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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리 Aug 08. 2019

결혼을 실패한 사람이 말하는 결혼을 실패하지 않는 방법

결혼 한지 5년,

이혼 이야기를 꺼낸 지 2년,

나의 요구 끝에 별거를 한 지 4개월.


이 모든 과정이 끝난 요즘의 나는 홀가분하다. 그 과정이 두려웠던 건 역시나 이혼을 겪어보지 못해서, 더 높은 산으로 느껴졌던 것도 맞았다. 결혼과 이혼은 둘 다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거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막상 닥쳐보니 이혼은 그냥 이별과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 가장 아팠던 이별보다 덜 슬펐다. 나는 행복해서 씁쓸한 요즘을 보내고 있다.




이혼의 결정에 대해 언급할 일이 많은 요즘.

나의 커밍아웃에 <왜> 냐는 질문은 물론,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묻는 이는 없었다.


물론 구체적으로 시시콜콜 답변해야 하리라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 서른> 끼리 이혼이라는 단어를 논하게 되면 사실 누군가는 당황할 수 도 있었을 텐데. 나와 가깝지 않은 에스테틱 샵 선생님은 '어머어머'를 외치며 아침드라마 방청객인 양 반응하던데. 눈 하나 동그랗게 뜨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들의 반응과, 섣불리 위로의 말조차 꺼내지 않는 배려는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의 이혼 결정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내가 심리상담을 받는다는 걸 공개하자 많은 이들이 '나도' 라며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처럼.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의 문제부터 결혼 후 갖고 있는 불만, 이혼에 대한 고민까지 아주 다양한 고민상담을 받았다. 물론 나는 내가 실패한 결혼일 뿐, 결혼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저 각자의 상황에 따라, 처해있는 환경에 대해 공감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조언해주었다.


다시 결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내가 만약 다시 결혼을 한다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꼰대스럽지 않게 나의 경험에 빚 대어 조심스럽게. 그렇게 신중히 나눈 조언들을 토대로 나는 결혼 전에, 혹은 너무 늦기 전에 부부가 알고 있으면 좋을만한 그저 교과서 같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1) 나의 자아는 완벽한가.


자아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이다. 사람의 자아는 끊임없이 변한다. 나는 스물다섯에 결혼식을 올렸고 이혼을 하는 서른이 되기까지 아주 많은 자아가, 가치관이 변화하였다. 물론 결혼 적령기의 흔한 나이가 아니었기에 더욱이 그러했겠지만, 그렇다고 꼭 나이만이 자아를 변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기 두려웠던 이유 중 한 가지도 '과거의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갖게 된 미래의 내'가 이 글을 부끄러워하게 될까 봐서였던 것처럼. 사람은 언제나, 특히 성장과 발전의 속도가 높을수록 가치관과 자아도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한다.


전 남편은 내게 '네가 너무 많이 변했다' 고 자주 이야기했었다. 그때 당시 나는 내가 도둑놈이 된 것도 아닌데, 긍정적으로 변화한 내가 싫다면 그의 이해심이 부족한 것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할 수 있어졌다. 맞다, 나는 정말 많이 변했다.


핑크색 치마를 입히려는 그에게,

여린 감성 덕에 자주 울던,

늘 그가 지켜줘야 할 것 같았던 스물둘의 나는


검정 슬랙스를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로

내 앞에 무슨 상황이 등장해도 무너지지 않는

수십 명을 지켜내야 하는 서른의 내가 되었다.


패션과 감정을 빗대은 표현일 뿐 나는 이를 비롯하여 많은 자아가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떠한 나의 모습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걸 내가 당연히 요구할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상형이라는 게 있고 결혼에 대한 억제되지 않은 로망 같은 것이 있으니까. 나도 마찬가지니까.


https://brunch.co.kr/@shecandowhat/2



예전에 썼던 나의 글에도 등장했던 내용이다.

나도 돌이켜보고 내가 미안한 딱 한 가지를 떠올려냈다. 결혼이 주는 변화에 대해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이 서툴었던 스물다섯의 나.

그를 만난 것, 결혼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 없다.
내가 후회한 건 내게 좀 더 확실한 결혼에 대한 인식, 가치관이 있었더라면.

딱 지금 만큼만이라도 현명했더라면.
나는 누군가를 나의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있었을 텐데. 집안일을 요구하는 당신께, 그게 왜 나만의 몫이 아닌지 설명하며 같이 이겨나갔어야 했는데. ‘이게 뭐지. 내가 생각한 결혼이 아닌데.’ 하고 동굴 속으로 숨어버린 거.


