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두번째 로마방문이다. 그리고 이 숙소도 작년에 이어 두번째 예약이다. 이 숙소가 기가 막히게 고급지다거나 깔끔하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B&B에 가까운 곳이다.
그럼에도 또 예약한 이유는 나만의 숙소 선택기준을 잘 충족시켜서였다. 적당한 가격과 (역 또는 시내와의)가까운 거리, 안전한 치안. 세 가지를 고려했을 때 여기는 합리적이었다. 중앙역인 떼르미니역과 가까우면서도 지저분하거나 위험해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찾고 체크인을 하는 과정이 힘들지도 않았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아무래도 긴장을 하기 마련인데, 작년에 왔던 숙소라 마음이 조금 더 편안했다.
작년 휴가에 이어 또 방문했다고 리셉션의 직원분이 나를 알아볼리는 만무하다. 더구나 지금 데스크에 앉아있는 분은 그때와는 다른 분이다. 하지만 "저 작년 휴가때도 여기서 묵었어요.”라고 환하게 이야기하면, 빙긋 자본주의 미소를 띄어주시며 “오 리얼리? 웨어 얼유 프롬?”이라고 하며 온화하게 응대해줄 것 같긴 했다. 그렇게 웃음을 교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10시간이 넘는 비행의 피로가 이미 나의 엉덩이를 방안으로 팡팡 걷어차고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와 안을 둘러보았다. 방안에 들어서니 고풍스런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보인다. 작년에 묵었던 그 방은 아니지만 그 분위기와 느낌은 비슷했다. 침대는 비교적 무난해 보였지만 커다란 옷장은 주말에 서울 풍물시장에서나 찾아볼 만한 정도였다. 많이 낡고 허름했다. 풍물시장 귀퉁이에서 세치 혀로 흥정만 잘하면 판매자가 '그래 내가 졌다',라고 선언하며 몇 만원에 얻어올 수도 있을 것 같은 외관이었다. 그래도 은은하고 따뜻한 조명이 있어 방안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마치 주말에 시골 할머니댁을 방문했는데 할머니께서 예술에 조예가 깊으셔서 분위기 있게 집을 꾸며놓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올드하지만 나름 편안하다.
이 숙소의 또다른 장점은 창문을 열면 거리를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별한 것 없는 풍경일 수 있지만 사람들의 일상이 보인다.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의 일상을 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근처에 호텔과 레스토랑이 많아 밤늦게까지 호텔을 출입하거나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트램이 다니는 대로와는 살짝 떨어져있어서 시끄럽지도 않았다. 올드한 가구들과 설비들에 조식도 없는 숙박이지만 창밖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저녁부터 조금씩 내리는 비는 로마의 창밖 풍경을 더 깨끗하게 닦아냈다. 지저분하다는 오명을 갖고 있던 떼르미니역 근처지만 여기 이 숙소와 창밖 풍경만큼은 더할나위 없이 말끔해 보인다. 상쾌한 밤공기를 맡으며 이탈리아 도착 첫 날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됐다.
내일은 곧바로 나폴리를 거쳐 카프리섬으로 들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