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은 무엇인가

왜 현대음악이라고 하는가?

by Gigantes Yang


현대음악은 무엇인가? 왜 현대음악이라고 하는가?


sehr langsam | 아주 천천히 [2019년에 완성한 개인 작품의 일부]


처음 현대음악을 접했을 때의 나는 현대음악의 기본도 모르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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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을 하면서 나에게 현대음악이란 반음계, 불협화, 클러스터, 듣기 불편한 소리에 불과했다. 현대음악을 들으러 굳이 음악회를 찾아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런 걸 쓰고, 듣고, 또 즐기나 싶었다. 물론, 지금도 완전하게 이해를 한다고는 못하겠다.


2001년 대학교에 입학을 한 나는 생전 처음으로 현대음악 연주회를 찾아갔다. 사실 학교 출석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갔던 걸로 기억한다. 예술의 전당 리사이트홀 2층(무대를 등지고 좌측 발코니 자리)에 앉아 있었던 나는 어떤 한 작곡가의 작품을 듣다가 하품을 하게 되었다. 하품을 하며 입을 벌린 채 1층에 앉아있던 작곡가와 마주쳤다. 교수님이었다. 뒤풀이에서 교수님께서는 얼마나 자신의 곡이 편안했으면 그랬겠냐며 웃고 넘어가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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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전도, 낭만도, 바로크 시대에도 살고 있지 않다. 현대에 살고 있다. 예전의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도 자신의 시대가 현대로 인식하고 살았지, 자신의 시대가 고전인지 또는 낭만인지 알리가 없었을 거다. 내가 살고 있는 현대도 나중에는 어떤 명칭이 붙을까 궁금하다. 지금은 21C 현대음악의 시대로 불리고 있지만.


음악을, 작곡을 공부하며 음악인으로 살아온 지 약 20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 겨우 깨달은 것은, 현대음악을 한다는 것은 나의 음악 안에서 나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정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음악이라고 하면 나의 음악어법이 있어야겠다.


에서 를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하지만, 지나온 나의 경험에 대한 기억은 절대 무시 못한다. 새로운 기법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라 해도 우리는 최소 그 무엇인가에는 영향을 받고 살아간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은 곡가 자신에 의한 음악어법이지만, 그가 살면서 맺었던 인연들, 시대적 환경만 봐도 12음기법을 창안해 내기까지 그 무언가는 있었을 것이라는 거다.


월요일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저녁에는 어떤 와인을 마셨는지, 어떤 책을 끝냈는지... 사람은 꼭 직접적으로 인지를 하고 있지 않아도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무수히 많은 영향이라는 요소를 내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서로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족 외에 영원한 인연은 없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친구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이 들고부터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완전하게 없어졌다. 10년은 알고 지낸 친구관계 조차도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나의 친한 친구에게 100%라는 관계를 허용할 때, 과연 친구에 의한 친한 정도의 관계가 과연 나의 100%와 같을 수 있을까. 내 기준에는 100%이지만 친구에게는 70% 일수도, 50% 일수도 있다. 나는 100%인데, 친구는 아무리 100%로 나를 대해도, 내 기준에서는 70%라면 30%에 대한 서운함이 내 기준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여기에 나의 현 상황, 친구의 상황까지 겹친다면 관계는 저절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연을 맺은 지인들과 계산적으로 생각 안 한다. 내가 선물을 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뭔가가 돌아와야 한다는, 내 기준에서의 과정은 정말 필요하지 않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관계는 어렵지 않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친한 정도, 친구라는 개념이 나와 같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편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늘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도 분명히 있었을 거다.


방식이 현대를 살아가는 나의 음악관 안에도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된다. 륭한 음악가는 전 세계뿐만 아니라 한국 안에서만 찾아봐도 너무나도 많다. 음악의 대가들도, 주변에 곡을 잘 쓰는 음악가들도 너무나도 많다. 이들은 그들만의 음악어법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과 똑같아지려고 해 봤자 사실 큰 의미는 없다. 물론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 혼자 고생하면서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보다는 수월하게 음악을 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나의 음악만을 고집하든지, 누군가의 음악을 공부하면서 음악관을 잡아가든지 그건 본인이 선택하는 거다. 내 음악관 안의 나만의 정체성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는 내가 정하는 거다. 내가 무슨 음악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나의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