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입국 수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직원은 단 세 명이었다. 1시간 30분을 서서 기다렸다. 우리 앞 두 번째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지칠 즈음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입국 심사를 하는 와중에 담당 오피서와 어떤 버거가 맛있는지 스몰톡을 하는데 오피서는 자기가 좋아하는 버거집을 추천해 주었다. 긴 대기 끝에 남은 건 피로와, 조금의 인간적인 여유였다.
맑은 하늘 아래 텍사스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다. 10일 전 눈폭풍 속에서 보았던 텍사스는 유령도시 같았는데, 이번에는 드넓고 산뜻했다. 눈의 흔적은 사라지고, 특유의 청량한 하늘이 돌아와 있었다. 수화물을 찾고 렌트 센터로 이동했다. 서류 문제로 이 사무실, 저 사무실을 오가며 또 한 번 기다렸다. 하지만 직원이 서류에 적힌 생일을 보고 “해피 버스데이”라는 말을 듣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다. 정작 생일 주인공인 남편은 서류상의 생일일 뿐이라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상황을 몰랐다고 한다. 역시 남부의 친절이 이런 건가. 이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작은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딜레이로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렌터카가 출발했다. 첫 목적지는 인 앤 아웃 버거(In-N-Out Burger)였다. 텍사스 사람들 사이에 앉아 햄버거를 먹는 기분은 묘했다. 많은 사람들이 동양인 가족인 우리에게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다. 남편은 감동한 듯 버거를 두 개나 시키고 티셔츠까지 샀다. 냉동고가 없는 미국 버거집의 신선하고 단순한 맛이었다. ‘이게 미국이지’ 싶은 순간이었다.
곧장 월마트로 향했다. 주차장부터 시작해서 매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다. 미국의 스케일은 마트에서부터 체감된다.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아들을 게임 코너로 데리고 가고, 나는 곱슬머리 제품이 있는 헤어코너로 갔다. 수많은 곱슬 제품이 있었다. 가격도 한국보다 조금 저렴한 듯했다. 흥분한 나는 곱슬머리 제품을 세 가지나 집어 들었다. 아들도 마리오 카트 게임 칩 하나를 손에 쥐었다.
오후에는 포트워스(Fort Worth)에 도착했다. 소몰이 행렬이 있는 4시가 되자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여들었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노인들, 부츠를 신은 여자들. 포트워스 스톡야드(Fort Worth Stockyards)의 소몰이는 짧게 끝났지만, 상징은 분명했다. 롱혼 열 마리를 가까이에서 보고, 카우보이 용품을 파는 가게들을 구경했다. ‘소의 도시’라 불려 온 역사가 여전히 관광의 형식으로 살아 있었다.
텍사스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친절했다. 스몰토크를 자연스럽게 건네고, 적대적인 분위기보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드넓은 땅과 좋은 날씨가 사람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까. 열흘 전 눈이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았다. 저녁에는 그레이프 바인 밀 아웃렛(Grapevine Mills Outlet)을 돌았다. 흥분해서 이 매장, 저 매장을 오갔지만 결국 프리마크에서 몇 가지 저렴한 옷만 샀다. 나이키 같은 브랜드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만든 탓에 사이즈도 제각각 디자인도 달라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여행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해가 지고 몸이 피곤해졌다. 마지막으로 저녁을 가게 대신 월마트에 들러 사서 먹기로 했다. 월마트에 간 김에 낮에 잘 못 산 헤어제품을 반납하고, 치킨과 와인, 음료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먹으며 마지막 밤을 정리했다. 다음 날 댈러스 국제공항(Dallas/Fort Worth International Airport)에서 출발해 15시간 비행 끝에 인천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다시 한국에 도착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환상 속에 현실이 있고, 현실 속에 환상이 있다. 스톡야드의 카우보이 역시 관광을 위한 연출이지만, 그 안에는 분명 텍사스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나 역시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생활을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이번 미국 여행은 무엇보다 렌트를 해서 좋았다. 이 땅에서는 차가 곧 자유라는 사실을 몸으로 알았다.
그리고 나는 어디에 살든 결국 다시 나의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온다는 사실이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나는 환상을 무작정 믿지도, 현실을 함부로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사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가족 단위로 여행한다.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결국 가족이라는 역동 안에서 움직인다. 달라지는 것은 장소와 사회적 맥락뿐이다. 각자 좋아하는 곳도, 취향도 다르지만 우리는 13년 가까이 거의 매년 다른 나라를 다녔다. 넉넉해서라기보다는, 적당한 벌이 안에서 선택하고 포기하며 이어온 시간이었다. 그래서 마냥 여유롭지도 않다. 그럼에도 남편과 나는 세계를 보고 경험하는 일을 좋아했고, 그 삶을 부러워하는 시선도 받았다.
이런 삶을 지속하려면 놓아야 할 것들도 많다. 시간, 돈, 안정감. 하지만 어쩌면 우리 안의 작은 환상이 현실을 잠시 벗어나는 일탈을 꿈꾸고 또 실행하게 만드는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그 일탈이 현실만큼 빛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보게 된다. 2년 전쯤부터 그런 감정이 선명해졌다.
환상 안에도 현실이 있고, 현실 안에도 환상이 있다. 가족여행은 그 두 세계를 번갈아 체험하게 하며 균형을 맞춰주는 장치 같다. 장소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느낀다.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보다, 우리가 어떤 상태로 그 시간을 통과하느냐에 가까워지고 있다. 결국 내가 바꾸고 싶은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태도다. 더 멀리 가는 대신 더 깊이 머물고, 더 많이 쓰는 대신 더 많이 느끼며, 여행을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나의 일상과 이어지는 시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