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의 이야기, 가짜 뉴스와 전파

소문은 발 없는 말보다 빠르고, 인터넷은 오르내리는 입소문보다 빠르다.

by 제이슨박


이제 입소문이 발 없는 말보다 빠르다는 이야기는 오래전 이야기이다.
이제 입소문보다 빠른 것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메신저, 인터넷의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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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혁명의 완성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말이 가장 와닿는 시점이 딱 이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인터넷 사용률은 높아지고 있으며, 어린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태어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어린아이들과 노인들 사이에서 가장 잘 퍼지고 믿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글 소문과 그 속에서 꽃을 피고 있는 가짜 뉴스이다.


지난 9일,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되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나는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이제는 누가 공격할 차례인가라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노인들 사이에서는 극성 세력의 가짜 뉴스가 퍼지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무엇이든지 극성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면, 이는 변질되고 의심이 아니라 확신이 되어 결론으로 맺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디지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노인과 어린이, 청소년 계층에서 이는 사회를 부정적으로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되기 마련이다. 이에 본 필자는 모든 정당과 지지자들이 공정한 사실만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를 바랄 뿐이다.


3월 6일, 전날 이루어진 사전투표 과정에서의 선거관리위원회의 실수로 인해서 부정투표의 명분이 마련되었다. 이에 극우 성향의 지지자들은 벌써부터 부정투표라는 단어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단어는 순식간에 노인들 사이에서 부정투표로 낙인찍히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은 해당 사실이 언급된 24시간이 채 안돼서 일어난 것이다. 특히, 노인들 사이에서의 부정투표 확신을 부추긴 데에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기표된 투표용지가 나온 것에서부터 일 것이다. 이는 선관위의 명백한 실수로 인해 나온 것인 것을 확실하다. 이미 기표된 투표봉투를 다시 유권자에게 준 것은 매우 엄중한 잘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혼선 속에 대통령 직속기관으로서의 조작 유혹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투표 시에 투표장의 참관인의 감시 아래에 이루어졌으며, 참관인의 사실관계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으므로 확실하지 않은 사실인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러한 과정은 선관위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된다. 단일 표라고 하더라도 격리자용 투표함을 별도로 제공했다면, 이러한 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가장 중점 시 되었던 일이라고 한다면 바로 부동산 대책과 가짜 뉴스 처벌에 대한 법률 제정이었을 것이다. 많은 보수언론에서는 가짜 뉴스에 대한 처벌이 언론탄압이라고 했으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했다. 하지만, 허위 뉴스 및 추측성 기사에 대한 정정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 언론사 또한 책임이 크다. 공정함에 대해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언론을 검열하겠다는 말이 아닌, 해당 보도가 허위성을 띄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을 때에 처벌하겠다는 것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


노인에게 가장 취약한 인터넷 가짜 뉴스


사실 인터넷 뉴스가 노인에게 얼마큼 큰 영향을 주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의 노인들에게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매우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은 인터넷 뉴스와 소식에 쉽게 믿게 된다. 걸러지고 또 걸러져서 온다는 사실과 첨단 기기의 신뢰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시스템인 만큼 정확성을 가리는 것이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 사이에서 사사로이 퍼지는 가짜 뉴스는 극성적인 세력을 더욱 많이 만들기 충분하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충분한 교육이나, 소프트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쉽게 믿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공정한 뉴스를 위해, 공정한 신뢰성을 위해.

정보를 주지 않는 방향을 생각해서는 않는다.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거짓 없이 사실만을 이야기해야 되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