나는 앞으로도 지금의 내 가치관을 평생 유지해갈 자신이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게 지금 서른의 내가 당장 비혼 주의인 이유이자,

(갔다 와놓고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평생 비혼 주의 일지는 또 모르겠는 이유이다.


'나의 자아가 현재 완벽하다'라는 것, 누구나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한 두 성인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게 되는 것 또한, 물론 더욱이 쉽지 않다. 결혼에 '타이밍' 이 있다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가, 배우자가 자아를 완벽하게 갖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2) 어떤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어떤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은, 정말 당연하다. 진짜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럼에도 당연한 걸 놓친 내가 된 것 같아 쑥스럽지만, 결혼이 그런 것 같다. 시간이 너무도 많이 흐르고, 서로에게 너무도 익숙해지고, 모든 게 너무도 당연해지면 당장 앞에 있는 너와 보내는 시간을 즐기고 함께 하는 것 이상의 어떠한 관계에 대한 고민이 쉽지 않아 진다.


둘이 맞는 아침이 좋고, 주말에 먹을 저녁 메뉴에 대한 고민이 재미있고, 그냥 같이 있는 시간이 좋은, 그러니 체계적으로 고민하거나 준비하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관계는 친구와 연인 관계까지인 것 같다.


부부와 회사는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정기적으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개편 TFT를 운영하여 회의를 하고 개편 사항을 논의하며 시즌마다 결산 워크숍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며, 철학을 끊임없이 공유한다. 이 과정은 당장 진행되어야 할 어떤 프로젝트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회사와 직원들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행위이다.


과정이 거창해 보이지만 이렇듯 관계는 끊임없는 고민과 주의, 돌봄, 노력이 필요하다. 부부에게도 마찬가지다.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전략. 살다가 무뎌져도, 조금은 사랑이 식었어도 함께 이겨내고 버텨갈 수 있는 고민. 혹여 둘 사이에 어떤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그 어려움이 생기기 전에 준비해둔 튼튼한 관계로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 그렇게 단단해진 두 사람에게 작은 역경쯤은 스쳐가 버릴 수 있는 그런 힘.


그런 단단함은 시간만 보내서 되는 게 아니니까.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라는 말처럼 

시간은 무언가를 해결해주는 만능템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무서우리만큼 먼 거리를 주기도 한다.






3) 주요한 것에 대한 정의


나에게 유독 더 크게 느껴졌을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가족에 대한 정의를 예로 들어보면 내게 가족은 하나의 세상이었다. 내가 돈을 잘 벌고 싶은 이유도 가족이었고, 내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뱉는 순간도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였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고, 엄마는 아빠를 존경했으며 언니는 나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가족'은 정말 이상적이었고 사랑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족은 조금 달랐다. 가족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그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아 서술하지 못하지만 한가지 기억에 남는 표현, 그는 내게 "우리는 부부가 아니고 그냥 가족 같아" 라는 말을 뱉은 적이 있었다.


내겐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었다. 나는 부부가 단단해져 비로소 가족이라는 위대한 존재가 된다 믿었고, 그는 ‘가족처럼’ 이 아니라 더 좋은 의미로써 부부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분명 같은 단어였는데, 두 사람이 가진 각 단어의 정의와 중요도는 굉장히 달랐다.



'주요한 것'을 '돈' 이라는 예시로 풀어본다면.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게 있는 관계의 결혼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경우 관계 성립이 쉽지 않다는 것은 다수가 알고 있어 사실상 비슷한 실수는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수가 비교적 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 대해 전하고 싶었다. 각자가 ‘가진’ 돈 보다 각자가 ‘버는’ 돈 보다 각자가 ‘정의하는’ 돈. 


나는 또래에 비해 돈을 잘 벌었지만, 적토 산성이 가훈인 집에서 자랐다. 시발 비용 (이것 참 대체할 단어가 꼭 있으면 좋겠다) 이라고 칭하는 그런 돈이 쓰고 싶은 날이면 나는 올리브영에 가서 마스크팩을 샀다. 갖고 싶은걸 끙끙 앓아가며 참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을 기본적으로 잘 쓸 줄 몰랐고 새어나가는 돈을 싫어했으며 그러다 보니 덕분에 돈을 잘 모았다.


그는 나와 비슷한, 넉넉하지만은 않은 환경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그 결과는 나와 반대로 돈을 잘 쓰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나와 다를 뿐, 잘못된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통장에 잔고가 있어야 행복한 나와, 잔고따위 돈을 써버려야 행복한 그. 


