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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하람 Jan 05. 2024

라면을 끓이며

겨우 라면 하나

  라면은 서민의 음식이다. 라면의 가늘고 꼬부라진 면발은 절대로 순탄할 리 없었던 노동자들의 인생길이 담겨 있다. 가늘고 구불구불하지만 펼치면 길이가 약 50m나 되고, 그 힘겨운 50m는 가난하지만 하루하루 쉼 없이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처럼 중간에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면발을 끓는 물속에 집어넣으면 그렇게나 딱딱하던 것이 마치 본인은 처음부터 말랑해지고 싶었던 것처럼, 열기와 함께 어느새 말랑말랑 해진다. 그렇게 잘 익은 라면을 내어서 젓가락으로 집어 후루룩 하고 거침없이 입안에 집어넣으면 그 부드러운 식감과 함께 온몸이 라면의 열기로 따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따뜻하고 말랑한 라면은 서민들의 마음까지 따뜻하고 말랑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라면과 국물을 함께 먹다 보면 생각보다 빠르게 그릇의 밑바닥이 보인다. 서민의 친구인 라면은 다음 끼니를 기약하고 국물과 함께 사라진다. 정부에서도 라면만큼은 서민의 곁을 지키게 하기 위해 다른 건 몰라도 라면 값은 면밀히 점검하고 있고, 영양소도 생각보다 골고루 들어 있다. 그래서 가끔 라면만 먹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보면 신기하지만, 그렇게 신기하지만은 않다.

  날이 추워지고 겨울이 찾아올 때면 종종 뜨거운 라면 한 입이 그리워진다. 그럴 때면 마트에서 아직도 다섯 봉지에 3천 원도 하지 않는 삼양라면을 사서 끓여 먹는다. 처음에는 차갑고 딱딱하지만 물을 만나면 따뜻하고 말랑해지는 면발은 라면으로 하루를 보내는 서민의 얼굴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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