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놓고 나온 날

by Shaun SHK

주말에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땐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귀에 꽂고 주위 소음을 차단한 채 노트북을 합니다.

그날은 이어폰을 깜빡 집에 두고 외출해서 허전한 기분으로 노트북을 하고 있던 날이었습니다.


혼자 이것저것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에 어머니뻘쯤 되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분들께서 들어오셨습니다

5~6명쯤 되었는데 안쪽으로 오시더니 내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카페에 담소를 나누러 오신거니 당연히 대화소리가 들릴 수도 있겠다 느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노트북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일행 중 한 분이 나지막이 얘기하시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옆에 공부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저쪽으로 자리를 옮기자'

잠시 다른 분들도 한마디씩 얘기를 하시는 것 같더니,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 쪽도 테이블 붙여 앉으면 충분히 다 앉을 수 있겠어'

그러더니 일행분들이 가방과 외투를 챙겨 출입구 쪽에 가까운 다른 테이블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머리에 '필승 합격'이라고 적힌 머리끈을 동여맨 것도 아니었고,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티를 내고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노트북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혹시나 공부하는데 방해가 될까 봐 옮겨 주신 것이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카페는 당연히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니 굳이 그렇게 옮기지 않으셨어도 됩니다.

자리를 잡고 나서 옮긴다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음료가 아직 나오기 전이라 덜 번거로웠을 수도 있지만 이미 앉은 자리를 옮기는 것은 일부러 에너지를 쏟아야하는 일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갑자기 내가 일어서서 '고맙습니다'라고 우렁차게 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니, 조용히 자세를 바로 잡고 그저 더 열심히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내가 그날 평소처럼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면 그런 대화가 오가는 것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침 이어폰을 두고 온 덕분에 나는 낯선 타인의 작은 배려를 들었습니다.


이어폰은 너무나 유용해서 이젠 없어서는 안되는 아이템입니다.

외출하려고 문을 나서는 순간 이어폰부터 케이스에서 꺼내 들어 귀에 꽂게 됩니다.

하지만 이어폰의 노이즈캔슬링은 세상의 작은 소리나 속삭이는 친절은 듣지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날은 노이즈캔슬링이 없는 덕분에 뜻밖의 배려를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폰을 놓고 나온 날.

소음을 막지 못해 불편한 날이 아니라 주위엔 배려있고 친절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 날이었습니다.

덕분에 바깥 공기와 달리 마음은 한껏 따뜻해지는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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