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믿고 살아갈 건데?
6월의 마지막 날 전역식. 전역을 앞두고 여단장님과 간담회를 가졌다. 대뜸 낡은 종이뭉치를 뒤적이시더니 고심하시고 내뱉으시는 여단장님,
“미국에 비가 오는 걸 뭐라고 하는지 아나?”
우린 어리둥절한 채로 서로를 보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는데
“USB.”
정적이 흐르고,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나 본지 당황하신 여단장님은 눈을 끔뻑거리며 킬킬 머리를 긁적이신다.
“안 웃기냐? 다른 거 말해줄게.”
여단장님은 종이 뭉치를 다시 뒤적이시더니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목을 가다듬으셨다.
“보통 차가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자동으로 문이 잠기잖아. 남자가 차를 몰고 여자가 옆에 앉았는데 갑자기 문이 잠긴 거야. 근데 자동으로 문이 잠기는 걸 몰랐던 여자는 남자한테 ‘응큼하시네요’라 말했대. 남자는 ‘아, 이 차는 60키로 이상이면 자동으로 잠겨요.’라 대답했는데 대뜸 여자가 갑자기 화를 내더래. ‘허, 저 60키로 아니거든요!’ ”
다시 찾아오는 정적.
“야 안 웃기냐? 이 정도면 포복절도하고 막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그래야 되는데.”
눈치가 보여서, 그리고 여단장님의 노력이 가상해서 우리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분명 우리 중 누구와는 마찰이 있으셨을 것이고 얼굴 붉히며 누군가를 혼냈던 기억도 있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한 관계들을 감수하고 편안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시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하시는 여단장님의 모습에서 강건한 긍정의 마음가짐이 얼핏 느껴졌다.
본격적인 간담회 시작에 앞서, 여단장님께서 빔프로젝터에 문장 하나를 띄우셨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그리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군생활은 알을 깨는 과정이었다고. 실상황도 터지고 힘든 순간들이 많았는데 그 과정들을 무사히 끝마쳤으니 사회에 나가면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그런 기약 없는 응원을 듣던 중 현실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근데 사회에 나가면 더 힘들 거라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2년 전 부대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그곳은 내게 시험의 장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고 새롭고 서툴고 부족했다.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혹은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가르침도 받지 못하고 부딪히며 혼나가며 배워나갔다. 화도 나고 억울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지금 부대를 생각하면 시험의 장이 아니라 무슨 요람 혹은 둥지같다. 전역하면 부대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매일같이 얼굴 보고 살던 사람들이 벌써 그립다. 집에 돌아오면서 뭘 두고 온 것 같다는 찜찜한 느낌이 계속 들었는데, 아마 마음이었나 보다.
하지만 언제고 떠나간 것에 계속 마음이 남아있으면 안 된다.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거야 자유이지만, 다가올 것에 눈 돌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테니. 그러니 때로는 외면할 줄도 알아야 한다. 여단장님 말씀대로 이제부터는 더 힘들어질 테니까. 그 말을 들으니, 그리고 말씀하시는 여단장님의 눈빛과 세월의 주름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전역한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실로 이제부터는 더 힘들어질 것이다. 시험의 장을 요람으로 만들고 나면, 즉 하나의 세계를 깨고 태어나면 다른 세계가 날 기다릴 것이다. 다른 시험의 장이 나타나 다시 나를 시련 속에 빠트릴 것이다. 도전을 시작해 기약 없는 싸움을 할 수도,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다. 내 도전이 결국 객기였음을, 방황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일단은 인정하자. 나 지금 후회할 짓 하고 있고, 객기 부리고 있고, 어쩌면 방황하고 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걸 지금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시련을 향해 불나방처럼 나아가고 있다. (그러는 이유가 뭔데?) 그동안 내 마음속에서 자라난 한 가지 믿음 때문이다. 만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그건 반드시 해야 한다고. 누가 뜯어말려도 해야 한다고.
조금은 이기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를 겪게 된다면, (조만간 그러겠지만) 다른 사람을 탓하고 싶지 않다. ‘하라는 대로 했더니, 살라는 대로 살았더니 내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렸잖아’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만큼 이기적인 게 없는 것 같아서. 스스로의 부족함조차 남 탓으로 돌릴까 봐. 그렇다. 난 실패를 마주하면 차라리 스스로를 탓하고 싶다. 스스로를 변화시켜서 실패를 딛고 일어서고 싶다. 내 모든 행동이 방황으로 결론지어지지 않도록 이 믿음을 붙들고 싶다. 그 믿음 하나로 객기를 부리는 요즘이다. 다시 한 번 알을 깰 준비를 하는 요즘이다. 마치 여단장님의 개그처럼, 터무니없어 보일지 몰라도 진심만 통한다면 의지는 분명 세상과 어떤 식으로든 감응할 테니까. 그걸 목격한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