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 Sep 21. 2021

폭력의 대물림

D.P. (2021)

군인 신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여가 시간에까지 군대 관련된 콘텐츠를 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한때 유행하던 가짜 사나이나 강철 부대도 보지 않았고, 그 시간에는 최대한 비(非) 군대적인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나름 이곳에서 잘 지내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대대장님께서 이번 주 주간회의 때 간부들, 분대장들 다 같이 모여 토의를 한 번 하자고 제안하셨다. 주제는 병영 갈등을 없애기 위한 방법. 그리고 그전까지 선행되어야 할 숙제를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드라마 D.P. 를 보는 것.


군인을 잡는 군인 이야기. 그저 모질게 묘사되는 군생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군대의 어두운 면을 제대로 담고 있어서 놀랐다. 또한 군대의 폭력 문화가 어떻게 학습이 되고, 어떻게 우리나라 사회에 대물림되는지 현실감 있게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드라마 속에서 인상 깊게 봤던 군대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라면, 묘사된 부조리나 폭행 같은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코 고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방독면을 씌운 채 정화구에 물을 붓고 ‘대공포 발사’ 같은 장면들이 드라마에서 묘사되어서 그런지, 자식들의 군 생활을 걱정하는 부모님들의 전화가 많았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묘사된 폭력은 꽤 옛날에나 가능했던 수준이고, 요즘 군대에서는 그 정도로 강도 높은 폭력이 발생하기 어려우니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부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폭력의 양상이나 강도, 문화가 은밀하게 바뀌었을 뿐이다.


군대의 어두운 면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고 생각한 지점은 바로 드라마 속 ‘대대장님’의 보직 해임이었다. 실제로 전방 사단은 북한과 근접해 있고, 그만큼 사람들도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기 때문에 사건 사고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래서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을 통감하며 보직에서 내려오시는 지휘관 분들이 많다. 내가 소속된 22사단 역시 ‘별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가졌을 정도로, 적지 않은 지휘관 분들이 보직해임을 당한 곳이다. 뉴스에도 몇 번 오르내린 윤 일병 사건, 임 병장 사건의 발생지이기도 하고. 하지만 책임을 지고 보직 해임을 한다는 것이, 진정 책임을 지는 행동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 시스템을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문제 해결의 매듭조차 짓지 않은 채 수장을 교체한다고 해서 다시 사건 사고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드라마 결말부, 새로 취임한 대대장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채 부대 용사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이병 안준호가 느꼈을 답답한 심정이 꽤나 공감이 갔다.


내가 생각하기에 군대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단 한 가지 이유로 기인한다. 바로 ‘나만 당할 수 없지’ 마인드. 흔히 꼰대 마인드인데, 힘들게 군 생활을 한 선임들이, 그보다 훨씬 여유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힘들다고 툴툴대는 후임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아니꼬울 것이다. 그래서 몸소 보여주는 것이다. 진짜 힘든 게 뭔지. 후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당했던 고난을 경험시켜주려는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일까, 아니면 인간 본성의 문제일까. 물론 애초에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어서 아무 이유도 없이 재미로 후임들을 괴롭히는 악질들도 있다. 하지만 군대의 폐쇄성과 철저한 상명하복,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신병의 미숙함을 부족함으로 여기는 가스 라이팅 문화를 떠올려보면 군대 특유의 시스템도 부조리 발생에 한몫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한 가지 걱정을 안고 입대를 했다. 군 생활을 하다 보면 내 성깔이 더럽게 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내가 이상하게 바뀌었다 싶으면 꼭 얘기해달라고 친구들한테 농담조로 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입대 후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난 굳이 그들의 얘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 성격이 이상하게 바뀌었다는 걸. 3달 전에 전입 온 후임들의 어리숙함을 난 부족함으로 보았고, 그들에게 군인 다움만 기대하고 있었으며, 다양성을 존중해주지 못했다. 군대라는 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나는 어느새 군대의 시스템에 맞춰져 있었다. 그렇게 변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선임들이 내게 했던 그대로 후임들을 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하기로 한다. 후임을 탓하기보다, 내가 먼저 잘하자고. 모범을 보이자고. 후임이 선임을 보고 배운다면, 좋은 걸 보고 배우게 하기로 선택한다. 질책할 시간에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로 한다. 내가 배운 걸 대물림하지 않기로 한다.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된 폭력 앞에서 경각심을 가지기로 다짐한다.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처럼, 뭐라도 바뀌려면 뭐라도 해야 하니까.

작가의 이전글 혼돈은 우리의 착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