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에서 꼭 넣고 싶었던 일정은 토스카나 지역에서의 농가민박(Agriturismo)이었습니다.
농가민박이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닭과 오리가 지척에서 뛰노는 허름한 곳에서 머무는 것은 아니고
깔끔한 숙박을 제공하는 농장에서 호텔처럼 미리 예약하고 숙박하는 것입니다.
농가민박은 소박한 시골집 느낌이 나는 숙소부터 레스토랑과 수영장을 갖춘 호화 리조트까지 그 종류가 다양합니다.
럭셔리한 곳을 방문하는 게 아니라면 대개의 농가민박은 수백 년 된 어느 이탈리아 숙소에 온 것 같은 고풍스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농가민박들은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역에 많이 있는데, 고심 끝에 방문한 곳은 토스카나 지역 피엔차에서 가까운 숙소였습니다.
대중교통이 없는 농가민박 이용을 위해서는 렌터카 이용이 필수입니다. 피렌체에서 차를 대여한 후 토스카나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먼지 날리는 울퉁불퉁 비포장길을 달리다가 토스카나 평원을 둘러보면 대도시를 벗어난 여행의 평화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피렌체에서 출발하여 한 시간 반쯤 걸려 도착한 숙소는 기대만큼 마음에 드는 외관이었습니다.
건물은 여러 개의 방과 주방, 레스토랑 등이 갖춰져 있어 작은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농장에서 수확한 작물들을 보관하는 곳, 농기구들을 보관하는 창고들도 건물 귀퉁이에 마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숙소 예약 후 트러플 채취 체험,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 만들기 체험 등 여러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으니 신청해 보라는 메일이 오기도 했지만 일정이 타이트하여 아쉽게 참여하지는 못했습니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어놓습니다.
방은 군데군데 오래된 흔적이 보였지만 깔끔하고 부족할 것 없었습니다. 오히려 살짝 낡고 퇴색한 모습이 농가민박 분위기와 잘 어울렸습니다.
짐을 풀고 나와 천천히 숙소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숙소 주변을 둘러싼 올리브 나무와 평원들을 보고 있으니 멋진 풍광을 위해 지역주민들이 일부러 나무와 풀, 흙들을 조성해 놓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골프장에서 조경을 위해 잔디를 깎고 나무를 다듬듯이 이곳의 풍경은 누군가가 탁월한 경치를 위해 손질한 것 같았습니다.
5월쯤에 왔으면 이곳이 초록빛으로 넘실대고 있었을 테지만 9월은 이미 수확이 끝난 때라 녹음이 짙은 풍경을 볼 수는 없습니다.
대신 날씨가 맑고 쾌청하여 아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 토스카나에 와 있다는 점만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면서 긴 햇살을 드리웁니다.
해가 길게 꼬리를 남기기 시작하자 토스카나의 하늘도 조금씩 색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멀리 보이는 풍경은 아련하게 보이기도 하고 몽환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유럽 배경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던 중세 마을들이 이 토스카나 평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가민박의 경우, 주변에 마을이나 식당이 없다 보니 대부분 숙소에서 석식 옵션을 제공합니다. 이곳에서도 석식 옵션을 선택하면 숙소에서 제공하는 신선한 식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야외 테이블에 한 상 가득 요리들이 올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은 코스로 제공되는데 가장 좋았단 부분은 야외에서 토스카나 평원을 보며 애피타이저와 샐러드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올리브 나무와 토스카나 평원을 배경으로 펼쳐진 식탁은 자연의 신선한 색깔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붉은색, 녹색, 노란색 갖가지 색상의 식재료들이 들어가 있는 식탁을 보니 음식을 담기 전에 사진부터 찍게 됩니다.
이곳의 현지 음식을 노을과 함께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집니다.
애피타이저와 함께 간단한 식전주가 제공됩니다. 토스카나에서 해가 지는 모습과 함께 저녁을 시작하는 순간엔 여행객들 모두 살짝 들뜬 표정으로 각자의 방식으로 토스카나의 노을을 즐깁니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온전한 휴식을 하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리를 정해서 앉고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롭게 음식과 음료를 즐깁니다.
붉게 물드는 하늘을 보며 연신 사진을 찍게 됩니다. 해가 저물고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하늘은 신비로운 색깔을 드리우며 여행객들의 시선을 빼앗습니다.
여행의 피곤함은 모두 잊고 잠시 아름다운 하늘과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됩니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사람도, 어제 안 좋은 일로 얼굴을 찌푸렸던 사람도 낮과 밤이 바뀌는 신비로운 이 시간에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풍광을 보면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잠시나마 잊게 될 것 같습니다.
해가 넘어가며 마지막으로 붉은빛을 하늘에 물들입니다. 어둠과 타오르는 하늘만이 남아있는 때입니다.
노을은 마지막 그 흔적을 남기는 순간에 가장 붉은빛을 뿜어냅니다.
불꽃이 일렁이는 서쪽 하늘을 보며 토스카나 저녁 풍경 감상을 마무리했습니다.
주위가 완전히 깜깜해지면 자리를 이동하여 실내에서 식사를 이어가게 됩니다.
숙소 내부 레스토랑에서 본격적으로 메인요리가 제공됩니다. 이미 애피타이저를 푸짐하게 먹었지만 먹음직스러운 고기찜 요리와 파스타가 연이어 나왔습니다. 여행객들은 모두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인사를 나누고 소감을 말하면서 긴 저녁시간이 무르익어 갔습니다.
각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역시나 확실한 건 한국의 휴가가 짧다는 점이었습니다. 1박만 머무르고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얘기를 하니 다들 안타까운 표정이었습니다.
보통은 이곳 토스카나 여기저기를 여유롭게 둘러보다가 대도시로 이동하는 편이었습니다. 토스카나에서만 일주일 이상씩 머무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조식을 먹고 짐을 챙겼습니다.
짧아서 아쉬웠지만 다음번 이탈리아 여행 때도 토스카나 지역은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숙소를 떠났습니다.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토스카나 포토스팟을 들렀습니다.
여기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주인공 막시무스가 밑밭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을 촬영했던 장소인데, 밀 수확이 끝난 시기가 아니라서 영화에서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막시무스가 손바닥으로 밑밭을 훑으며 지나는 장면을 떠올렸는데 그러려면 수확시기 직전에 일정을 맞춰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포토 스팟 중 하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길입니다.
여기는 영화 <글래디에이터> '막시무스의 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곳은 실제 영화 촬영을 했던 장소는 아니고 비슷하게 생긴 곳이라고 합니다.
실제 영화 촬영 장소는 조금 더 떨어져 있는데 사유지라 사진촬영이 어려워 보통 이곳에서 사진을 찍어갑니다.
토스카나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건물이나 숙소의 진입로에 사이프러스 나무를 일렬로 심어놓은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풍경이 이색적이다 보니 지나던 여행객들이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게 만듭니다.
이탈리아는 로마, 피렌체, 베니스 등 유명한 도시들만 구경 다녀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하지만 일정이 된다면 토스카나 지역은 꼭 한번 둘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도시를 벗어나 잠시나마 편안한 휴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달리 토스카나 풍경 속에서 자연을 즐기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