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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Apr 03. 2024

장미의 시작

3월 이야기

반가운 주말을 맞아 일주일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마당에 나가보니 수선화와 튤립 꽃은 아직이지만 매화, 홍매화 꽃이 활짝 피어났다. 노란 산수유나무도 점을 찍어 놓은 듯 싱그러웠다. 지난주에 나눔 받아놓은 떡갈수국, 불두화, 목수국이 숙제처럼 쌓여 있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삽을 들고 식물을 심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모두 꽃나무로 해가 지날수록 크기가 커지고 겨울에도 땅에 줄기가 남는 식물들이다. 꽃나무의 크기가 커질 것을 예상해서 화단의 맨 뒷자리, 양쪽 나무 사이에 넉넉한 공간으로 정했다.

 땅을 파기 시작했다. 최대한 깊게 파려고 하는데 이미 자리 잡은 다른 식물의 뿌리들과 정체 모를 구근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파기가 쉽지 않다. 결국 호미를 꺼내서 파기 시작했다. 돌덩이들과 녹슨 못이 자꾸 나온다. 적당히 뿌리가 들어갈 자리만 생기면 그만 파고 식물 심기 작업을 완료하고 싶지만 소중한 식물일수록 최대한 넓고 깊게 파주고 싶어진다. 그 이유는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내 팔보다는 힘이 약한 식물의 뿌리가 최대한 잘 뻗을 수 있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다. 좀만 더 좀만 더를 외치다 무릎에 뼈소리가 들릴 무렵 땅파기를 멈춘다.


 다음 날은 가위를 꺼내 들었다. 얼어버린 티트리 나무의 죽은 가지를 자르고, 장미의 잎도 잘랐다. 목수국도 가지를 잘라줬다. 덥수룩한 누런 잔디도 머리채를 잡아 한 움큼씩 잘라줬다. 그러다 뒷집 할머니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주인공은 우리 집 마당에 심은 잣나무였다. 잣나무가 크게 자라고, 뿌리가 자기 집을 향해서 뻗으면 안 좋은데 왜 잣나무를 심어놨냐는 것이다. 준공할 때 심어놓은 나무이고, 지금까지 2년 동안 별 문제가 없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잣나무가 커지면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남편과 잠시 고민 후 더 일이 커지기 전에 처리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잣나무 2그루를 뽑기로 했다. 2년생 잣나무 반으로 자르고 뿌리를 뽑아냈다. 뽑는 일은 생각보다 금방 뽑혔는데 자른 나무를 정리하는 것이 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솔잎은 버리고 줄기는 잘라서 박스에 정리했다. 진득한 송진이 장갑과 옷에 묻어났다. 나무 두 그루가 사라지니 화단이 휑했다. 마당에 나온 김에 비가 오면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이던 텃밭의 고랑을 없애고 물길을 만들었다. 물길을 막고 있는 잔디들을 모두 파내고 돌을 끼워서 넘어가지 못하게 했다.

 잣나무는 아깝지만 이참에 덩굴장미를 키우기로 했다. 며칠간 장미농원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마음의 리스트를 완성했고, 며칠간 벼르던 장미 박스가 드디어 배송되었다. 배송된 4종의 장미가 너무 커서 어찌 두기도 마땅치 않아 그냥 바닥에 눕혀 두고 이틀간 거센 봄바람을 맞혔다. 일요일이 되어 얼른 아침밥을 우고 마당으로 나갔다. 온도가 적당하고 거센 바람이 없어서 불청객 미세먼지는 있었지만 그래도 마당 일을 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먼저 삽을 들고 텃밭에 거름을 섞었더니 마스크 아래로 땀방울이 흘렀다. 


 장미를 심을 곳에 최대한 구덩이를 파고 물을 가득 채우고 장미 전용 흙으로 부었다. 장미 전용 흙은 습기를 머금은 곱고 검은 모래흙처럼 보였다. 이렇게 땅 장미 한 종류는 금방 심었다. 대망의 덩굴장미를 심기 위해서 다른 택배 상자를 열였다. 덩굴장미는 지지할 구조물이 필요하다. 장미 휀스 2개와 아치 1개를 샀다. 남편에게 조립을 맡기니 한참 씨름 끝에 완성이 되었다. 펜스를 먼저 설치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호미로 여의치 않아 삽으로 땅을 파고, 발로 꾹꾹 눌러 땅에 기둥을 박았다. 장미를 심을 구덩이를 파고 빨간색 덩굴장미 "플로렌티나"의 뿌리를 땅에 심었다. 이 작업을 마치고 장미를 동여 매어 놓은 끈을 끊는데 마음이 두근두근했다. 장미 언박싱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휀스로 어떻게 유인을 해야 할지 잘 몰라서 일단 몇 군대를 고정이 되도록 동봉된 끈을 묶었다. 펼쳐진 부채 모양처럼 장미가 고정되었다.

 두 번째로는 아치에 심을 분홍장미 "자스미나"이다. 나는 마당 안쪽을 생각했는데, 남편이 집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설치하자고 해서 정원 입구에 잔디를 파내고 심기로 했다. 우리 집은 앞 집에 가리고 태양광 발전기에 가려서 양지바른 남향이 다 사라졌는데, 마지막 남은 남향 자리가 이 마당 입구이다. 잔디를 파내서 아치를 박을 구멍을 냈다. 아치의 중심을 맞추고 구부러지지 않게 위치를 잡았다. 장미를 심을 부분에 잔디와 흙을 파내고 고운 상토를 채웠다. 남편은 다시 흙을 덮을 거면 왜 파냐고 하지만 뿌리가 뻗을 공간이 더 넓었으면 하는 욕심은 좀 더를 외친다. 이제 장미 뿌리를 넣고 흙을 덮어준 뒤, 장미를 묶은 끈을 끊었더니 덩굴장미 자스미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제일 굵은 가지 두 개를 아치에 고정했다. 아직은 줄기가 얇고 꽃도 없지만 완성된 모습을 보니 남편도 나도 뿌듯했다. 설치하기를 잘했다고 몇 번을 말했다.


 그 새 정원은 노란 수선화가 계속 피어나더니, 별처럼 화단을 가득 채웠다. 처음 보는 잎사귀가 있어서 두었더니 분홍색 꽃이 폈다. 이 집에 처음 이사 올 때 즉흥적으로 샀던 구근 히아신스였다. 이사 온 기념으로 구근을 사서 꽃을 한번 보고, 마당 구석에 버린 것 같은데 2년이 지나 다시 꽃이 돌아왔다. 다시 필 때는 처음의 많은 꽃이 아니고 네다섯 개의 꽃만 달고 있었지만 그 색과 향은 그대로였다. 분홍빛과 흰색 줄무니가 진해지더니 뒤로 활짝 열리며 꽃의 존재감을 더해갔다.  이사 직후의 설레던 마음을 다시 선물 받은 것 같다.

2022년과 지금의 모습

 매화, 홍매화의 꽃은 지고 두 번째 타자 개나리와 목련, 벚꽃이 깨어나고 있다. 세 번째 타자가 될 봄 꽃들도 앙상한 가지에서  꽃눈이 터져 나오면서 잎이 터져 나온다. 철쭉과 단풍나무에도, 황금사철나무에도 이파리들이 진격하며 가지를 뚫고 나오고 있다. 올봄에도 어김없이 시작된 봄의 심포니가 즐겁다. '한 일도 없는 데, 또 봄을 받았다'는 어느 시구처럼 나 역시 정원 가득 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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