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사랑할 수 있는 기회

[나를 지켜낸다는 것] 책을 읽고 쓰는 이야기

by 자청비
누군가 말을 하면, 좋든 싫든, 그 주변의 눈과 귀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옳고 그름은 본래 절대적인 경계가 없고 또 사람들 개개인이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종종 다른 결론을 내게 마련이다.
어떤 경우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은 넋두리가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면 천양지차의 의미로 와전될 수 있다. p245 [나를 지켜낸다는 것]


SNS에서도 공영 뉴스에서도 ‘댓글’을 달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라면

누구나 ‘심판자’가 될 수 있다.

비판이 아닌, 옳고 그름을 단정 짓는 심판자가 넘쳐난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불안감이 높은 나는 어떤 사건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나를 지키기 위함이다.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건 알아야 하기에, 한 번씩 훑어보기만 한다.


한창 SNS가 활발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도 매일같이 댓글을 살펴보곤 했다.

서로를 헐뜯는 말, 정확하지 않은 정보를 맹신하는 사람들,

근거 없는 내용을 여기저기 퍼 나르는 모습, 집단적인 마녀사냥….

그 속에서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또 나는 이런 뜻으로 말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왜곡된 해석으로 받아들일 때가 있다.

정말 순식간에 와전되는 순간이다.

왜 사람들은 같은 말도 다르게 해석할까?


그래서 나는 영상이나 글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려고 애쓴다.

그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한다.

나 또한 왜곡된 해석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요즘은 인류애가 부서지는 듯한 영상과 글, 무분별한 정보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분별하는 시각을 길러야 했다.

나만의 의견과 생각을 갖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려면 매일같이 나를 단련해야 했다.


감사로 하루를 산다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다 보면

세상이 그리 퍽퍽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나도 한때는 불평과 부정적인 말로 하루를 채웠다.

그것이 나를 갉아먹고, 깊은 어둠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고자 하여 일부러 빛을 찾았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가려 노력했다.

그러자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삶임을 깨달았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도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기쁘게 하려고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무한한 사랑으로 나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표현해주고 있었다.


나를 찾아와 주는 사람들 안에도 ‘나’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생각해 주고 기억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생은 사랑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걸음일지라도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본다면,

모든 사람을 품는 것이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겠다.’

‘저 사람은 그런가 보다.’


더 이상 남의 시선과 의견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나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과 의견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도 그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한 사랑을 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오늘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고

사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