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이야기
3년 전 처음 집을 짓고 단독주택을 올 때 나는 마당에 잔디를 꼭 깔고 싶었다. 잔디가 없는 콘크리트 마당은 너무 삭막하고 지구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함께 살게 될 어머니도 같은 생각이었고, 우리는 잔디를 주문해서 손수 마당에 심었다. 심기 전 잔디는 꼭 납작한 종이장 같았다. 잔디는 화분도 없이 그저 흙째로 떠서 배달되었다. 남편과 나는 퇴근하고 열심히 땅을 파서 잔디를 올리고, 땅을 파서 잔디를 올리면서 세 시간 동안 잔디 심기 노동을 반복했다. 20평에 가까운 땅이 드문드문 올린 잔디로 덮이고 우리는 흐뭇한 마음으로 잔디가 퍼져나가 하나가 되기를 기다렸다. 잔디는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도 달고, 옆으로 퍼져 나가 푸르른 마당을 완성했다. 여기서 이제는 잔디를 감상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잔디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그것도 온몸을 뻐근하게 하면서.
첫 번째는 길게 자라는 잔디였다. 옆집 이웃이 잔디를 깎을 때가 된 것 같다며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잔디를 깎아야 하는구나 알게 된 우리는 부랴부랴 잔디 깎이를 알아보고 주문했다. 남편은 호기롭게 저렴한 수동 잔디깎이를 사달라고 했다. 그렇게 산 수동잔디깎이로 퇴근 후 열심히 마당 잔디를 밀었고, 잔디는 이렇게 관리되나 싶었다. 그런데 잔디는 정말 잘 자랐다. 다른 집 잔디랑 종이 다른가 싶을 정도로 뾰족하고 억센 느낌으로 잘 자랐다. 게다가 경계가 끝도 없이 점점 퍼져 나가더니 잔디와 화단의 경계에 심어 놓은 꽃잔디와 패랭이 꽃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심지어 위로는 화단으로 옆으로는 텃밭으로 아래로는 데크 돌 장식으로 까지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잔디 에지'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잔디의 이런 성질 때문에 미리 잔디 경계를 잡아주는 제품이 있었던 것이다. 첫 잔디 에지를 주문하고 화단 쪽 땅을 파서 화단으로 잔디가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제초매트'를 준비해서 데크 돌 장식을 걷어내고 제초매트를 깔아 잔디가 침투하지 못하게 했다. 3M 정도 되는 길이의 담긴 돌을 다 걷어내고 바닥에 매트를 깔고 다시 돌을 깔았다. 두세 시간 정도 땅바닥에 앉아서 돌을 걷어내는 단순 작업을 반복하니 손이 아리고 온몸이 먼지를 뒤집어썼다.
이렇게 첫 해가 지나고 잔디가 누르스름하게 변하더니 성장을 멈췄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누렇게 떴던 잔디가 조금씩 푸르스름한 빛을 띠기 시작하더니 한 달 안에 다시 온연히 푸르스름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는 씨앗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경계를 잡아준 잔디는 끊임없이 자라났고, 8월 어느 더운 여름날 수동 잔디깎이가 고장 났다. 고장의 원인은 악순환 때문인데, 수동으로 밀면 힘들어서 점점 잔디를 깎지 않게 된다. 잔디를 깎지 않으니 잔디가 길어지고 긴 잔디를 한 번에 깎으려는 것이 수동 잔디깎이에게 무리를 주고 결국 잔디깎이는 고장이 나버렸다. 주택 생활 3년 만에 잔디에 항복 선언을 하고 우리는 전동잔디깎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리뷰가 하나같이 “몇 년 살다가 결국에는 전동 잔디깎이를 주문했다”로 시작하는 게 재미있었다. 이렇듯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잔디를 선택했다가 잔디를 감당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택배가 도착했고, 무더운 한 여름 낮이었지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조립을 하고 전기 코드를 꽂고 시동을 걸었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모터가 돌고 잔디가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청소기처럼 밀고 다니면 잔디가 짧아지는 게 신기했다. 평평한 바닥을 밀다가 디딤석 사이도 밀고 잔디가 무성하게 차오르는 경계 부분까지 밀었다. 잔디밭 한 가운 데에 파초를 심었는데, 파초의 경계 부분은 잔디가 잡아먹기 직전이었다. 잔디깎이로 몇 번 밀었더니 경계에 깔아놓았던 돌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공격적으로 자란 잔디를 한 소금 밀어놓으니 세상 개운하고 마당이 깔끔해졌다. 깎인 잔디가 담기는 잔디 통이 금방 가득 차서 두 번이나 비워야 했다. 잔디깎이의 시끄러운 모터소리와 가끔 돌 같은데 걸리면 나는 날 갈리는 소리가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잔디밭이 단정해지는 모습을 보는 게 희열이 있었다.
