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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칭푸르 Nov 13. 2023

34화. 계란이불밥으로 사랑을 고백하다!

조선분식집4

남매가 재회한 그날 이후로 선주는 거의 매일 분식집을 방문했다.

이제는 정훈이나 진아와도 무척 친해진 선주.

하지만 연아와의 관계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선주는 연아에게 있어 분명 소중한 '단골손님'임에도 불구하고, 연아는 여전히 퉁명스럽게 그녀를 대했다.


"와... 왔소?"


"예..."


언제나 정 없이 오가는 형식적인 인사뿐.


'이상하게 껄끄럽단 말이야...'


오늘도, 분식집을 방문한 선주는 연아의 정 없는 인사가 괜히 서운하다.

오빠 환의 일도 있고 해서 내심 연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비록 자신을 향한 태도가 무뚝뚝하긴 했지만 그 또한 싫지 않았기에 일부러 말도 한마디라도 더 건네고 늘 웃는 얼굴로 대하려고 노력했건만... 

이상하게도 연아와는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거 참... 오늘처럼 손님을 많이 데리고 와준 날은 접객차원에서라도 좀 웃으며 대하면 좋잖아?"


그녀의 말처럼, 선주는 오늘 연화각의 기생인 춘화, 일홍, 월향과 함께 분식집을 방문했다.

평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언니 동생에게, 오빠가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분식집의 매상을 올려줘 선주에게 점수를 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뭔가 이유가 있는 건지... 아님 성격이 그런 건지...'


그때, 맏언니인 월향이 주위를 둘러보며 신기한 듯 선주에게 물었다.


"여기가 선미 네가 늘 이야기하던 그 소문난 주막이구나?"


"형님~ 주막이 아니고, 분.식.집!"


"그래, 맞아! 맞아! 분식집이라고 했지?"


"예~ 맞아요! 분식집!"


월향은 연화각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기생으로 객들에게는 도도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선주에게 있어선 그녀가 처음 연화각에 들어왔을 때부터 각별히 챙겨준 고마운 언니였다.


"그런데 형님... 분식집이 뭡니까?"


막내인 춘화도 궁금하다는 듯 선주에게 물었다.

춘화는 연화각에서 가장 어린 기생으로, 평소에 선주를 아주 잘 따르기에 선주도 아주 예뻐했다.


"응 춘화야! 분식집은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면이나 밥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요? 전 그냥 주막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기대가 됩니다."


"오늘은 내가 내는 것이니까,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다 먹어보도록 하자!"


"예 형님!"


한편, 난데없는 연화각 기생들의 방문으로 분식집은 평소와 다르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저거... 연화각 기생들 아니여?"


"그러게? 어째서 이런 곳에?"


그도 그럴 것이, 연화각은 한양에서도 가장 유명한 기방으로, 양반들 중에서도 소위 '하이클래스 양반'들만 출입하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밥을 먹다가 갑자기 갓을 고쳐 쓰고, 수염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어험..."


"으흠..."


그런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연아.


'남정네들이란... 쯧쯧...'


주막의 분위기야 어쨌든 간에, 선주는 한껏 기대하고 있을 일행들을 위한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진아를 불렀다.


"진아야!"


선주의 부름에 진아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예, 언니~"


"언니?"


처음 들어보는 '언니'라는 호칭이 궁금한지 일홍이 물었다.

일홍 또한 연화각에서 인기가 많은 기생으로, 월향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직선적인 성격으로 궁금한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탓에 종종 손해를 보는 타입이었다. 


"예 형님, 그건... 제가 이 아이와 친하기에 둘이서 정겹게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렇구나?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그래, 그건 무슨 뜻이니?"


"손윗 형님을 뜻해요. 그냥... 제가 살던 곳에서 절친한 사이끼리 그리 부르곤 했습니다."


"그래? 그곳이 어디인데?"


"그건..."


갑작스러운 일홍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힌 선주.

그러자, 눈치 빠른 월향이 선주를 돕기 위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홍아! 선미가 그렇다면 그냥 그런 거 아니겠니? 우리 서로 말하기 싫은 지난 사연은 묻지 않기로 하지 않았었나?"


"예... 형님..."


"그나저나 선미야! 우리는 무엇을 먹으면 되니? 내가 여기 오겠다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더니 배가 많이 고프구나!" 


"예~ 형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은 제가 다 알고 있으니까, 저만 믿고 계세요~"


"그래... 선미 네가 알아서 해주겠니?"


