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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맛있는독서 Feb 20. 2024

22.당신이 진정 사랑한다면

<슬픈 세상의 기쁜 말>_정혜윤


     

우리 인류가 어떤 일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 그만둘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를.

(p.168)
     

 정혜윤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2022, 위고) 중에 붉은가슴도요새 이야기가 나옵니다. 무리 중 한 마리였던 ‘B95’. 1990년대 캐나다 북극권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95년 과학자들에게 처음 포획되었을 때 검은색 플라스틱 밴드를 발목에 차게 됩니다. 이때 약 3살 정도로 추정되었습니다. 몸무게 113그램짜리 이 작은 새 B95는 이후 12년이 지나 2007년, 2010년 그리고 2011년까지 20여 년을 기적같이 생존합니다. 번식지에서 월동지까지 직선으로 움직였다고 했을 때 14,000킬로미터를 1년에 두 번씩 날아야 합니다. 그 머나먼 거리를 날갯짓만으로 왕복한 B95를 과학자들은 ‘문버드’라고 부르며 생존 소식에 기뻐했습니다.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캐나다 허드슨만까지 어마어마한 거리를 순전히 자신의 날갯짓만으로 이동해야 하는 붉은가슴도요새에게 먹이를 먹고 쉴 수 있는 중간 정거장은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이지만, 인간에 의해 오염되거나 개발되었기 때문에 중간 정거장이 사라져 멸종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저자 정혜윤은 라디오 PD로 세월호 유족의 이야기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 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한다] 등을 제작했습니다. 대표 저서로는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 <그의 슬픔과 기쁨>, <세상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에세이집 <마술 라디오> 등을 썼습니다. 저자가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그의 슬픔과 기쁨> 북 토크를 진행하며 세월호 침몰을 보면서 죽은 아이들이 흘렸을 눈물을 떠올렸다며 그 아이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자들은 보다 안전한 사회에서 살겠지만, “아이들의 눈물 위에 세워진 천국이라면 나도 거절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슬프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현실이 아프기만 합니다.     


 책에서 작가는 ‘연대’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슬프고도 고귀한 의미를 알려줍니다.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그렇기에 작가는 인간의 힘을 믿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 사람들이 서로 기대고 연결하고 소통하는 것. 이것이 서로를 사랑하고 지탱하는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자연의 생명과 과거, 미래와의 연대를 이야기합니다. 붉은가슴도요새 문버드 B95 이야기는 우리가 안다고 착각하는 잘 모르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현실의 다른 측면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 들어봐야 비로소 지금과 다른 삶이 가능하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은 새 한 마리가 가진 생명력과 가능성, 그것을 해치고 있는 우리의 모습들이 ‘아! 이것이구나’하고 각성하고 멈출 수 있어야 비로소 세상은 변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공감합니다. 역지사지를 할 줄 압니다. 그리고 타협도 잘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이 얼마나 급하고 중요한 일인지 모르기 쉽습니다. 당신의 한 줌 손아귀에 담기는 그 작은 붉은가슴도요새가 아니기 때문에 갯벌을 메워 물을 빼내고 땅을 다져 건물을 짓는 것이 당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망하게 물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의 이야기가 지독히도 운 나쁜 누군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안도의 한숨이 이태원 참사로 세상을 무너지게 했습니다. 지구가 탐욕과 경쟁 속에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트 식품 진열대의 플라스틱 상자를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고 있습니다. 분명 ‘꼭 필요할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편리하니까, 분리배출을 잘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과연 그것만으로 세상이 변할까요? 우리가 진정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갯벌을 보존하고 마트 진열대의 플라스틱 상자는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요?이런 질문을 품고 있다면, 당신만의,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다면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을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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