나는 돈이 인생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음에도 그로인해 우리는 꽤 힘들었다. 그에게 ‘큰 돈’이라 함은 언젠가 로또 같은 프로젝트로, 혹은 대형 투자건 회수로 벌게 될 그런 존재였다. 빚이 있어도 외제차를 타야 했고 벌이가 없어도 튜닝을 해야 했다. (이건 잘못된 사고라고 생각한다)




꼭 <가족>이나 <돈>에 대한 정의가 아니더라도

행복, 여가, 명예, 운동, 공휴일, 문화생활 등

내가 인생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들에 대한 정의를

함께 짚어보는 습관은 건강한 관계 형성에, 

또 실패 없는 결혼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천천히.


이건 그저 아주 작은 팁 정도지만,

사랑은 언젠가 식는다.


물론 개인차는 많다. 덜 식고, 더 식고, 빨리 식고, 천천히 식고. 그러나 평생토록 조금도 식지 않는 뜨거운 사랑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니까. (대신 그마만큼 관계에 대한 편안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부부에게 많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전우애로 산다'는 그 표현 속 전우애도 사실 참 중요한 거고, 멋진 단어다)


예전에 심리상담사 선생님이 '결혼 5년 차'라는 나의 말에 '신혼이시네요'라고 말해주신 적이 있었다. 4년 차 즈음부터 우리는 구혼 부부라는 표현을 쓰곤 했기에, 이제 막 신혼이 되는 친구들을 보고 있던 내게 그 말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는데 사실 맞는 말이었다. 5-60년을 함께 살아야 하는 부부에게 5년은 대단한 신혼이잖나.  

사람이 너무 빨리 달리면 넘어지고, 너무 빨리 먹으면 체하는 것처럼. 인생은 길고 부부가 함께 보내야 할 시간 또한 굉장히 길다. 긴 시간을 상상하고 떠올리며 찬찬히 설계하고, 위에 작성했던 것 처럼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식어가는 속도를 줄이고. 그러다 보면 개인의 시간 또한 충분히 가질 수 있고 '혼자'에 서툴지 않아 진다. 인생은, 마라톤이다.






아니 근데,

사회는 언제 변하죠?


가정을 이뤄야 한다는 풍토와 그것이 아주 당연했던 사회.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결혼을 안 할 거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요즘은 주변에 비혼 주의자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8년 전만 해도 정말 드물었고, 지금도 비교적 많아졌다지만 아직은 비혼 주의자에 대한 시선에 불편함이 없지 않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시대적 배경에 대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기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똑한 사람은 개인의 가치관을 뚜렷이 주장해야 맞다. 나는 그저 그 시선과 당연함을 신념으로 이겨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도 세상 어딘가에 또 있을지 모를 제2의 홍유리를 위해, 더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회가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아래는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www검색어를 입력하세요에 나온 두 연인의 대화 내용이다.




배타미 (임수정) : 우리가 함께 산다면 그건 사랑 때문이고, 난 그 사랑을 법과 제도로 묶고 싶지 않아. 개인의 감정에 국가가 관여하는 게 싫고 그게 내 가치관이야.


박모건 (장기용) : 법과 제도로 묶인다는 건 보호받는 일이기도 해요. 그게 왜 나빠요?


타미 : 나쁘다고 안 했어. 나는 생각이 다르다고. 그래서 그 제도를 선택하지 않는 거라고.


모건 : 알아요.


타미 : 아니, 너 몰라. 너는 지금 네가 일반적이고 니 선택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모건 :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타미 : 있어. 봐. 나만 해명하고 있잖아 지금. 네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건 해명할 필요도 없잖아. 근데 나는 결혼을 안 한다는 이유로 지금 너한테 이렇게 많은 걸 해명하고 있잖아.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할 이유가 없는 남자와

비혼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여자의 연애 이야기.


연애와 결혼, 출산이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한국사회에서 

개개인들이 이것들을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원래' 당연하고 

'당연히' 일반적인 것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간 담담히 써내려간 수필보다는 혹여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계발서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서 진짜 진짜 오래도록 고민했던 글. 작성에도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결혼에 실패하지 않는 방법.


사실 세상에 '결혼을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게 현존한다면 1년에 10만 명이 넘는 이혼 남녀는 다 왜 있겠냐마는. 또 철저하게 나의 관점에서 쓴 글이니 나와 다른 상황의 누군가에게는 콧방귀도 안 먹힐 글이겠냐마는. 쓰다 보니 이게 웬 교과서 같은 소리냐 싶지마는. 그래도 오늘도, 또 혹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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