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햇살

이천이십사 년 구월의 열아흐레

by 조영민

주원이의 출산일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속칭 제주 스님으로부터 정해졌다. 그 제주 스님은 언젠가 절에서 공부를 해오시다 제주의 한적한 마을의 작은 집 -젊은이들이 찾는 해변가 앞 건물 이층에 꽤나 신식으로 꾸며졌다고 했다- 에서 사주와 작명을 봐주신다고 한다. 장모님의 막내 이모님께서 매 연말마다 찾아뵈어 온 가족 신년운세를 여쭤보는 분인데, 주원이와의 결혼 전 내 생년월일시 역시 그 스님께서 보셨다고 한다. 신년의 운세를 월별로 나누어 말씀해 주시는데, 막내 이모님이 녹음한 내용을 들어보면 스님 특유의 선문답과 제주 사투리가 섞여 경상도 토박이인 나는 도통 알아듣질 못하고 장모님께 항상 되물어본다. 그러면 장모님께서는 그 신년 운세에 대한 자신의 풀이를 원 녹음본보다 훨씬 길게 설명해 주시는데, 나는 칠월 운세를 들을 때 즈음에 자리를 피하곤 했다.


팔월 삼십일 아니면 구월 십일이야. 그러니까 삼십 팔주하고도 사일 차 되는 날 아니면 사십일을 꽉 채운 예정일인거지. 주원이가 스님이 정한 출산일을 알려주었다. 앞의 날은 너무 이르고, 뒤의 날은 혹시나 뿡빵이가 먼저 나오게 되어 날짜를 맞추지 못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온 가족의 미래가 그 출산일에 달린 것 마냥 몇 날 며칠을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구월의 열흘까지 기다려보기로 결정했다. 그래. 뿡빵이가 그 이전에 나온다면 그게 자신의 운명이고 사주팔자인거야. 주원이는 떨림이 조금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당차 보이게 말했다.


사실 나는 사주를 믿지 않는다. 사람의 운명이 태어난 시각에 정해진다고 하는 것은 공대생의 입장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내용이다. 하지만 어떤 날이 좋고 어느 날은 피해라 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스레 불안함이 훅 올라왔다. 좋지 않은 날 뿡빵이가 태어난다면 혹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후에 뿡빵이가 후회할만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그런 불안 말이다.


다행히도 뿡빵이는 구월 십일까지 주원이의 뱃속에서 지내 주었고, 나와 주원이는 건강한 모습의 뿡빵이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는 한 시름 놓아도 될까 했는데, 뿡빵이의 이름이 남아있었다.


할아버지가 능력이 없어 우리 뿡빵이 이름을 못 지어주겠으니 유명한 작명가를 찾아보라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그래, 이름을 지을 때도 사주를 봐야 한다. 이 출신 대학교처럼 따라붙는 사주의 모습에, 제주 스님의 그날까지 기다려준 뿡빵이가 다시 한번 고마워졌다. 나는 개명도 작명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유명한 작명가가 누군지 알 턱이 없었고, 인터넷을 여럿 뒤져 부산의 맘카페에서 유명한 어느 작명가 홈페이지에 작명 예약을 하였다.


하루 하고도 두 시간이 지났을 때, 메일로 이름 후보 열다섯이 전해졌다. 뿡빵이의 사주와 좋은 음, 그리고 우리의 요청 사항 -주원이는 중성적이면서 촌스럽진 않고 대중적이지만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꽤나 복잡한 이름을 원했다- 을 다 만족하는 이름을 짓기가 어려웠을 텐데 열다섯이나 되는 후보군을 전해주다니. 약은 약사에게 맡겨야 하나보다. 이름 하나하나를 살펴보던 차, 작명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뿡빵이의 사주가 가을의 화로와 같다고 설명하며 나무와 불이 들어간 글자가 도움이 될 것이기에 나무와 불이 들어간 한자를 기준으로 이름을 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무와 초록색이 잘 맞으며 심지어는 중요한 날 속옷까지 초록색으로 입히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런 색의 속옷을 과연 뿡빵이가 마음에 들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를 마치고 이름을 다시 한번 살펴보니, 각 이름에 나무와 불의 의미와 기운이 서려있는 한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이름이 무난하고 이쁜 이름이라 선택하기 꽤나 어려웠는데, 그중에 '이현'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특히 '이'라는 한자가 '오얏나무 이'이기에 눈길이 갔는데, 이는 그 한자가 주원이의 성씨이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주원이의 이름 중 한 자가 우리 자녀의 이름에 속하길 바랐는데, 마침 '이현'이라는 이름이 딱 그랬다. 그리고 '현'이라는 한자 역시 햇살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이현'이라는 이름은 나와 주원이의 햇살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뿡빵이를 '이현'이라 부르기로 했다. 애정이 담긴 '뿡빵이'라는 이름을 놓아주기 못내 아쉬웠지만 '이현'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햇살을 맞이하는 것이 퍽 즐겁다. 사주 역시 그 이름과 잘 어울린다고 하지 않나. 삼십오 년을 넘는 시간 동안 믿지 않던 사주를 믿게 만드는, 우리의 햇살은 나에게 신과 같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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