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낸다는 것]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소싯적 우리 집은 늘 바빴다.
부모님은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야 돌아오셨고, 자연스레 나를 키워주신 분은 할머니였다.
아침마다 집안은 전쟁 같았다.
텔레비전에서 뽀뽀뽀가 시작되면 집을 나서야 지각을 면할 수 있었는데, 나는 늘 늦잠꾸러기였다.
아침밥은 뒷전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절대 굶겨 보내지 않으셨다.
신발을 신으며 도망치려는 나를 붙잡아 국에 밥을 말아 숟가락을 내 입에 억지로 떠넣으셨다.
그렇게 우걱우걱 삼킨 몇 숟갈의 밥으로 하루가 시작되곤 했다.
아프다고 하면 약보다 밥이 보약이라며 청국장을 끓여주셨다.
냄새는 싫었지만 막상 먹으면 맛있어서 숟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정말 거짓말처럼 병이 씻은 듯 나았다.
또 김치를 먹어야 오장육부가 튼튼하다며, 밥상 위에 김치가 빠질 날이 없었다.
부모님께 혼이 날 때면 나는 늘 할머니 뒤로 숨어들었다.
그러면 할머니는 방패처럼 나를 감싸며 소리치셨다.
“애를 그렇게 때리면 쓰니!”
엄마는 늘 “엄마가 그렇게 감싸니까 애가 버릇이 없어지지” 하고 맞받으셨지만, 나는 그 틈에서 덜 혼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이 부도가 났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살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하루하루 그저 살아내는 것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길이 열린 듯 중국으로 갈 기회가 생겼다.
도망치듯 한국을 벗어나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할머니에게 나는 인생의 절반 같은 존재였다.
그런 내가 떠난다 했을 때, 그 허전한 마음이 얼마나 깊었을까.
“네가 다니던 학교 교복 입은 애들만 봐도 다 너처럼 보이더라.”
뒤늦게야 알았다. 그것이 할머니의 그리움이자 외로움이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은 할머니가 내게 쏟아주신 ‘정성’이자 ‘사랑’이었다.
“지극한 정성이 있는 사람은 그 힘이 신과 같다 [至誠如神].
오직 천하의 지성이라야 능히 화할 수 있다 [唯天下至誠爲能化].” – 『중용』 p311 [나를 지켜낸다는 것]
내가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지금까지 살아가며 힘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모두 할머니가 남겨주신 사랑과 정성 덕분이다.
요즘 따라, 유난히 할머니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