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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있는독서 Nov 14. 2023

11. 우리는 진지해져야 할까?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 오스카 와일드, 정영목 옮김

낭만의 핵심은 불확실성이야.
(p222)     




 ‘낭만’이 들어간 자리를 ‘삶’으로 바꿔 보았습니다.


 "삶의 핵심은 불확실성이야. "


 오스카 와일드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빅토리아 시대 ‘예술을 위한 예술’ 유미주의를 지향한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손꼽힙니다. 구조를 중요시하며 위트 있고 날카롭게 비꼬는 언어유희와 비유가 특징입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동화 <행복한 왕자>, 희곡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살로메>, 소설로는 <캔터빌의 유령>, <어서 새빌 경의 범죄>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천재성으로 주목을 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뉴욕으로 진출합니다. 부와 명성을 모두 거머쥔 듯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1895년, 퀸즈베리 후작의 막내아들인 앨프레드 더글러스와의 동성애 사건(당시에는 불법이었음)으로 수감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제적으로 파산했으며 아내로부터 별거를 통보받고 양육권을 박탈당합니다. 출소 후 프랑스로 건너가지만 사망할 때까지 재기하지 못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천재 작가로 각광을 받았지만, 46세 뇌수막염으로 사망할 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천재 작가이자 달변가로 성공가도만을 달릴 것 같았던 그에게도 삶은 불확실성, 그 자체였습니다.


 희곡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민음사), 2009>은 런던 생활자 앨저넌과 슈롭셔라는 지방 거주자 잭, 앨저넌의 사촌 그웬들린과 어머니 브랙널 부인, 잭이 후견하는 세실리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에 대해 호기심과 호감, 그리고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Earnest(진지)’한 것에  대해 각자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주인공 앨저넌은 원치 않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을 때 친구 ‘번버리’를, 잭은 런던에 살고 있는 동생 ‘어니스트’ 핑계를 댑니다. 당당하게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누군가를 만들어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기존 사회규범에 대해 냉소적인 관점을 갖고 있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웬들리와 세실리는 극 속에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매우 진지한 이미지의 남성을 사랑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사랑하는 어니스트가 잭이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어니스트’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모두 혼란에 빠집니다.


 작가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서 '진지'하다는 것이 중요한 미덕이라고 사람들이 믿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바람에 부응하는 위선적인 행동이라고 비꼬고 있습니다. 성찰을 통해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기대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극 속에서 그웬들리와 세실리가 사랑한 허상 속의 '어니스트'가 현대인들의 SNS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니스트'와 SNS는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웬들리의 어머니인 브랙널 부인은 세실리가 부모가 없는 천애 고아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녀를 하찮게 대합니다. 그러나 세실리가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세상에 다시 없이 아름다운 아가씨라며 태도가 돌변합니다. 등장인물들은 그들 자체가 아니라, 어느 집안의 사람인지, 재산을 얼마나 물려받았는지에 따라 평가와 대우가 달라집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은 자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에게 귀속되는 존재라고 표현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서로를 바라보게 된 등장인물들에게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요? 삶의 핵심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불확실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은 완벽하게 닫힌 해피엔딩인 것 같은데 이상하게 씁쓸함이 진하게 남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진지해지는 것의 중요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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