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프랑켄슈타인> 과 원작 소설을 통한 작품 분석
과연 생명은 창조되어질 수 있는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그리고, 과연 악은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찰도 함께 하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한 괴물과 그를 만든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허구적 이야기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주인공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인간 신체의 접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내겠다는 신념으로 실험을 시도한다. 지금껏 생명의 잉태라는 것은 신의 영역으로 여겨졌으며,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신에게 대적하는 행위이다. 특히, 이 소설이 출간된 18세기의 유럽은 종교의 힘이 막강했는데, 그 속에서 신에게 대항하는 내용의 글을 쓴다는 것은 제법 큰 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중점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인 생명 창조에 대해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 소설을 읽고 과연 ‘악함'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큰 주제가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에게 선천적인 악함이 있다고 믿지만, 괴물은 사람들의 영향으로 자신이 악함을 가진 괴물이 되었다고 말한다. 소설 후반부에서 괴물은 빅터에게 복수를 하는 대립구도로 끝이 나는데,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복수가 과연 내재되어있던 악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괴물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만들어져서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심지어 그 괴물을 만든 장본인인 빅터 마저도 외면한 존재이기에 괴물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함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괴물이 빅터에게 자신의 짝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빅터는 더 이상 이 괴물이라는 존재의 되물림을 지켜볼 수 없어서 짝을 만들어주려다가 포기한다. 여기서, 죽지도 못하고 고독하게 살아가야 하는 괴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저절로 악함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괴물이 탄생되었을 때부터 악함을 갖고 태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언어와 글을 배우는 등 나름의 살 방도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창조주에게 마저 외면받는다.
이름 없는 괴물에 대한 심리 묘사는 매우 섬세하게 표현된다. 세상과 양립할 수 없도록 태어나서 배척당하며 변한 그의 심리적 변화는 살인자 혹은 범죄자에 대한 사회의 책임감과 개인적 특성도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사람을 돕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지만 만든 창조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그 후 그를 돕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으며 점차 분노와 원망이 쌓였다. 그리고 우연하게 저지른 살인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죄책감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며 지속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처음으로 복수와 증오의 감정이 가슴에 차올랐소. 굳이 억누르려 애쓰지도 않았소. 격한 감정의 흐름에 나를 맡긴 채 인간을 해치고 죽일 생각만 들었소. 친구들, 드라세의 온화한 목소리, 아가타의 부드러운 눈빛과 아라비아 여인의 절묘한 미모를 생각하면 나쁜 생각이 사라지고 눈물이 솟구쳐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소. 하지만 그들이 나를 퇴짜놓고 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새삼 격렬한 노여움이 돌아왔소. 인간에게 해를 가할 수 없어 사나운 분노를 물건에 퍼부어댔소 - <프랑켄슈타인> 中
연쇄 살인을 저지른 괴물에게 악감정을 가졌던 독자들도 이 부분에서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즉 사회가 그에게 해온 무관심과 무시도 범죄였다고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려는 모습도 보이지만, 내면에선 뼈아픈 죄책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악이 물들어가는 가운데 처음의 자리하고 있던 선은 사라지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소설은 괴물이 사라지면서 끝이난다. 그는 정말 평생 속죄하며 살았을까? 아니면 계속 희생양을 만들어 악행을 지속했을까? 자살을 암시하지만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여러 시나리오를 상상해본다. 돌이켜보면, 모든 기흉의 출발점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그런 방식으로 태어난 괴물이 겪을 차별과 고통을 한 번이라도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이런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의 범죄는 괴물이 저지르지만,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내고 방치한 것은 프랑켄슈타인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는 괴물 자체가 본질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했을 뿐, 자신의 영향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결국 당신도 자신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리려 했다. 하지만, 괴물의 생각이 아닌 프랑켄슈타인의 생각처럼,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들은 자신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일 뿐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처럼 외톨이가 되어 괴물처럼 복수를 시도했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을 괴물로 만든 것처럼 프랑켄슈타인도 똑같이 괴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괴물은 그런 프랑켄슈타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것은 프랑켄슈타인과 닮은 사람이었지만 결국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것은 괴물이었다. 본질적으로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걸까. 여기서 선택은 결국 사람으로 같아지냐, 괴물로 같아지냐의 기로였지만 박사의 선택은 결국 본인이 괴물이 되는 것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를 괴물로 변하게 했고, 그래서 스스로 괴물이 된 것이다.
깊게 보면 공자가 말한 성선설과 성악설도 연관지어 볼 만 하다. 과연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는가, 아니면 악하게 태어나는가. 이 소설을 통해 보면, 악함이라는 것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악함이라는 것은 태어날때부터 내재되어 탄생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환경 등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악함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박사와 괴물의 관계는 인간과 악의 관계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닌 것을 괴물로 여겼고 실제로 괴물을 만들어냈다. 악도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악이 아닌것을 악으로 간주하고 실제로 악을 만든다. 그래서 악을 창조하는 동안 사람들은 스스로 악이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악을 창조하고, 악에 맞서 스스로를 괴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