다. 그녀는 주변의 압박에 의해 결국 결혼이라는 규범을 따르긴 했지만, 결혼 후에 꿈을 접은 언니들과는 다르게 결혼을 한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둥 화가의 길을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현재까지도 그녀가 여성 화가로서의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그의 인생에 빼먹을 수 없는 사람은 우리가 흔히 아는 프랑스의 화가 ‘마네’이다. 어느날, 그녀가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작을 하는 중에 마네를 만난다. 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다가가려하지만 유부남인 그를 멀리하는 베르트에게 자신의 작품의 모델이 되어줄것을 부탁한다. 처음엔 경계하다가도 이내 마네의 모델이 되기로 한 베르트. 이미 저명한 화가였던 마네를 만나 그녀는 그림을 배웠고, 서로가 서로의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마네의 뮤즈가 된 그녀는, 마네의 영향으로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도 잦은 만남을 가졌고, 다양한 영감을 받아 그녀도 위대한 인상파 화가가 되는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둘 사이에 로맨틱한 기류가 아예 없었다고 하는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그녀도 마네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마네는 유부남이었기에 그녀는 단호하게 마음을 접고 마네의 동생인 외젠과 결혼함으로써 마네와는 우상으로써 관계로만 남았다.
이 그림은, 베르트의 작품중에서도 유명한 <요람>이라는 작품인데, 작품 속 주인공은 언니 에드마와 그의 아이이다. 아이를 돌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다소 따분해하는 표정과 지친듯한 표정에서 육아에 대한 회의감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결혼에서부터 따라오는, 혹은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던 ‘엄마로서의 여성상'에 대한 베르트의 회의감이 잘 담긴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인상깊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으려했던 입장이 느껴지고 이해가 되었다.
여자로서, 화가로서 사회적 시선과 압박에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간 그녀가 존경스럽다. 실제로 그녀는 유일한 여성 화가로서 인상주의 전시회에도 참여하고, 남편의 외조 덕에 활발하게 경매에 출품도 하고 작품 판매도 하는 등 화가로서의 삶을 이어나갔다. 당대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찾았다는 것은 페미니즘적으로도 큰 행보가 아닐까 싶다. 그녀의 이러한 경우를 통해 용기를 얻어 그녀와 비슷한 길을 따르는 다른 여성들도 많이 생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처음'이라는 것에 항상 큰 의미가 부여된다고 생각한다. 처음 누군가가 미지의 길을 개척해나가듯이, 막연한 어둠을 헤치고 나가면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 처음의 용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술계처럼 남성의 권력이 주류이던 분위기 속에서 여성으로써 겪는 고단함과 어려움도 참 많았을 것이다. 그녀의 발자취로 인해 그 뒤로도 많은 여성 예술가들이 그녀를 보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녀는 페미니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라고 칭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도움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었다는 사실 때문에 성공적인 페미니즘적 발전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집안의 전폭적인 지지와 마네의 도움이 없었다면 꿈도 못 꾸었을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베르트 모리조가 화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화가였던 조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였던 조부 덕에 집안이 예술이라는 장르에 친숙하여 베르트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가로서 꿈을 잃지 않도록 지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네를 만남으로써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예술 활동을 하게된 것도, 마네라는 사람이 남성으로서 예술계에서 기득권자인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단순히 남성이라는 이유로 기득권자가 된것은 아니다. 베르트도 마네와 일종의 스승,제자 관계로서 많은 예술적 영감과 배움을 얻은 만큼, 마네 그 자체로도 실력이 뛰어난 예술가였다. 이런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의 눈에 들었던 베르트이기에 더욱 그 길이 넓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러한 남자 예술가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베르트는 과연 이 시대에 이만큼 이름을 알릴 수 있었을까 싶다.
또한, 영화의 제목이 ‘마네의 제비꽃 여인'이라고 부각되어 주체가 베르트가 아닌 마네에게 초점이 맞춰진듯한 제목에서도 베르트를 완전히 독립적인 여성 화가 자체로 보지 않는 듯한 관점이 보인다. 그냥 ‘베르트 모리조'가 아닌 마네의 여인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 자체가, 아직 베르트를 완전한 여성 화가 자체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의 태도가 함께 느껴진다는 것이 씁쓸하다. 그녀를 최초의 인상주의 여성 화가로 인식하려고 하여도 사회에서는 아직도 남성 화가가 주체가 되는 현실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아무리 여성으로서 업적을 세웠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노력을 해도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 한다면 그건 완벽한 변화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이는 개인의 탓이 아니다, 사회의 인식 변화부터 촉구되어야 한다.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페미니즘 측면에서 중요한 인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사회나 주변의 압박 혹은 분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알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당대에 여성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하고 싶었다면, 남자의 이름으로 내거나 좌절되거나 둘 중 하나였는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베르트는 당당히 여러 작품을 자신의 이름으로 선보였다는 점에서 미술 역사 속 ‘여성'으로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