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일기]'어른의 삶' 그 어디 즈음
나로 살고 싶은 과욕이 극성스러운 길을 걷지 않도록
'어른의 삶'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삶'이 무엇인진 안다. 내 안에 '나의 삶'과 '엄마의 삶'이 모두 들어있기에. '나'로 살고 싶은 과욕이 극성스러운 길을 가지 않도록 운동으로 나의 에너지를 조절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삼 남매 맘. 세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나의 행동 범위가 달라진다. 엄마라는 이름의 여자들이 다들 그렇지 뭐. 어른이 되어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 순간순간 익숙하고도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20대 시절부 터였였던가? 조금은 이른 결혼과 출산. 부모로서의 삶에 대한 개념이 없던 철없던 25살 여자는 어느덧 스스로 엄마라는 이름표의 조련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7월 어느 날 수능 100일 남짓 앞둔 시기. 고3 큰아이가 학교 체육시간에 사고로 오른손 골절판정받은 날. 체격조건이 좋은 큰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시간이었다. 아마도 학교생활에 성실한 아이는 메인포지션에 충실하고자 최선을 다 했을터. 수능을 100일 남짓 앞둔 상황이라 병원에서 조차 쉽사리 수술을 제안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하여 경과를 지켜보고 수술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고 뒤돌아 나오는 마음은 무거웠다.
아이의 오른손을 보며 '생과 사'의 문제가 달린 응급수술이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고, 왼손을 보니 오른손의 역할마저 감당해야 할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어쨌는 고3 입시생에게 여름방학이란 막바지 논술 입시 준비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봐. 내려놓지만 말고... 이미 네가 자라는 동안 보여준 올곧은 성품이 그 어떤 수능점수보다 더 훌륭하거든." 이 말 외에는 위로도 격려도 걱정도 자제하였다. 내 마음도 오락가락하는데 어른 인척 하는 말들을 어설프게 늘어놓기 싫었다. 젓가락 사용을 못하는 오른손을 위해 포크를 준비해 주는 마음으로 수많은 나의 감정을 대신할 뿐이다. 40여 년을 살아온 부모는 입시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말하려 위로하고 싶었지만, 고3 입시생에게는 눈앞에 맞닥뜨린 입시가 일생일대의 가장 큰 인생의 전부일테니까.
더운 여름날 골절된 오른손에 교정기구를 차고 독서실에 향하는 아이의 모습에 늘 그랬듯 적당히 철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며 보낸 2주간의 심정이란 그 무엇보다 무거웠다. 입시에 소홀해지는 현실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최근 병원 진료결과 수술 없이 다행히 자연회복의 시간을 두기로 하였다. 오른손의 불편함을 잘 감당해 준 덕분이다.
더운 여름날 투정 한번 짜증 한번 없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너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말.
'괜찮아. 다 괜찮아.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다 괜찮아. 너의 삶을 대하는 너의 태도가 이미 너무 훌륭하거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린 시절 막연하게 꿈꿔왔던 '어른의 삶'에 가까워지고 있나?
40대가 되어도 여전히 '어른의 삶' 그 어디 즈음에서 좀 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