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리소토

(feat. 트러플 오일)

by 해시태그

어떤 냄새들은 정서적 그리움이나 온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서양인들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빵 굽는 냄새를 우리 집에서 맡아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빵 굽는 냄새를 맡을 때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추억을 꺼내 주는 것만 같았다. 언젠가, 어디선가 맡아본 그 냄새가 내게도 평온한 행복감을 주고, 지금도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층아파트가 드물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은 5층짜리 아파트의 일층에 살았다. 그날은 빛이 좋았다. 엄마는 출근 준비에, 식사 준비로 늘 바쁜 오전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아침이 평화로웠던 건 주말 오전 정도였던 것 같다. 느지막이 일어난 어느 날이면, 활짝 열린 베란다 창문 사이로 온화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하얀 커튼이 피아노 곁을 살랑거리며 여유롭게 오갔다.


아파트의 일층 집은 베란다 창을 열어두면 마치 마당 넓은 집처럼 햇살이 들어찼다. 그때 어떤 음악들이 들려왔는데, 난 그것을 쇼팽의 '야상곡'이라고 오래도록 믿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제는 알고 있다. 기억은 언제나 기억하고 싶은 대로 남겨진다는 것을.


새로운 사람들과의 점심 미팅은 대체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낯선 사람과 마주 앉았을 때, 그리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식사 장소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무난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 역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버섯 리소토를 먹곤 한다. 버섯 리소토는 크림 소스이지만 까르보나라 파스타처럼 입에 묻을 걱정이 없고, 그런 우려 때문에 억지로 시킨 토마토나 로제 소스처럼 물리지도 않는다. 알리오 올리오처럼 오일이 위벽을 장악해 헛배가 부르지 않는 것도 좋다. 면이 아닌 푹 익힌 쌀알이라는 점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식사에선 꽤 안성맞춤이다.


리소토를 만들 때는 쌀을 씻지 않고 1분 정도 오일에 볶는다고 한다. 쌀알을 코팅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야만 쌀이 덜 퍼지기 때문이다. 한 셰프는 리소또를 만들 때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 과정이라고 말했다. 쌀알의 퍼짐과 알단테의 중간 정도의 식감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리소토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버섯 리소토는 쌀알 사이사이로 버섯의 풍미가 스민다. 내가 그런 리소토를 먹어봤는지는 잘 모르겠다. 셰프의 능력 못지않게 주재료인 쌀의 종류 역시 중요한데, 대부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리소토를 만들기에 최적화된, 이를 테면 7년 정도 숙성한 '리소토용' 쌀인 아퀘렐로 같은 것을 사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럴 지라도 버섯의 향기와 폭신해진 쌀알을 입안 가득 채우면 낯선 사람과의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가 금세 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향기에 취하면 조금 더 뻔뻔해져도 부끄럽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 어색한 사람과의 식사에선 버섯 리소토가 제격이다.

가끔은 버섯 리소토와 트러플(송로버섯) 리소토의 향을 구별하지 못할 때도 있다. 매번 같은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의 모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선 버섯 리소토엔 무조건 트러플 오일을 넣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저녁엔 트러플 오일을 뿌린 감자튀김을 먹으며 버섯 리소토를 생각했다. 파마산 치즈의 향은 트러플 오일을 가뿐히 이겨버렸다. 3대 진미의 향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보니 트러플은 어쩐지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한 향인 것만 같았다.


'솔잎에 맺힌 이슬'(송로)은 결국 떨어진다. 그것은 가끔 시간 같기도 하고, 기억 같기도 하고, 사람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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