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 같은 마음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읽고

by 조영민

혹시 광어와 우럭의 차이를 알고 계시나요? 저는 광어와 우럭의 차이를 잘 알지 못합니다. 아가미가 끔뻑이는 날 것의 상태라면 구분할 수 있겠지만, 비늘과 껍질을 제거한 필렛에서 뜬 한 점의 횟감이라면 전혀 구분하지 못할 거예요. 마산 어시장 내 10평 남짓의 식당에서든 해운대의 값 비싼 레스토랑에서든, 저는 그저 주인장이 혹은 요리사가 양심적이라고 믿을 뿐입니다. 저에겐 그저 '회'일뿐인 것이지요. 하지만, 낚시와 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차이를 몇 가지 혹은 수십 가지나 나열하며 오랜 시간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과 나의 차이를 알고 계신가요? 나를 잘 알고 있는 당신이라면, 앞의 낚시꾼처럼 몇 까지도 설명할 수 있을 테지만, 나를 잘 알지 못하는 당신이라면 한참을 고민해도 두 손을 다 쓰지 못할 만큼 차이를 말하지 못할 것이에요. 마치 입안에 한가득 우럭을 넣고서도 광어라 믿을 수 있는 저처럼요.


이처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많은 차이를 느끼고 있다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만큼 많은 공통점이 있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우리는 차이점에 조금 더 주안을 두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는다면 내가 아빠와 서로 맞는 구석이 없다고 생각하고, 엄마와 약속한 것처럼 주기적으로 싸우는 것 설명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소름 돋을 만큼 똑같지 않을까요? 빛의 속도로 몇 만년 하고도 이틀이나 떨어진 곳에서의 외계인이 우리를 본다면, 우리는 데칼코마니처럼 찍어낸 것이라 생각할지도 몰라요. 아니, 그만큼 멀지 않더라도 우리 아파트 2층의 꼬마는 캘리포니아의 제임스와 뉴욕의 존을 구분하지 못할걸요? 아니, 그만큼 멀지 않더라도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되뇌고 다른 이를 이해하려 한다면, 나와 남동생 그리고 고모할머니와 태국의 공주는 모두 한없이 같은 점에 있을 거예요. 마치 소설 속의 크리스천 엄마와 상처받은 성 소수자 아들, 그리고 자신이 게이임을 거부하는 그의 애인과 같이 말이에요.


그러니 우리는 서로 안아주기로 해요. 서로 다른 이들은 사실 서로 안아주고 싶은 이들이잖아요. 우주에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고요. 모둠회 속의 광어와 우럭과 같이 말이에요. 광어와 우럭은 우주의 맛, 그리고 거기에 감칠맛을 더하는 초장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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