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던 근육

by 달빛그림자

나는 집에서 번역을 하는 프리랜서이다 보니

평소 운동이 부족한 편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나이를 먹고 기초대사량은 떨어지는데 입맛은

그대로라 살이 슬금슬금 찌더니 무려 20kg 가까이

몸무게가 불어났다. 뱃살이 과하게 접히고 청바지를

입으면 혈액순환이 안 되어 다리가 저린 지경이 돼서야

건강을 위해서라도 정말 살을 빼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20대 때처럼 빡센 다이어트는 힘들어 한약도 먹고

식이조절도 하면서 몇 달에 걸쳐 8kg 정도를 뺐다.

지금 계획으로는 여기서 6, 7kg 정도만 더 뺄 생각이다.


처음에는 1, 2kg씩 조용히 찐 살이라 그렇게 찌는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한창 살이 쪘을 때는 '이 나이에 어디

보여줄 때가 있나?'를 핑계로 아예 현실을 외면했었다.

하지만 점차 입던 바지가 안 맞게 되고 얇은 티셔츠를

밀며 뱃살이 툭 불거지기 시작하자 이대로 놔뒀다가는

지금이 끝이 아니겠다는 생각에 문득 정신의 눈이

번뜩 떠졌다.


올해 5월쯤부터 시작한 다이어트는 처음 두, 세달은

살이 빠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뒤로는

1, 2kg이 쪘다 빠졌다를 반복하는 정체기에 들어섰다.

처음보다 식이조절이 느슨해진 탓도 있지만 단순히 한약을

먹고 식이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벽에 부딪친 것이다.

워낙 움직이는 것도,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하는 터라

운동만은 미루고 또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는 간단한

운동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그렇다, 운동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몇 년째 거실 한켠 장식장에서

구석기 화석처럼 먼지만 뽀얗게 쌓여 있던 덤벨을

주워 들었다.


무게가 있는 덤벨은 각진 모양과 달리 꽤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나는 덤벨을 치켜든 채 팔 운동도

하고, 1층인 집안을 뛰었으며 다리를 벌려 앉았다

일어나기, 다리를 모아 빠른 속도로 발구르기,

덤벨을 든 팔을 쭉 뻗어 양쪽과 앞뒤로 버티며

옆구리와 허리 운동도 했다. 운동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깔짝거리는 수준이겠지만

머릿속에서 개념 자체가 삭제됐던 운동을 하려니

자고나면 삭신이 쑤셨다.


특히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등 위쪽 근육과 팔 안쪽

근육, 옆구리 근육, 종아리 근육 등이 쑤셨다.

번역을 하는 사람이라 손가락 마디마디 근육이나

고관절이 아픈 것은 고질병이나 다름 없지만

오랜만에 다른 근육들이 쑤시니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얼마나 오래 몸을 방치해뒀는지 살짝만 높이

다리를 들어도 금세 쥐가 나 제자리에서 자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주 간만에 굳어진 근육에

힘을 주니 삭신이 쑤시면서도 웅크려져있던

몸이 쭉 펴지는 것처럼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늘 핑계를 댔었는데

'조금 더 일찍 시작할 걸.'하는 후회도 됐다.


사실 운동이란 게 우리 몸에 이익이 되면 됐지

해가 될 리 없다. 그럼에도 평소 운동을 잘하지

않는 것은 귀찮기 때문이다.

세상에 운동보다 재미 있는 일이 많아서, 바쁘다는

핑계로, 몸관리는 돈 버는 일보다 뒤로 미뤄도

될 것 같아서 누구나 운동이 좋은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뒤로 미루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운동을 미루고 미루다

새로 시작하면 제대로 된 운동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니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이 뭉치고 뻐근해지는데다 간단한 스트레칭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게다가

안 하던 운동이다보니 직접 하면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건지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이는 실제 몸을 움직이는 운동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평소 해야지 하면서도 미뤄왔던 일들을 뒤늦게 하려면

안 쓰던 근육이 뭉치고 쑤시는 것처럼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이를 테면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평소 좋은 글감이 있다며 글쓰기를 소망해온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하지만 먹고 사는 일에 치여,

이런저런 핑계를 무기 삼아 글쓰기를 미루다

드디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는 과연 쉽게 글을 쓸 수 있을까?


분명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머릿속이 뒤엉켜

쉽게 첫 문장을 써내지 못할 것이다.

어렵사리 첫 문장을 썼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글을 써내려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에도 글로 쓰면 좋을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어째서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지 못할까? 이는 타고난 글솜씨가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평소 글쓰기가 몸에 습관처럼

배어있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기초체력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운동선수들이나

하는 고강도의 운동을 할 수 있겠는가.


한동안 글을 쓰지 않고 살던 나 역시 브런치에 이렇게

짧은 글을 올릴 때마다 어째서 머릿속 생각들이 잘 정돈이

되지 않는지,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효율적으로

정리됐는지 고민하게 된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떠다니는

것과 그 생각을 이해하기 쉬운 문자로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한다.

안 쓰던 근육을 풀어주며 몸에 살짝 땀이 날 만큼,

숨이 조금 가빠질 만큼 매일매일 운동을 하면 쑤시고

결리던 근육이 단단해지며 쓸모 없는 지방도 빠지고

운동의 요령도 생기며 내가 하는 운동의 효과에 대해

확신도 생긴다.


실제로 운동을 하려던 사람은 운동을, 글을 쓰려던 사람은

글을, 춤을 추려던 사람은 춤을, 공부를 하려던 사람은

공부를, 그림을 그리려던 사람은 그림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늘이라도 시작해보라.

그리고 하루하루 지속해보라.


당장 먹고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일이 있다면 이렇게 운동을 하듯

당신의 생활 속, 생각 속 안 쓰던 근육을 조금씩 풀며

매일의 습관이 되도록 만들어 보라.

어느덧 그 일에 익숙해지고 더 나은 결과를 확신하는

자신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전 27화요나 콤플렉스