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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ean Sep 14. 2017

단단한 마음

vol.8 Color story





단단한 주머니





                                 

빽빽해서 좀처럼 속도를 내기 어려운 찻길. 그마저 분위기 있어 보였던 여행자의 마음.






리스본의 초겨울은 우리나라의 가을과 그 모양이 비슷했다. 냄새와 색. 그리고 온도까지.






따뜻한 볕을 벗삼아 코를 힘차게 풀고 계시던 분. 손수건도 챙기시고..할아버지, 신사!!






저녁노을이 흘러내리는 리스본 대성당. 노릇노릇 따뜻하게 달궈둔 덕에 해가 져도 따뜻하다.






트램 정거장은 어디든 북적북적 거렸다. 저멀리 점점 커지는 노오란 점은 트램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작은 설렘이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인만큼 복잡한 교통은 물론, 거리마다 상기된 인파로 그득했다. 특히, 알파마 같은 주요 관광지에서는 'Beware of pickpockets'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었는데, 넋을 놓고 구경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소매치기로부터 보호하려는 귀여운 경고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알리 없었던, 세상 행복하게 사진 찍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던 나는 한 외국인으로부터 옐로카드를 받고야만다.. '너 주머니 조심해!!'

사실 고맙기도 하면서 여행에선 꽤 베테랑인 나의 오만한 자존심이 발동하여 왜 그리 야단법석일까 했는데 정말 타깃이 될뻔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조금은 주의란 걸 하게 되었다. 스치듯 사라졌지만 잠깐 동안 느꼈던 낯선 이의 검은 숨결은 매우 께름칙하고 무서웠는데 나의 맞은편에서 그들을 쫓아내며, 와이프의 조그만 주머니를 지켜냈다는 의기양양함을 표출하던 남편의 표정이란... 하하!!




여행을 오롯이 즐겁게만 하려는 건 어찌 보면 여행자의 본능임과 동시에 욕심이다. 적어도 내 경험을 비추어보면 그랬다. 그 욕심이라는 게, 그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의 준비나 노력보다 앞서면 예상치 않게 찾아오는 좌절과 절망의 체감도는 배가 된다. 누구든지 무언가를 시작하면 어떠한 형태로 생겼든 경험이라는 걸 하게 되는데 그것이 유용하든 그렇지 않든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단단하고 의연한 마음을 조금씩 장착하게 된다.









아쉽게도 리스본에서는 비가 오지 않았다. 변덕이 죽 끓듯 했던 포르투의 어떤 날. 조금은 그리웠던 그 어떤 순간.






갑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왜 비 오는 날을 좋아해? 그리고 나는 서슴없이 말한다. 비 오는 소리, 엷은 안개가 내려앉은 뿌연 도시, 촉촉한 공기, 바람을 타고 다니는 젖은 흙의 기운, 날 차분하게 정리해주는 듯한 느낌..

이는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텐데 조용히 집중이 되는 특유한 분위기는 그 어떤 상황도 대치될 수 없을 만큼, 적당한 비의 매력은 무한하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이 순간부터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비가 온다면 어떨까? 매일매일 정말 하루도 안 빠지고 비가 내리는 상상을 해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레절레... 가깝게는 여름 장마철만으로도 몸서리를 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누구에겐 절실하고 누구에겐 원망스럽고.. 하지만 그 누구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 어쩔 수 없는 비.

내리는 비는 사람의 의지 밖 일이다. 새 신발을 신자니 꺼려지고, 자전거를 타고 싶은데 고민스럽고, 뜨거운 볕에서 바짝바짝 건조하고 싶은데 현실의 빨래는 눅눅하고..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감정들.

공기의 필요성이나 전기의 고마움처럼 무의식 중에서도 그 누구나 아는 사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막을 수 있는 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  어쩌면 이런 불가능에 순응하고 오히려 장점을 찾아, 그냥 비를 좋아해 버리자 하게 된 것이라면, 이것도 훈련이라면 훈련. 적당한 포기도 알고 주어짐에 적응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이런 훈련들을 통해 하루하루가 만족스럽고 그 와중에 행복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는 거다.

각자의 역량만큼 각각 다른 모양새의 행복일지라도 이렇게 두터워지고 단단해진 행복들이 한두 개쯤 가방 안에 간직되어 있다면 느닷없이 머릿속이 하얘지는 타지에서는 분명히 큰 힘이 될 것이다. 마음의 방패가 되어 준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장르의 고지에 봉착하게 되면 또다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되겠지만.




내 경우엔 좀 멀리, 여러 번의 교통편을 이용해야 하는 경우 여러 가지 일들이 아주 다양하게 일어났었다. 비행기가 결항되는 일, 눈 깜짝할 사이에 가방이 사라지는 일, 제 날짜에 도착하지 못해 여행지에서의, 호텔에서의 하루를 날리는 일, 심하게 체하여 밤새도록 구토와 통증으로 시달리던 일등..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노하우의 레벨이 올라갈수록 척척박사가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만이 아니라 그냥 꾹 참을 수 있게 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화제 전환이 어렵지 않게 된다는 얘긴데, 난생처음 겪는 일에도 좀 더 의연하게 반응할 수 있고 곧바로 대처방안을 생각해 낼 수 있게 되면 그 어떤 때보다 스스로를 믿게 되고 힘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찾아가며 긍정의 한계선을 오가다 보면 여행자의 심장은 점점 굳세어질 거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pickpocket!'경고문은 아주 친절한 배려라 볼 수 있다. (사진은 구글에서)














이미 수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도심에서는 포르투갈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콜라보되어 적절한 조화를 이루기도 했다. 사실 어울리지 않았던, 아니 조금은 아쉬웠던 푸드코트의 세련됨은 아날로그 감성의 포르투갈과 적잖은 괴리감이 있었으나 국물 음식을 좋아하는 나로선 밤마다 '똠양꿍'을 흡입할 수 있어 내심 반가웠다. 철저한 예약제로 운영이 되던 엄청난 기대치의 고급 레스토랑들 또한 탄식을 자아낼 만큼 우리네 입맛과 어울렸고, 이는 충만한 감성생산에 계속되는 에너지의 소모에도 굳건히 탐험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마주치는 모든 순간에서 느껴지는 친근함과 낯섦. 친근함이 낯섦을 제치고 나갈 때면 마음이 편해서 행복했고, 그 반대일 땐 설레어서 행복했다. 쫓기지 않고 여유를 부리며, 흐르는 시간을 피부로 느끼며,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또 그렇게 흐른다.








photo & journey essay

내 마음속 포르투갈

흑백으로 기억하는 남자 X 컬러로 기억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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