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어른아이

[나를 지켜낸다는 것]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by 자청비

어릴 때부터 늘 “돈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우리 집이 정말 가난한 줄로만 알았다.

방 세 칸에서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 갈 때도 이유를 몰랐다.

그저 ‘이사 가나 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엄마는 나에게 세세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상의 소소한 대화도, 마음을 나누는 시간도 없었다.

나는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하지도 못했고, 그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로 남아 있었다.

그런 모습이 스스로도 싫었다.

어딘가 바보 같았던 나는 또래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미성숙하다는 질타를 받곤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물을 챙겨준 어른은 없었다.

빠뜨리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혼날까 봐’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중학생 시절, 교과서를 안 가져왔다는 이유로 줄 세워 뺨을 맞은 적이 있다.

억울했지만 그저 눈물만 훔쳤다.

돌봐줄 어른이 없으니 엄마는 우리를 학원에 보내며 ‘학원 뺑뺑이’를 돌렸다.

그런데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그 시절 학원에서는 문제를 못 풀면 혼나고, 매까지 맞았다.

부모님은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항의는커녕, 그대로 그 학원에 계속 보냈다.

학원 선생님은 “내가 언제 너를 때렸니?”라며 모른 척했다.

나의 공부, 나의 마음에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는 항상 보호받지 못했다.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도 언제나 혼자였다.

집이 부도가 나자, 아빠는 가계 경제를 살려보겠다며 중국으로 갔다.

우리 가족은 기러기 가족이 되었고, 사춘기였던 나는 부모의 손길 없이 동생과 서로에게 의지하며 자랐다.

그때부터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것이 당연해졌다.


되돌아보면 부족함 없이 지낸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늘 가난하다고 믿었다.

무의식 속엔 ‘내가 돈을 벌어야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어린아이였기에 갖고 싶은 건 많았지만,

“돈 없어. 넌 뭐가 부족해서 맨날 사달래?”라는 말로 나의 욕구는 늘 부정당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가 되고 싶어 몇 년간 공부에 매달렸다.

남편의 사업을 돕고, 육아와 집안일을 하며 틈틈이 공부했다.

그러다 번아웃이 찾아왔다.

흐트러진 내 모습, 늘지 않는 실력 앞에서 오래 고민하다 결국 내려놓았다.

실력 있는 자만 살아남는 세계에서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잠시라도 번역의 세계를 맛본 것으로 만족하며, 모든 것을 놓았다.

말이 좋아 ‘내려놓기’였지만, 사실상 포기였다.

또 한 번의 실패였다.


내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부모가 있어도 가이드해 주는 어른이 없었고, 보호해 주는 어른도 없었다.

성추행을 당해도 혼자 감당했고, 무서워서 동생에게만 의지했다.

힘들다고 말하면 상황이 더 힘들어질까 봐, 아예 ‘힘들다’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걸 통제하려는 습관이 몸에 배었고, 스스로의 고통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아이’가 되었다.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아직 자라지 못한 아이.

내 안에 여전히 ‘자라지 못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음을 안다.


영화 위대한 쇼맨의 ‘This is me’를 들을 때마다 울컥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이렇게 태어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욕구를 부정당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게 갖고 싶었구나. 그런데 지금은 아껴야 할 때야. 조금만 참아보자.

나도 너를 위해 선물하고 싶지만, 지금은 기다릴 때야.”


보호받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돼.

아무도 너를 탓하지 않아.

모든 걸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돼.

넌 힘들어할, 아파할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야.”


실패의 연속 속에서도 나는 계속 움직인다.

계속 살아내려 애쓴다.

오늘도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서,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