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아침 출근길은 언제나 고됩니다.
추운 날씨에 빽빽한 출근 인파에 끼어 대중교통을 타면 몸은 벌써 퇴근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나의 영혼은 안쓰럽게도 아직 이불 속에서 나오지 못한 채 뭉그적거리고 있나봅니다.
발사대를 떠난 스페이스X 우주선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유튜브 영상을 떠올리며 회사로 출발한 내 몸이 이불 속으로 원상복귀하는 헛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영혼 없는 출근길에 지하철역 출구를 걸어 올라오다 보면 이른 아침부터 전단지를 나눠주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보입니다.
정신없는 아침에 찬바람까지 부는 겨울이면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에 걸어 올라가는 사람의 뒤에 바짝 붙어 나에게는 전단지 내미는 손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걸어 올라갑니다.
전략은 보통 성공적입니다. 앞사람 덕에 나에게까지 전단지 든 손이 뻗어오지 않으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유유히 회사를 향해 걸어갑니다.
전단지를 받는 건 스팸메일을 손으로 받아 드는 것과 같은데 곧장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종이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정보는 몇 초 만에 바로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전단지는 전혀 유용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용된 잉크와 코팅용지가 무의미한 자원낭비로 여겨질 뿐입니다
하지만 매번 전략이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짝 따라붙어서 갈 사람이 없다면 전단지를 쥔 손이 내가 가는 길 정면에 쑥 하고 나타납니다.
지나쳐도 무방하지만 그 손길을 무시하지 못하고 전단지를 받아들고 올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나가길 기다리다가 굳이 손을 내밀며 전단지를 쥐어주려는 모습에 나도 주머니에서 스윽 손을 빼서 전단지를 받아들고 다시 회사를 향해 걸어갑니다.
무슨 내용인가 흘끗 전단지를 보면 십중팔구 근방 최고시설이라고 적힌 헬스, 골프시설 광고입니다. 집 근처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나에겐 무용한 정보이자 전단지의 쓰레기통 직행이 확정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회사 사무실에 도착해서 외투를 벗고 주머니에 꼬깃하게 접힌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툭 던져놓습니다.
때때로 쓰레기가 될 것을 알면서도 전단지를 받아올 때가 있습니다.
필요없는 광고지를 굳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면서 받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추운 아침에 지하철 출구 앞에서 전단지 알바를 하는 분들에겐 그 일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본인의 밥벌이일 수도 있고 손주들 용돈벌기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몸이 안 좋아 그 이상의 노동을 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다른 알바를 가기 전에 이른 아침 시간을 조금이라도 유용하게 쓰고자 전단지 알바까지 하는 치열하게 밥벌이 하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영혼을 이불속에 둔 채 출근하는 직장인들이나, 받는 사람이 귀찮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단지를 나눠주려고 서 있는 분들이나 각자의 밥벌이를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전단지 나눠주는 일은 나이 지긋하신 분들 중 마땅한 경력이나 기술이 없는 분들이 할 가능성이 높을텐데 불필요한 걸 나눠준다는 생각만 하기에는 나의 이성적 사고가 너무 냉정하고 팍팍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전단지를 대하는 마음이 누그러듭니다.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전단지를 받아오게 됩니다.
물론 바쁘고 급할 땐 받지 않고 지나칠 때도 많습니다. 여전히 전단지는 받고 싶지 않고 자원낭비에 동참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급한 발걸음이 아니라면 내 눈앞에 선 누군가가 내미는 밥벌이의 묵직함을 아무런 느낌 없이 뿌리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의 복잡성, 사회적 가치와 중요성 등에 자주 얘기하곤 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연구개발, 장시간이 걸리는 대형 프로젝트, 수백억의 거래대금이 걸린 계약 등, 크고 중요하고 어려워 보이는 일들을 얘기하고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이 항상 그런 밥벌이들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주위에는 단순해 보이는 일, 쉬워 보이는 일,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일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합법적인 밥벌이는 그 자체로 역할과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하고 중요해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밥벌이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나는 가끔씩 전단지를 받아옵니다.
밥벌이를 위해 출근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밥벌이 앞에서 그 묵직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밥벌이에 대한 공감과 존중이 있기 때문에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전단지를 받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