"예~ 오늘은 제가 한턱내는 것이니, 마음껏 즐겨주세요!"


"그것 참 기대가 되는구나~ 호호호"


선주는 곁에 서서 계속 기다리던 진아에게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진아야! 여기에 라면 두 그릇과 김밥 두 개, 그리고 계란이불밥과 김치볶음밥을 가각 하나씩 주겠니?


"그렇게 많이요?"


"다 먹을 수 있으니까. 걱정 말고!"


"예~ 언니!"


주문을 받은 진아가 부엌으로 향하자, 선주의 일행은 왁자지껄 떠들며 수다를 이어갔다.

그러다 일행 중 하나가 갑자기 크게 소리쳤다.


"어머나! 나 어떡해?"


막내인 춘화였다.


"왜 그러니, 춘화야? 무슨 일인데?"


"그게... 아... 어쩌면 좋아,


"왜?"


"그래 왜 그러니?"


갑자기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춘화를 보고 놀란 언니들이 물었다.   


"그게 실은... 저쪽에.."


"저쪽이 왜?"


"아이참..."


춘화가 조심스레 가리키는 곳을 보자 왠 잘생긴 선비가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어머, 저분은?"


한눈에 그를 알아본 월향!


"저분이 누구신데요?"


궁금한 듯 일홍이 물었다.


"저분은 춘화가 연모하는 심선비님이시란다."


"예...? 춘화가 연모하는 분이라고요?" 


"아이... 어쩌면 좋아?"


월향의 말에 춘화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


"저 선비님은 얼마 전에 친구분들과 처음으로 연화각을 방문하신 분이신데... 인물도 인물이지만, 그 성품이 어찌나 점잖고 예의 바르신 지..." 

"다녀가신 뒤로 춘화 이것이 선비님에게 그만 연심을 품어버렸지 뭐니?"


"오호라? 그랬구나?"


"춘화 이것이 얌전한 줄 알았더니, 뒷구멍으로는 이리 호박씨를 까고 있었네? 오호호호"

선주와 일홍도 재미있다는 듯 춘화를 놀리기 시작했다.


"아유 참... 그만들 하시어요!"


"그리 부끄러워만 하지 말고, 가서 인사라도 하고 오지 그러니?"


"예? 못해요! 못해!"


"얘가 이리 수줍음을 많이 타서 어쩌니?"


"그러게 말이에요. 오호호호호호"


그렇게 일행이 춘화의 짝사랑으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와중에 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왔다.


"어머나! 이게 다 뭐라니?"


"어쩜, 음식들이 하나같이 곱기도 하지!"


노란 계란이불밥과 형형색색의 속재료가 돋보이는 김밥, 노랗고 하얀 계란프라이의 김치볶음밥에, 매콤한 향기로 식욕을 돋우는 라면까지...

난생처음 접하는 분식집의 신기한 음식에 일행의 탄성은 끊이질 않았다. 


"자! 어서 드세요!"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러자, 선주가 음식을 하나씩 챙겨주었다.


"우선, 월향형님은 평소에 국수를 좋아하셨으니까, 이 <라면>을 드셔보세요!"


"그리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일홍형님은 이 <김치볶음밥>을 드셔보시는데... 꼭 계란 노른자를 터트려서 밥과 함께 드시고요!"


"춘화, 너도 이 <라면>을 먹어보도록 해!"

"그리고, 여기 놓여있는 이 <김밥>은 식사 중에 간간히 반찬처럼 드셔도 됩니다. 월향형님과 춘화는 김밥을 라면 국물에 적셔서 드셔도 맛이 좋을 거예요."


그렇게 일행의 음식을 챙긴 선주는 마지막으로 남은 계란이불밥을 자신의 앞에 놓았다.

조용히 음식을 맛보는 연화각의 기생들. 


- 후루룩 -


- 후루룩 -


"정말 맛있구나! 어쩌면 면이 이리도 쫄깃하니 맛이 좋을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면은 난생처음 먹어봅니다."


"이 김치볶음밥이란 것도 정말 맛있습니다! 아니 무슨 밥이 이렇게 맛이 좋은지요?"


아니나 다를까! 음식을 맛본 기생들은 저마다 감탄사를 쏟아내었다.

특히, 월향은 라면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후후 불어가며 부지런히 젓가락질을 했다. 

그런 일행들의 모습을 보는 선주도 기분이 좋았다.


"다들 좋아해 주시니 저도 기쁩니다."


