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할 수 있다면

by 달빛그림자

요즘 흔히 듣는 말 가운데 '지속가능성'이란 단어가 있다.

이 말은 본래 인간사회의 환경, 경제, 사회적 양상의 연속성에

관련된 체계적 개념으로 지역의 이웃부터 지구 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흔히 경제계에서나 생태계를 위한 어떤 조치가

지속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말할 때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느끼고 적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이란

다이어트를 계속 지속해서 살을 뺄 수 있을지, 일기를 계속 써서

생활습관을 유지할 수 있을지, 글을 계속 써서 꾸준히 소통할 수

있는지 등에 사용되는 말 같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다른 여러 가지 상황이나 일에

'지속가능성'이란 말을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그게 어떤 상황이나 일이 됐든 지속한다는 건 참 중요한 일이다.

사실 어릴 때는 그 중요성을 잘 몰랐는데 살면 살수록

무언가를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이고 중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돌아보면 거창하게 시작했다 슬며시 내려놓았거나

한두 주 지속하다 포기했거나 몇 달을 열심히 하다가도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방치하고 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댔다.

예를 들어 다어어트를 할 때는 요즘 번역 중이라 잘 먹어야 하니까,

날씨가 더울 때 운동하면 더위 먹을 수 있으니까,

이 나이에 누구한테 보여줄 사람도 없으니까

갖가지 핑계를 대며 두어 주 하던 다이어트를 때려치곤 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본래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신나게 시놉시스를 쓰고,

캐릭터 분석표를 만들고, 기세 좋게 시작했다가도 조금만 막히면

글 쓰는 거 말고도 하는 일이 바빠서, 아마추어가 자료조사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서, 좋은 글을 쓰기에 나는 머리가 나빠서, 이제 생각해보니

별로 좋은 아이디어가 아닌 것 같아서, 기타등등의 핑계로 쓰다가 만

작품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계속 다이어트를 했어야 했고, 글을 썼어야 했다.

그 다이어트로 절세가인으로 변신한다든지, 그 글로 스타 작가가 된다든지 하는

익사이팅한 변화는 없었을지언정

다음 단계로 나아갈 디딤돌은 놓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지속해서 마무리하는 것은 나와의 약속이었다.


세상도, 시대도 빠르게 변한다고 하지만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게 마련이다.

1kg을 빼지 않고 단숨에 5kg을 뺄 수 없으며, 습작 하나 없이 대문호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순식간에 10kg이 빼고 싶다, 빨리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약아빠진 생각을 했었다.

만약 내가 어떻게든 하던 일을 포기할 핑계를 찾으려고 궁리하는 대신

조금씩이라도 살을 빼고, 글을 썼다면

적어도 그때보다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내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남과의 약속만큼 아니, 남과의 약속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와의 약속이다.

'다이어트를 하겠다, 글을 쓰겠다' 공수표만 남발한 뒤 쉽게 포기하고 방치하면

자신에게 신용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신용이란 타인과 나 사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 나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며, 나에 대한 신용을 지켜야 한다.

나 스스로 하겠다고 다짐해놓고 습관처럼 포기하고 놓아버리면

결국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나 스스로 신용이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다른 일들을 맡아 잘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흔히 나와의 약속은 쉽게 생각하고 무시로 어기며

원래 없었던 일처럼 외면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나는 결국 나를 위해 사는 존재인데 남과의 약속은 지켜려고 악착 같이 굴면서도

나와의 약속은 무시해버린다면 종국에 나는 껍데기뿐인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지속하고 하나하나 완성하는 일이야말로

나를 더 단단하고 성장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 약속이 무엇이 됐든, 또 얼마나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예전에 번역을 하며 이와 비슷한 예가 등장하는 책을 본 적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아주 간단한 일을 하나 배워보세. 모두 팔을 앞으로 한 번,

뒤로 한 번 흔들어보게. 매일 이 동작을 3백 번씩만 해보세. 할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그런 간단한 동작도 못 하겠느냐며 코웃음을 쳤다.

한 달 뒤 소크라테스의 물음에

여전히 팔을 앞뒤로 흔들고 있다고 대답한 제자는 90%였다.

하지만 일 년 뒤 소크라테스가 "이 간단한 동작을 계속 하고 있는 학생이 있나?"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며 손을 든 학생을 단 한 사람

'플라톤'뿐이었다. 모두 알다시피 플라톤은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가 됐다.


물론 플라톤이 팔을 앞뒤로 흔들어 위대한 철학자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이라 해도 약속을 하고 지속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구구절절 지속의 중요성에 대해 늘어놓는 것은

나태해지고 포기하려는 나를 다잡기 위한 다짐일지 모른다.

아무렴 어떠랴? 이렇게라도 돌에 글을 새기듯 다짐해서

지속할 수 있다면 장땡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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