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을 기다리며 꺼내든 계산기

by 기록하는아빠

첫 만남의 감동과 먹먹함 속에 작은 반짝임이 있었다.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그 순간까지 오기 위해, 우리는 8개월을 준비해 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돈을 쓴 거지. 출산 준비물을 사고, 병원와 조리원을 알아보고, 입원 비용을 계산했다.

즉,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내가 꺼내 든 것은 육아 책이 아니라 계산기였다.




프리미엄 시장의 충격

결혼하며 경험했던 프리미엄 시장은 육아의 세계에도 펼쳐져 있었다.

카시트 100만 원, 유모차 100만 원, 신생아 침대 50만 원. 아이가 없을 땐 ’플라스틱 덩어리‘라 생각했던 장난감조차 개당 5~6만원. 한 달이면 입지 못할 손바닥만 한 옷도 3만 원씩.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꽤 비싼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육아 프리미엄이었다. 덕분에 모든 육아 물품의 가격은 내 생각보다 한 단계 더 비싸게 느껴졌다.


가벼운 검색으로 시작한 우리는 서로 눈만 끔뻑거렸다. 아내가 다람쥐처럼 모아둔 출산 준비비와 정부 지원금으로 넉넉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우리의 가늠자는 완전히 고장 나 있었던 거다. 덕분에 아이를 만나기 전 8개월은 어떻게든 예산을 확보하고, 물품을 저렴하게 구할 지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든든한 지원군

첫 번째 해답은 지인에게 중고 물품을 받는 거였다. 당근마켓도 고려했지만, 아이가 물고 빨 물건을 어떤 과거가 있는지 모른 채 사는 건 꺼려졌다. 과거 친척들이 아이가 생겼을 때 물건을 물려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소 물건을 아끼는 지인에게 아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다행히 우리에겐 ‘처형’이라는 크나큰 지원군이 있었다. 조카와 우리 아이의 나이 차이는 1년 반. 덕분에 우린 조카가 졸업한 유모차, 침대 그리고 유축기를 실어 날랐다. 회사 상사 분도 빠질 수 없는 지원군이다. 상사분은 친절하게도 기저귀 갈이대, 임산부 쿠션, 아기옷을 물려주셨다. 그렇게 우린 사용에 큰 탈이 없는 물건들을 최대한 모았다. 중고로 사도 200만 원이 족히 드는 물건들. 지원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물건을 물려받는 것 외에도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도 있다.

대표적으로 면세점을 활용했다. 태교여행은 단순히 아이를 낳기 전 여행을 즐기는 목적뿐만 아니라, 가방에 아기용품을 가득 채워서 돌아오는 절약도 내포하고 있다. 단, 환율이 너무 올랐다면 다시 한번 고민해 보자. 면세점은 기본적으로 달러로 계산이 되므로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핫딜을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핫딜은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 소비자에게 약 30%가량의 할인된 가격으로 물건을 되파는 방식이다. 우리도 금액이 큰 카시트는 핫딜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시간. 핫딜 상품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니, 카페에서 알람을 켜 놓고 기다려보자.




그런데 진짜 큰돈은 따로 있었다.

육아 용품 리스트를 지워가며 안심하던 우리에게, 진짜 큰 지출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산후에 지불되는 병원비와 조리원비.

아내는 허리디스크 때문에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따라서, 입원비와 검사비 포함 200만 원, 조리원은 2주에 600만 원으로 둘을 합쳐 80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지만, 힘겹게 출산한 아내에게 지켜주고 싶은 시간이었기에 꼭 필요한 금액이었다. 그 외에도 비침습산전검사 (NIPT) 비용도 70만 원으로 만만치 않은 금액이 들어갔다.


최근에는 제왕절개의 보험처리와 정부나 시에서 지원하는 첫 만남 바우처가 있어서 큰 부담은 줄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제왕절개 비용도 600만 원이 넘게 책정이 되어 있지만, 보험의 적용으로 실제로 낸 금액이 보다 줄어든다. 그 밖에 시에서 제공하는 첫 만남 바우처는 비침습산점검사 (NIPT)에 이용하였다.


나라에서 지원하는 바우처가 있다고 해도, 산전에 지출한 금액은 대략 1,100만 원을 육박한다. 정말 숨 막혀 오는 금액이다.




8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정말 계산기를 들어 올려 쉴 새 없이 가격을 비교하였고, 발품으로 지인의 물건들을 수거해 왔으며, 핫딜이 뜨기만을 기다렸고, 매달 가계부를 작성하여 저축액을 늘려 나갔다. 아이를 만나는 따스한 순간도 중요하지만, 현실을 마주하는 것을 잊지 않게끔 고민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다.

현실을 고민하고 준비한 우리에게 먹먹함 속, 작게 대견함이 피어올랐다.

‘잘 준비했어. 이제 시작이야. 힘내자.’ 우리는 또 이렇게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