한동안 흐뭇하게 일행들의 식사를 바라보던 선주도 마침내 숟가락을 들어 자신의 계란이불밥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 선주!

그녀는 열심히 라면을 즐기는 춘화에게 말을 건넸다. 


"춘화야! 너 저 선비님에게 연심을 전한 적은 있니?"


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춘화가 화들짝 놀라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예... 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제가 설마요... 말도 제대로 못 해봤는걸요..."


갑자기 시무룩해진 춘화. 

하지만 선주는 오히려 묘한 웃음을 지으며 춘화에게 말했다.


"그럴 것 같더라니. 춘화야, 기다려봐! 내가 널 도와줄 테니까!"


"예, 예? 형님이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


말을 마친 선주는 갑자기 일어나 급히 부엌으로 향하더니, 부엌 앞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는 이내 돌아왔다.


"형님, 대체 무슨..?"


"아하하하~ 가만히 기다려봐! 곧 소식이 있을 거니까!"


"그러게? 너 부엌에 가서 뭘 하고 온 거니?"


일홍도 궁금한지 선주에게 물었다.


"잠시후면 다 알게 될 겁니다. 형님!"


일행은 너무나도 자신만만한 선주의 태도가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잠시 후, 일행의 눈에 식사를 하고 있는 심선비의 평상으로 반상을 들고 가는 연아가 보였다.

반상 위에는 계란이불밥이 있었다.


"여기, 이거 받으시오!"


갑작스러운 추가메뉴에 깜짝 놀란 심선비!


"이게 뭐요?"


"뭐긴? 계란이불밥이오!"


"난...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맞소! 그쪽 선비님이 달라고 한 것이 아니오! 이건 저쪽에서 보내온 거니까..."


"뭐요?"


심선비는 연아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인 춘화와, 웃으며 심선비를 바라보는 선주의 일행이 있었다.


'설마 춘화가?'


"어험험..."


춘화와 계란이불밥을 번갈아 바라보던 심선비는 춘화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주모! 잠깐 이리 와보시오!"


무언가 결심한듯 연아를 호출하는 심선비.


'또, 뭐야? 귀찮게...'


"무슨 일이시오?"


"내가 공교롭게도 지금 배가 불러서 이걸 먹을 수는 없으니... 거 미안하오만, 이 계란이불밥을 저쪽 사람에게 다시 가져다주기 바라오!"


"아니? 저쪽에서 그쪽 선비님 드시라고 한걸 도로 가져가라고요?"


"내 부탁 좀 합시다."

"그리고... 부탁하는 김에 이 말도 좀 전해주시오!"


'가지가지하는구먼...'


"뭐요?"


"나도... 그렇소...라고... 허허"


'이것들이 아주 놀고 있네!'


"알겠소!"


연아는 반상을 들고 다시 선주 일행에게 향했다.


"이거 받으시오!"


"이... 이게 뭐예요?"


선주의 반상을 받은 춘화가 크게 놀라 물었다.


"뭐긴? 저 선비님이 여기로 돌려보낸 계란이불밥이지!"


"예? 돌려보내요?"


연아의 말을 들은 춘화는 반상 위에 놓인 계란이불밥을 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노란 계란이불 위 빨간 남만시개찹으로 쓰인 '연모합니다' 란 문장이 들어왔다.


"어마나!"


"그리고, 이 말을 전해 달랍디다."


"나도... 그렇소...라고..."

"으이그!"


춘화는 이를 보고 감격에 겨워 심선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심선비 또한 그에 대답이라도 하듯 미소를 지으며 춘화를 바라보았다.

어찌나 좋은지 눈에 눈물이 다 고인 춘화.


"형님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아... 내가 있던 곳에서는 계란이불밥 위로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서, 나도 한번 흉내를 내봤지!"


"아유... 형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무슨... 내 보아하니 저 선비님도 널 마음에 두고 있었던 듯 한걸 뭐!"


그러자 이를 본 월향과 일홍도 잔뜩 상기된 얼굴로 선주에게 물었다.


"아니 선미야! 이렇게 신박할 수가! 이게 뭐? 계란이불밥이라고?"


"예, 형님!"


"아니... 연심을 전달하는데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었네?"


"그러게요 형님? 아주 신박합니다!"


"그렇구나? 호호호호~"


이날, 계란이불밥으로 연심을 전한 연화각 기생 춘화와 심선비의 일은 금세 소문이 나서, 계란이불밥으로 고백을 하는 문화가 한양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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