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낸다는 것]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느슨한 마음이란, 마음에 긴장됨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느슨한 마음을 가지는 건 쉽지 않다.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것.
남들 다 한다고 따라 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조금 독특하다.
한쪽에는 아파트와 학교, 병원이 있고, 반대편에는 논과 밭이 펼쳐진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에는 늘 채소밭과 벼가 자라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집 앞에는 작은 산이 있고, 다양한 곤충과 함께 살아야 한다.
집벌레 때문에 공포에 떨었던 날도 있었고, 이상기후로 벌레가 득실거리는 풍경도 봤다.
지렁이, 애벌레, 장수풍뎅이, 무당벌레, 거미, 말벌… 이제는 웬만한 곤충은 다 경험했다 싶다.
처음에는 이곳이 싫었다.
남편 직장 때문에 억지로 이사 왔고, 내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나는 늘 북적이는 서울 중심가를 좋아했다.
서울이 고향인 데다가, 서울 아니면 다른 곳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서울을 벗어나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았고, 이곳에서도 오래 머무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 정착은 남의 일이라 여겼던 내가 벌써 이곳에서 9년째 살고 있다.
처음엔 이곳이 너무 조용해 힘들었지만, 이제는 서울이 오히려 낯설다.
부모님 집에 가면 여전히 그리운 고향이지만, 지금은 이곳의 고요한 일상이 더 편하다.
여전히 싫으면서도 좋고, 불편하면서도 애착이 가는 동네다.
그렇게 내 안에도 느슨함이 들어왔나 보다.
물론 SNS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린 적도 많았다.
하지만 조금씩 나만의 속도를 찾고,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간다.
아이들을 키우는 매일의 순간도 이곳에서 채워지고 있다.
갓 태어난 새끼 새가 버려진 모습도 보았고, 애벌레가 성충으로 변하는 과정도 지켜봤다.
작은 싹이 벼가 되어 쌀이 여무는 4계절의 과정도 볼 수 있다.
어린이집에 가는 길, 하얗게 변한 민들레를 들고 ‘후후’ 불던 아이들의 숨결과 바람에 흩날리던 홀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이들도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실려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물을 많이 준다고, 바람이 세게 분다고 싹이 빨리 나오고 꽃이 빨리 피는 건 아니다.
삶도 마찬가지다. 느슨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흘러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