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인간관계 천천히 극복하기
인간관계는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숙제다.
편한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약속이 취소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스치곤 한다.
만나지 않는 시간이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육아를 하다 보니 집에만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본래 사람들을 두루두루 만나는 걸 좋아하고, 집에 붙어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연고도 없는 땅에서 아이와 단둘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관계가 끊겼고, 나와 아이를 지키고자 스스로 고립을 택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관계가 쉬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도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여전히 낯설고, 사람을 판단하고 단정 짓는 시선은 나를 놀라게 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흘려보내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첫 번째 ‘단절’은 아마 사춘기 시절, 낯선 이국땅에 발을 디뎠을 때였을 것이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친구도 없던 그곳에서, 나는 늘 남에게 기대고 싶어 ‘남’을 찾아다녔다.
내 마음을 다 내주었지만 돌아온 건 상처뿐이었다.
그때 나는 배웠다. 관계 속에서 모든 걸 내어주면 안 된다는 것을. 숨길 줄 알고, 말도 가려야 한다는 것을.
결혼과 육아를 거치며 인간관계는 차례차례 정리되었다.
예전에는 그저 재미있으면 됐지만, 지금은 공감대가 없으면 대화조차 이어가기 어렵다.
각자의 세계에 갇힌 채 자기 이야기만 고집하는 관계에서는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생긴다.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사람 때문에 그만두었다.
진상 손님보다도,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충돌이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나는 또다시 관계의 문을 닫았다.
일찍 결혼한 탓에 또래 친구는 드물었고, 아이 친구 엄마들은 나보다 일곱, 여덟 살씩 많았다.
오랫동안 또래를 만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내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만남이 힘들지만, 이제는 애써 나아간다.
저런 사람, 이런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를 조금씩 받아들인다.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구나,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관계에서 가장 건강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내 이야기를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다.
상대가 듣고 싶다면, 언제든 내 이야기를 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관계가 단절된 듯 보였지만, 다시 연결되고 있다.
끊어진 인연 같았지만, 이어짐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나는 관계 속에서 다시 회복되고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