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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SHK Nov 08. 2020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도시, 아시시

- 중세로의 평온한 시간 여행

-다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기를 바라며-


복잡한 일상과 붐비는 출퇴근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 다가 가끔 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난 분명 쉬러 온 건데 왜 이렇게 지치는 거지'


이탈리아 여행을 간다면 대부분 로마를 일정에 넣게 됩니다. 로마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여러 번 가도 좋은 도시지만 한 나라의 수도이자 수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정신없습니다.


붐비는 인파 때문에 좁은 길에선 어깨를 부딪히지 않게 걸어야 하고, 행여 소지품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신경 쓰게 됩니다. 자동차 매연과 오토바이 소에 피로감이 느껴질 때쯤 로마를 벗어나 조용한 도시로 이동했습니다.


휴식 위해 도착한 도시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평야에 위치한 작은 도시 '아시시(ASSISI)'입니다.

로마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두 시간가량 소요되는데, 검색할 때마다 '아시시'라고 해야 할지, 영문표기와 비슷하게 '아씨시'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발음 나는 대로 '아씨씨'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여행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도시는 아닙니다.

로마를 떠나 도착한 아시시. 화창한 하늘이 새로운 도시로의 방문을 환영해주는 것 같습니다.

도착해서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골목 모퉁이를 돌았는데 다시 오르막입니다.

하지만 고풍스러운 골목 모습을 구경하다 보면 힘들지 않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마을 골목길에는 고요함이 배어 있습니다. 한가로이 산책을 하거나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기에 좋습니다. 복잡한 생각들이 저절로 떨쳐지는 것 같습니다.


문득 여행은 공간의 이동이자 시간의 이동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이 도시의 골목을 거니는 동안엔 중세 시대로 잠시 시간여행을 온 느낌이 듭니다.

골목 모퉁이에서 마부가 말을 끌고 지나다니고 검을 찬 기사가 투구를 고쳐 쓰고 있더라도 이상할 것 없어 보입니다. 여기는 왠지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잠시 이런 고풍스러운 건물에 살아보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 봅니다.

보기에 예쁘지만 직접 거주한다고 생각하니 고개를 젓게 됩니다. 이미 나는 엘리베이터와 최신 냉난방 시설 등 근대적인 건축물이 주는 편의성과 효율성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실제 거주하기에는 불편할 테지만 그래도 관광객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예쁘고 분위기 있는 건물들입니다.

아시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골목을 걷다 건물 사이로 나타나는 평원입니다.

건물의 외벽들이 프레임이 되어 드넓은 평원을 액자 속 그림처럼 담아냅니다. 녹음이 짙은 움브리아 평원을 보고 있으면 로마에서 긴장하고 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아시시대표하는 건물이자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장소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입니다.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도 즉위할 때 바로 이 성인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따랐습니다. 청빈함으로 약자를 위하며 살아간 성 프란치스코의 뜻을 교황으로서 이어가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넓은 성당 앞쪽 잔디밭에는 청동 조각이 하나 서 있습니다. 그런데 조각상의 주인공은 말을 타고 고개를 푹 떨구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프란치스코는 위대한 기사가 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난을 겪던 그는 '이제 전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신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 종교적 순간의 모습이 청동 조각상으로 담겨 있습니다.


성인을 기리는 성당 앞에 성인의 가장 낮고 힘든 시절 모습의 조각상을 세웠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절대자의 부름을 듣는 극적인 순간을 고개를 떨군 조각상으로 표현한 점에서 겸손한 성인의 모습이 더 잘 드러납니다.

성당 앞 드넓은 잔디밭이 마침 '비어있음'을 나타낸 듯합니다. 무엇인가 가득 채우지 않고 푸른 잔디만을 꾸며낸 이 곳 성당 앞 공간이 마음에 쏙 듭니다.

볼거리와 인파로 가득 찬 로마를 구경하다가 아시시로 넘어오니 비어있는 공간이 주는 평온함이 마음에 더 깊이 와 닿습니다.

성당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파란 하늘과 푸른 평원이 마음을 평화롭게 만듭니다.

제국의 수도 로마와 르네상스의 중심 도시 피렌체의 중간쯤에 있는 아시시는 볼거리 많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마음을 잠시 비워갈 수 있는 도시입니다.

다시 이탈리아 여행을 간다면 대도시에서 가득 채운 눈과 귀를 아시시에서 조용히 비우는 일정을 다시 넣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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