2주 뒤에도 잔디 길이 설정을 제일 짧게 줄여서 다시 깎았다. 짧고 균일하게 깎인 잔디는 골프장 잔디밭을 보는 것처럼 예쁘고 잔디밭에서 걷고 싶은 충동이 일으켰다. 다음 잔디 깎는 날을 은근히 기다리게 되었다. 점점 기술이 생겨서 틈새도 놓치지 않고 자주 깎으니 나오는 잔디양도 점점 줄어서 더 빨리 깎게 되었다. 잔디 깎이가 잔디밭 끝까지 닿지는 않아서 끝 모서리는 깎을 수 없는데, 이 부분에 마구 솟아있는 잔디는 가위로 잘라야 한다. 전부 잘랐더니 50리터 봉지 하나를 가득 채웠다. 계속 가위질을 하다 보면 손이 얼얼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깨끗한 잔디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3년간 보지 못했던 모습에 감탄하게 되었다. 일 년 내내 잔디 깎이는 계속되었다. 처서가 지나면 풀이 잘 안 자란다고 하여 9월에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며 잔디를 깎았는데, 제법 또 잔디가 자랐다. 또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며 남편이 잔디를 깎았다.
잔디가 제초매트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예전에 화단 쪽으로도 잔디 침범이 있어서 잔디 경계판을 대준적이 있는데, 데크 쪽에도 해줄 때가 온 것이다. 황금 휴일이 오고 있어서 그때 일을 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 전문가는 잔디를 막기 위해선 위아래 모두 철벽 방어할 수 있도록 15cm 이상을 추천했다. 나는 이미 당한 경험이 많아서 제일 긴 길이인 20cm를 선택했다. 길이를 재어 보고 15m를 주문하니 동그랗게 말린 잔디 경계판이 택배함에 도착했다. 예전에 했던 적이 있어서 능숙하게 경계판을 펴서 눌러놨다. 당일이 되어 밖으로 나가니 남편은 모든 것을 다시 할 것을 제안했다. 벌써 세 번째다. 생각만 해도 온몸이 아파오는 세 번째 돌 퍼내기 작업이다. 돌을 다 제거하고 보니 잔디 줄기가 제초매트와 땅바닥을 바느질이라도 한 것처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제초매트가 통으로 된 게 아니고 가로세로로 엮인 직조형으로 되어 있어서 그 틈 사이를 파고들어서 잔디 줄기가 뻗어나간 것이다. 심지어 제초매트 밑에서 눌린 채로 화석처럼 자라난 것도 있어서 그 빛 한 점 없는 환경에서 줄기가 하얗게 질린 채로 살 곳을 찾아 끝없이 뻗어나간 본능이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먼지를 날리며 제초매트 사이사이에 끼워져 이리저리 자라나고 있는 잔디를 모조리 빼냈다. 줄기 진행 반대 방향에서 잡아서 쭉 뽑으면 그나마 잘 빠졌다.
그리고 경계석 뒤 부분 땅을 깊게 파고 경계판을 집어넣었다. 절대 넘어오지 못하도록 땅속 깊게 집어넣었다. 너덜너덜해진 제초매트를 다시 깔고 돌을 다시 올렸다. 일꾼인 우리 둘은 돌과 매트에서 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썼지만 지저분했던 돌바닥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다. 집을 지을 때 조경 전문가와 함께 했다면 한 번에 했을 일을 삼 년에 걸쳐 세 번에 나눠서 한 감은 있었지만 몸으로 부딪혀 가며 얻은 지식이라 생각하니 마음은 뿌듯했다. 오직 흙과 땅만 보며 돌을 다 빼내는 지난한 일을 하면서 ‘감히 마당에 잔디를 들이고 싶은 자라면 잔디학개론을 15시간 정도 이수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시 삼 년 차인 올해 구정이 왔다. 나는 누런 잔디를 바라보며 제초제를 생각했다. 잔디 3년 차인 우리 집도 이제 잔디 속 잡초에 대한 대비를 할 때가 되었다. 농약은 아직도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잡초가 더 무섭기에 농약 뿌리는 방법을 검색했다. 가루 형태라 비 오기 전에 뿌리면 흡수가 잘 된다고 해서 비 오기 전 날을 제초제를 뿌렸다. 제초제는 올해의 잔디를 시작하는 연초 행사이자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비하면 그나마 귀여운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또 겨울이 오면 잔디 잎이 마르고 뿌리는 동면을 하여 그 푸르른 모습은 잃게 되지만 여기저기 뻗어나가는 것도 줄어들고 길이도 길지 않고 잔디깎이를 쉬니까 좋다. 그래야 우리도 쉴 것 같은 그런 고마움이다.
삼 년간 잔디를 가꾸며 드는 생각보다 잔디에 손도 많이가고, 잔디 관리 상태가 정원의 전체적인 풍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예쁜 꽃과 나무도 있지만 잔디가 단정하게 다듬어져 있어야 정원이 빛난다. 잔디는 경계를 확실히 잡아줘야 하고 주기적으로 다듬어야 하고 잡초의 공격도 받는다. 감히 잔디를 들이고 싶다면 그 마음 속에 강인한 팔다리와 고요한 땀방울 하나쯤은 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같은 모습에 콘크리트 바닥은 손이 안가서 편하기야 했을 망정 나에게 어떠한 기대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선선한 아침에 아침 이슬을 머금은 잔디밭을 거닐며 화단을 바라보는 여유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매년 잔디가 푸르러지면 나는 또 다시 마당으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